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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후보자, 비숍을 제대로 인용했나 ?"‥왜곡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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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15일 기자간담회에서 "조선민족이 게으르다고 한 말은 내 얘기가 아니라 영국 지리학자 비숍이 한 말"이라고 해명한 것과 관련, 논란이 거세다. 영국 출신의 여행학자이자 지리학자인 비숍은 60대 나이에 한국을 네 차례 여행한 후 1898년 미국에서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비숍의 여행은 한반도 곳곳은 물론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인근 한국인 정착촌에까지 미쳤다. 비숍은 몸소 산골짜기를 걷고 나룻배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등 험난한 여정을 펼쳤다.

비숍의 저술은 철저한 체험과 관찰, 실증적인 기록정신의 산물로 100년 전 한국을 생생하게 기록한 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비숍은 책 여러 곳에서 한국의 절망적인 수탈구조에 분노하고, 한국민이 처한 고통에 안타까워한다. 특히 지배계급의 착취와 부정, 가혹한 세금, 공직자의 약탈, 심약한 군주, 조선을 둘러싼 국제정세의 불안정함 등을 상세히 다뤘다. 비숍은 한국에 대한 첫 인상은 재미없는 나라였으나 "갈수록 강렬한 흥미를 갖게 됐고 가능성이 매우 큰 나라"라고 술회했다. 그러면서도 한국민을 "간난에 견딜 줄 아는 강인하고 공손한 민족"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평민들은 면허받은 흡혈귀인 양반에게 피를 공급하고 있다"고 기술했다.
비숍은 당시 조선의 모습을 "안으로는 관리의 끝없는 수탈과 이에 대한 만성적인 불만들로 늘상 시한폭탄을 장착한 듯한 분위기였다"고 그렸다. 마침내 비숍은 한인들이 이주해 있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인근의 한국인 정착촌에 이르러서는 번창한 부농들을 보고 감격하기도 했다. 이에 "한국에 남아 있는 민중들이 정직한 정부 밑에서 생계를 보호받을 수 있다면 진정한 의미의 시민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 후보자가 "조선민족이 게으르다"라고 비숍을 인용했다는 구절은 러시아 방문 중의 한 대목에 나와 있기는 하다. 비숍은 "그동안의 조선인에 대한 편견이 크게 잘못됐음을 느꼈다. 그들은 절대 게으르지 않았다. 다만 조선에 살아서 게을렀던 것이다. 조선에 사는 조선인들은 그렇게도 가난하고 불결하고 게으른데, 러시아에 사는 조선인들은 왜 그토록 근면하고 유복한 걸까?"라고 언급했다.

문 후보자가 "서울은 냄새가 풀풀 나서 다닐 수 없다"고 말한 부분에 대해서도 비숍의 저술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다만 비숍은 "베이징을 보기 전까지 서울이 가장 더러운 도시가 아닐까 생각했다. 서울의 위엄을 생각할 때 그 불결함은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는 대목이 있는 정도다. 반면 "서울은 그 어떤 불가사의한 아름다움이 다른 어느 나라의 수도에도 필적할 만 했다"며 찬탄했다. 문 후보자가 말한 '양평 이방 800여명'에 대한 대목도 없다. 여러 구절에서 '흡혈귀인 관리'와 '양반들의 착취'에 대해 비판적인 눈길을 보내고 있다.
결국 비숍은 게으름이 '흡혈귀같은 양반계급'으로 인한 절망에서 비롯됐으며 "불행히도 한국민이 잠재된 에너지를 쓸 수 없고 중산층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지 않은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한국민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곧잘 드러내고 있다. 비숍은 "한국인은 중국인이나 일본인과도 닳지 않은 반면 두 민족보다 훨씬 잘 생겼으며 체격은 일본인보다 좋다"고 할 정도다. 맨 마지막 한국을 떠날 때의 기록은 이를 잘 대변한다.

"내가 처음 한국에 대해서 느꼈던 혐오감은 이젠 거의 애정이랄 수 있는 관심으로 바뀌었다. 이전의 어떤 여행에서도 나는 한국에서보다 더 섭섭하게 헤어진 사랑스럽고 친절한 친구들을 사귀어보지 못했다."

따라서 비숍과 관련한 문 후보자의 인용은 왜곡됐거나 과장된 부분이 많다는 지적이다.




이규성 기자 peac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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