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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에서]바쁘면 지는거다

최종수정 2014.10.20 10:05 기사입력 2014.06.17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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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영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김소영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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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부터 학교가 기말 분위기다. 학기 말이 되면 학생도 교수도 모두 정신없이 바빠진다. 학생들은 기말에 한꺼번에 과제가 몰린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 과목의 기말시험 비중이 커서 중간 성적이 만족스럽지 않으면 기말에 만회해야 한다. 교수들도 외부 연구과제 마감이 기말과 맞물릴 때가 많다. 또 제때 들여다보지 않았던 숙제들도 채점을 끝내야 하고, 지도학생 논문 검토도 비슷한 시기에 마쳐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방학이 되면 학생들을 동원(?)하기 어렵기 때문에 차일피일 미루던 행사들도 기말에 몰린다. 그래서 기말이 되면 학교에 묘한 분위기가 감돈다. 모두가 좀비가 돼 동병상련의 고통과 희열을 나누는 느낌이 좋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왜 알면서도 미리미리 일을 마치지 못하고 막판에 다 몰리게 되는지 답답해진다.
2년 전 안식년으로 미국 조지아공대에 머무를 때 강의를 맡게 되었는데, 다른 대학에서 그 학기 강의하러 온 교수들을 위한 오리엔테이션이 있었다. 강의계획서부터 학사정책, 수업평가, 잡다한 수업 노하우를 일일이 다루느라 2시간이 족히 넘어가고 있었다.

나처럼 대충대충 듣는 교수들을 눈치챘는지 갑자기 발표자가 이러는 것이었다. "이제부터는 잘 들으세요, 아무리 다른 곳에서 오래 가르친 분도 실수하는 것이라서요. 이 룰을 제대로 몰랐다가 학생이 아니라 총장한테서 직접 연락이 오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 룰이란 소위 '죽음의 주 정책(deadweek policy)'으로 기말고사 전주에는 중요한 시험이나 실험을 실시하거나 숙제를 새로 내면 안 된다는 것이다.

미국 대학에서는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는 기말 전주에 수업을 아예 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고 또 대학마다 이 공동의 시련을 나름대로 승화시키는 전통이 있다. 스탠포드대에서는 기말 전주에 밤마다 기숙사에서 창문을 열어놓고 한껏 비명을 질러대는가 하면 예일대에서는 알몸으로 도서관을 돌아다닌다고 한다. 조지아공대의 기말 전주 정책이 남다른 것은 스트레스를 같이 겪는 것을 넘어 스트레스가 쌓이는 것을 구조적으로 막기 위한 방법이 담겨 있는 점이다.
이 정책이 생기게 된 것은 10년 전으로 당시 조지아공대도 2011년 카이스트처럼 학생 자살 사태가 이어지면서 대책 마련을 위해 학내 구성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토론했다. 학생들은 교수들이 기말이 되면 미리미리 냈어야 하는 과제들을 한꺼번에 몰아주는 행태를 비판했다. 교수 입장에서는 자기가 가르치는 한 과목에서 한두 과제 더 준다고 무슨 부담이랴 하지만 학생들은 그런 과목이 여럿이다 보니 거의 불가능한 마감일들을 맞추느라 초죽음이 된다는 것이었다.

학교 당국에서는 학생들의 사정을 반영해 기말고사 전주에는 다른 대학처럼 수업을 없애는 것만이 아니라 '주요' 과제나 실험, 숙제를 절대 내지 못하도록 규정을 만들었다. 재미있는 것은 과목마다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주요' 과제나 숙제가 과목마다 어떤 것인지 예를 든 것이다. 실험 위주의 과목인 경우 랩리포트, 토론 위주의 과목은 에세이 등 전공이 다른 교수들을 모아 그 학과에서 '주요' 과제나 숙제가 어떤 종류인지 정리해뒀다. 교수가 이를 어기면 학생은 교수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총장에게 얘기해 시정을 요구할 수 있고 실제 정책 실시 초기에는 그런 일이 종종 일어났다.

현대사회가 워낙 바쁜 것을 당연시하다 보니 대학에서도 기말이 되면서 초인간적으로 바빠지는 것 역시 당연하다고 여기는 분위기다. 또 무슨 부탁을 할 때도 늘 시작하는 말이 "바쁘시겠지만 부디"다. 오랜만에 연락을 주고 받을 때도 "요새 많이 바쁘지요"로 시작한다. 그런데 바쁘면 지는 거다. 바쁘게 겨우 마감일을 맞춘 일치고 제대로 했다고 자신할 수 있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김소영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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