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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철의 인사이드스포츠]여학생 야구팬 몰고 다닌 박노준·류중일

최종수정 2014.08.04 09:42 기사입력 2014.08.04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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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중일 삼성 감독[사진=아시아경제 DB]

류중일 삼성 감독[사진=아시아경제 DB]


1981년 8월 27일 조간신문에 실린 한 장의 사진. 전국의 여학생 야구팬들은 경악했다. 모르긴 몰라도 적잖은 이들이 사진을 보자마자 울음을 터뜨렸을 것이다. 홈플레이트로 들어오는 선린상고 박노준의 왼쪽 발목이 슬라이딩하는 반대 방향으로 꺾인 모습이 TV 화면만큼이나 생생히 담겨 있었다.

전날 서울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선린상고와 경북고의 제11회 봉황대기전국고교야구대회 결승전 1회에 벌어진 일이었다. 박노준은 구급차에 실려 대회 주최 신문사의 지정 병원인 한국병원으로 갔고, 두 달여 뒤인 10월 29일 퇴원했다. 경기인들의 표현으로 하면 “발목이 돌아갈” 정도의 큰 부상이었다. 이 사진이 보도된 뒤 한국병원은, 조금 부풀려 얘기하면 여학생 팬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이 대회 결승전에서 류중일, 성준, 문병권 등이 포진한 경북고는 선린상고를 6-4로 물리치고 우승했다. 경북고는 6월에 열린 제36회 청룡기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결승전에서도 선린상고를 6-5로 따돌리고 정상에 올랐다. 9월에 벌어진 제35회 황금사자기전국지구별초청고교야구대회 결승전에서는 왼손잡이 기둥 투수 김정수(연세대를 거쳐 해태 타이거즈 입단)가 버틴 광주 진흥고를 6-0으로 완파했고, 10월 제62회 전국체육대회(서울)에서까지 우승해 그해 4관왕을 했다. 1970년대 초반에 이은 경북고 제2의 전성시대였다.

기억력이 좋은 야구팬이라면 그해 7월 17일 잠실구장 개장 첫 홈런의 주인공이 류중일이고, 그해 9월 재일동포 김의명을 앞세운 일본 고교 야구 선발팀과 경기에서 3연승한 한국 고교 야구 선발팀의 주축 멤버가 류중일, 성준, 김정수, 조계현, 차동철 등이었다는 걸 꿰고 있을 터. 그해 일본 고교 야구 선발팀에는 제63회 고시엔대회 우승교인 호도쿠고의 김의명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일본프로리그의 ‘할아버지 투수’들 가운데 한 명인 구도 기미야스(2012년 4월 은퇴)도 있었다. 나고야전기고 3학년으로 고시엔대회 2회전에서 노히트노런 기록을 세운 그는 2차전 선발로 나섰으나 일본의 0-1 패배를 막지 못했다. 류중일은 1회 선두타자 안타로, 결과적으로 노히트 게임을 방지했고 3회 초 1사 뒤 볼넷을 고른 뒤 후속 땅볼과 구도의 악송구로 결승점을 올렸다.

그해 11월 동아일보가 프로야구 출범 움직임을 보도하기 전에 있었던 일들이다. 그 무렵 고교야구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당시 이화여고에 다니던 글쓴이의 사촌동생은 서울이 고향인데도 경북고 선발 라인업은 물론 후보 선수들 이름까지 줄줄이 외고 있었다. 박노준, 류중일 정도면 여학생들에게 요즘의 엑소 이상의 인기 스타였다.

1980년대 여학생 야구팬들과 관련해 소개할 일화가 또 있다.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한 뒤에도 고교야구를 사랑한 이들은 동대문운동장(1981년 잠실구장이 개장하면서 서울운동장에서 동대문운동장으로 이름이 바뀜) 야구장 외야석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응원하던 덕수상고 여학생들을 기억할 터이다. 1910년 개교한 전통의 명문 덕수상고는 1984년부터 여학생을 받기 시작했고 이때가 1980년 창단한 덕수상고 야구부의 성장기에 해당한다.
1986년 6월 9일, 그날도 덕수상고 여학생들은 동대문운동장 야구장 외야 스탠드에서 “덕수, 덕수”를 외치고 있었고 응원에 힘입은 김충훈(중견수), 김형균(투수), 황일권(유격수) 등은 대전고를 4-2로 물리치고 이성열 감독을 헹가래쳤다. 제41회 청룡기대회 우승 순간의 장면이다. 창단 뒤 첫 우승이었으니 동대문운동장 야구장에 있었던 덕수상고 여학생들은 40대 후반의 아주머니가 된 오늘도 그날을 잊지 않고 있을 것이다. 좀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1960~70년대에는 남성과 동반하는 여성은 동대문운동장 야구장에 공짜로 들어갈 수 있었다. 모든 대회가 그런 건 아니고 몇몇 대회에서 요즘 말로, 프로모션을 하기 위해 그런 이벤트를 했다. 이때 이후 1980년대 중반까지 여성팬들이 오늘날 ‘치맥파’ 팬들의 큰 이모뻘 되는 원조 그룹이다.

여성 야구팬 계보의 중간쯤에 해당하는 덕수상고 졸업 여학생들에게 기쁜 소식이 하나 있다. 덕수고(시대의 흐름에 따라 1997년 덕수정보고, 2007년 덕수고로 교명이 바뀌었다)는 지난달 28일 서울 목동구장에서 열린 제69회 청룡기대회 결승에서 충암고를 4-0으로 누르고 1986년과 2001년, 2012년, 2013년에 이어 이 대회 통산 다섯 번째 정상에 올랐다. 한국 야구사에 영원히 빛날 1955년~1957년 인천 동산고의 3년 연속 우승 뒤 57년 만에 이 대회 3연패(連覇)의 대기록을 세웠다. 청룡기대회는 국내 고교야구선수권대회(championship)다. 그런데 대회 결과와 관련해 바로잡을 내용이 있다. 덕수고의 청룡기대회 첫 우승을 1996년으로 보도한 매체가 꽤 있다. 앞에 설명했듯이 덕수고는 1986년 처음으로 청룡기를 품에 안았고, 1996년 제51회 대회에서는 휘문고가 우승했다.

신명철 스포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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