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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기조종사를 지키는 등대… "우리는 관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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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비행장 관제탑에서 관제사들이 전투기의 이착륙을 통제하고 있다.

대구비행장 관제탑에서 관제사들이 전투기의 이착륙을 통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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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양낙규 기자]1977년 3월27일 스페인 테네리페에 위치한 로스 로데오 공항에서 사상 최악의 항공사고가 발생했다. 착륙하던 미국 팬암(panam)사 항공기와 이륙하던 네덜란드 KLM항공사 보잉 747기가 서로 부딪혀 총 583명이 사망한 것이다. 사고원인은 항공기의 이착륙을 통제하는 관제탑의 단순한 실수였다. 항공 전문가들은 관제탑의 판단에 따라 민항기 사고는 물론 군 작전도 실패로 끝날 수 있다며 관제사 임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지난 7일 공항 관제사 임무를 체험하기 위해 한국 공군의 최신예전투기 F-15K가 배치된 대구비행장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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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비행장에서는 공군 최신예전투기는 물론 하루 평균 22편의 국내외 민항기가 이착륙한다. 항공기의 이착륙이 많은 만큼 비행장은 활주로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큰 규모를 자랑했다. 부대 입구부터 관제탑까지 가는 데만 승용차로 10분을 달려야 했다. 관제탑이 위치한 활주로에 들어서자 '기동구역'이라는 빨간색 경고문이 눈에 들어왔다. 안내장교는 "부대장병들조차 출입이 금지되는 구역"이라면서 "일반인이 출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귀뜸했다.

 

관제탑은 8층 높이로 마치 바다 한 가운데 등대처럼 생겼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 8층 맨윗층에 가보니 10평 남짓한 공간이 나왔다. 관제실이었다. 사방이 유리로 둘러싸여 공항을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전방에는 팔공산의 풍경도 펼쳐졌다.

 

기자가 "전망이 좋은 곳에서 근무해 좋지 않느냐"고 말을 꺼내는 순간 활주로를 살피던 관제사들의 얼굴이 굳었다. 민항기 1대가 착륙을 위해 동쪽 상공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지만 활주로에 차량 한 대가 활주로를 가로지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관제사는 급히 통제실에 연락해 인도(Follow me)차량을 출동시켰다. 금세 노란색 차량이 활주로 한 쪽에서 쏜살 같이 달려나와 차량을 활주로 한 쪽으로 인도했다. 이어 민항기는 한 쪽 활주로에서 바퀴에 연기를 뿜으며 착륙했다.

 

조영욱 선임관제사(부사후158기)는 "관제탑은 이륙 1분, 착륙 2분을 지칭하는 '마의 3분'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이륙할 때보다 활주로와 충돌하는 착륙 때 사고발생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대구비행장 관제탑에서 여군 관제사가 전투기의 이착륙을 통제하고 있다.

대구비행장 관제탑에서 여군 관제사가 전투기의 이착륙을 통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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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제사들은 수시로 활주로의 마찰력을 측정해 비행조종사에게 통보한다. 비와 눈이 오면 활주로에 마찰력이 줄어 이착륙 거리가 더 길어지기 때문이다. 30분이 지났을까 이번에는 서쪽 상공에서 민항기 한 대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항공기의 이착륙 방향은 모두 바람에 따라 결정된다. 맞바람을 맞아야 착륙거리가 더 짧아진다.

 

관제사들은 새털구름, 양털구름 등 27가지 구름의 모양과 색깔을 보고 기상을 관측했다. 조 관제사는 하늘을 보더니 "오늘 날씨는 좋을 것 같아 다행이지만 비행기의 가장 무서운 적 중에 하나인 새떼도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새떼가 항공기 엔진에 빨려 들어가거나 충돌할 경우 대형사고가 발생할 수 있어 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관제탑 안에는 알 수 없는 용어들이 나열된 모니터 4대가 눈에 띄었다. 이 중 기능을 눈치챌 수 있는 모니터는 레이더 뿐이었다. 천정에 매달려 있는 레이더는 모두 6개의 원으로 그려져 있었다. 원 하나마다 거리는 40km. 모니터는 반경 240km 상공에 떠있는 항공기를 모두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레이더에는 4자리 고유식별번호를 꼬리표처럼 달고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김영길 관제대장(소령)은 "고유식별번호 하나만으로 민항기와 군용기, 적기와 아기를 모두 구분할 수 있다"면서 "대구비행장 관제권인 반경 8km, 고도 1.2km 외에 적기가 출연하면 방공관제사(MCRC)에서 통보해준다"고 설명했다.

 

동쪽 활주로 끝에서 반짝이는 물체가 보였다. 우리 공군의 F-15K 4대가 이륙을 위해 일렬로 서자 조정석 유리에 햇빛이 반사된 것이다. F-15K 조종사는 관제사와 통신을 하더니 활주로 끝에서 달려오기 시작했다. 마치 육상선수 우사인 볼트가 100m 레인을 달려오는 듯했다.

 

F-15K는 관제탑 앞에서 눈 깜짝할 사이에 솟아올랐다. 민항기에 비해 이륙거리가 절반에 불과했다. 굉음이 관제탑의 유리창문을 뒤흔들었다. 대구비행장에서 이륙한 F-15K는 작전 반경만 1800km에 달해 울릉도는 물론 최남단 마라도, 서해 북방한계선(NLL)까지 작전을 수행한다.

 

제 아무리 최신예전투기라고 하더라도 착륙할 때면 어김없이 관제사의 통제에 따라야 한다. 밤이 어두워지자 불을 밝힌 관제탑은 그야말로 등대처럼 보였다. 대구비행장 관제탑은 대한민국 영공을 지키는, 잠들지 않는 등대였다.






양낙규 기자 if@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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