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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선의 世·市·人]'지도에 없는 길'을 가는 법

최종수정 2014.08.29 10:52 기사입력 2014.08.29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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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선 성균관대 경영대학원 겸임교수

정병선 성균관대 경영대학원 겸임교수

경제학 원론에 나오는 간명한 공식이 하나 있다. 바로 "Y≡C+I+G+(X-M)"이라는 국민소득계정 항등식이다. 식의 좌변에 있는 Y는 국내총생산(GDP)을 나타낸다. 우변의 C는 가계소비지출, I는 기업의 투자, G는 정부지출을 각각 가리킨다. X는 수출, M은 수입이므로 (X-M)은 수출입의 차, 즉 해외수요를 표시한다. 경제의 세 주체인 가계, 기업, 정부사이의 순환적 상보(相補)관계를 나타내는 이 등식은 GDP를 구성하는 각 요소의 중요도를 차례로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C가 1% 증가하면 GDP는 0.6%가량 성장하지만 같은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I는 3% 이상, 수출은 2% 이상 증가해야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내수(內需)의 근간인 C가 뒷받침되지 않는 경제성장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이야기인데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며 민생이 튼튼해야 국가경제가 균형 성장할 수 있다는 '민본사상'도 담겨 있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가장 건전한 부문은 단연 가계였다. 기업은 줄을 이어 도산했고 금융기관도 문을 닫았으며 외환이 바닥난 국가는 부도위기에 몰렸다. 주역의 산택손괘(山澤損卦)에 해당하는 형국이었다. 손괘 단사(彖辭)에 '손(損)은 아래를 덜어 위를 더해주는 것이니, 그 도(道)는 위로 행한다. 덜어서 믿음(誠實)이 있다면 크게 吉하고, 허물이 없다…(損, 損下益上 其道上行, 損而有孚, 元吉无咎…)'라고 일렀으니 하괘(下卦)에 해당하는 가계는 그 양실(陽實)을 덜어 상괘(上卦)인 기업과 정부의 음허(陰虛)에 보탰다.

간혹 재정정책을 병용(竝用)하기도 하였으나 가계소비 촉진과 내수 진작을 기반으로 하는 무리한 경제정책은 정권이 바뀌어도 이어졌다. 소비는 미덕을 넘어 애국이라는 부추김과 저축의 시대는 가고 투자의 시대가 왔다는 유혹에 넘어가 2000년 코스닥시장의 정보통신 버블(ICT bubble)에 이어, 2002년 카드대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차례로 겪고 난 가계는 초토화되었다. 가계부채만 1000조원을 넘었다.

4월 한국은행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가전체소득에서 가계에 돌아가는 몫이 점점 줄어들면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꼴찌 수준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법인)의 가처분소득은 최근 5년간 80.4%(연평균 16.1%) 증가했으나 가계의 가처분소득은 26.5%(연평균 5.3%) 증가하는 데 그쳤다. 국민총소득(GNI)에서 가계소득(PGDI)이 차지하는 비중도 지난해 56.1%로 최근 5년 평균치(56.4%)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가계의 주요 소득원인 임금소득이 정체된 가운데 배당과 이자 소득도 갈수록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기업의 이익이 가계로 흘러들지 않고 있다는 증거다.

'무릇 줄어드는 것은 늘어나기 위함이고, 늘어난 것은 다시 줄어들 수 있다(夫自損者益,自益者缺)'고 했다. 작금의 가계 상황은 외환위기 때와 정반대다. 덜지 말고 보태야 하는(弗損益之), 풍뢰익괘(風雷益卦)의 때이다.

침체된 경제를 살리기 위해 '지도에 없는 길'을 가겠다는 비장한 선언을 한 최경환 경제팀의 세제, 재정, 금융수단이 망라된 전 방위적 종합대책은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 가격 상승에서 유발되는 '부의 효과(wealth effect)'를 통해 가계소득을 증가시켜 내수를 진작하고 경기를 회복시키는 선순환의 고리를 확보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일단 방향은 제대로 잡은 것으로 보이나 조급한 감이 없지 않고 그 실효성에는 반론과 우려가 많다.

기업과 정부에서 풀린 돈이 가계로 유입되어 무너진 가계의 실질적인 복원이 그 관건이기 때문이다.

지도에 없는 길에는 예기치 않은 위험이 도사린다. 논어에 '빨리 하려 하면 이르지 못하고 작은 이익을 보면 큰일을 이루지 못한다(欲速則不達 見小利則大事不成)'고 하였으니 전인미답의 길을 가려는 사람이 가슴에 새길 일이다.

정병선 성균관대 경영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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