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릉=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저 백인 형, 코 작살나게 높네. 완전 멋지다."
경남 사투리 리듬이 섞인 감탄에 남자 양궁 리커브 대표팀이 피식 웃었다. 그대로 녹아내린 긴장. 모두 과녁에 집중해 단체전 우승을 일궜다. 특히 사투리의 주인공 구본찬(21ㆍ안동대)이 제 몫 이상을 했다. 처음 나간 세계대회에도 신예답지 않은 안정감으로 슛오프 연장 승리를 이끌었다. "5월 19일 콜롬비아 메데린, 절대 잊을 수 없어요. 사실 엄청 긴장했거든요. 경주 멋쟁이가 세계양궁연맹(WA) 월드컵 결승 무대에 오르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장영술(54) 양궁대표팀 총감독은 "성격이 쾌활하고 긍정적이다. 밝고 명랑해 징크스가 붙지 않을 궁사"라고 했다. 구본찬은 그 긍정의 힘으로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는 양궁대표팀에 발탁됐다. 메이저대회 출전 경험이 없어 그동안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양궁 선수들 사이에서는 맞붙기 까다로운 선수로 꼽힌 지 오래다. 지난해 국가대표 2진으로 아시아선수권대회에 출전해 단체전 금메달과 개인전 은메달을 땄다.
1진에 합류하지는 못했다. 간발차로 기회를 놓쳤다. "일주일 동안 활을 잡지 않았어요. 충격이 너무 컸거든요. 그런데 푹 쉬니까 몸이 간지럽더라고요. 뭘 해도 될 것 같더라고요." 올해 입지는 크게 달라졌다. 간판스타 오진혁(33ㆍ현대제철)에 이어 2위로 국가대표 선발전을 통과했다. "롤 모델 진혁이 형과 함께 뛴다는 것이 아직도 믿기지 않아요. 옆에서 형이 활을 쏘는 게 그저 신기합니다."
그들도 이제는 경쟁의 대상이다.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남자 국가대표 네 명 중 두 명은 예선라운드 결과에 따라 본선 토너먼트에 출전하지 못한다.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가 특정 국가의 메달 독식을 막으려고 개인전 출전자를 국가당 두 명으로 제한한 까닭. 단체전도 세 명만 참가할 수 있어 경쟁에서 밀리는 한 명은 출전을 포기해야 한다.
구본찬은 개의치 않는다. "대회 규정이 그렇다면 따라야하지 않겠어요. 어찌됐든 대표팀이 금메달을 따는 것이 중요하잖아요. 그 목표에 힘을 최대한 보태는 것이 내 몫입니다." 머리를 쓸어 넘기며 다시 사대로 향하는 발랄한 궁사. 이를 바라보던 장 감독이 활짝 웃는다. "어제도 240점 만점에 237점 쐈어. 정말 물건이라니까. 물건."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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