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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한강, "5월 광주, 파괴된 영혼들의 전언" <소년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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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
한강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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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통과하지 않고는 어디로도 갈 수 없다고 느꼈다."

간호사가 환자의 몸에 주사바늘을 찔러 넣어야 하는 것처럼 작가들에게도 숙명이 존재한다. 1970년, 광주에서 출생한 작가 한강(44, 사진)은 열살 무렵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나기 직전 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이사했다. 이후 그녀는 외가 식구와 친척들, 여러 지인들이 당했던 처참한 고통과 광경을 숱하게 들었다. 그녀는 자라면서 "왜 그런 일들이 내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벌어졌을까라는 의문을 떨칠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한강 소설 책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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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은 재작년초부터 "도저히 피해갈 수 없었"던 5월 광주에 대한 작업을 시작, 최근 여섯번째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창비 출간)를 마무리했다. 이 소설은 수많은 자료, 현장 고증과 취재를 바탕으로 한강 특유의 정교함이 섬세하게 펼쳐져 있다. 이미 창비문학블로그 ‘창문’에 연재할 당시(2013년 11월~2014년 1월)부터 독자의 이목을 끌었던 열다섯살 소년의 이야기다.
"비록 어린 시절의 간접 체험이나 너무도 강렬하고 아팠다. 소설속 등장인물은 모두 현실에 있었던 사람들이다. 실제 모델도 있고......작업하는 내내 다른 소설보다 유독 내가 주인공이 된 것처럼 그들의 삶에 깊이 빠져 있었다. 한밤중 머리를 식히기 위해 산보라도 할라치면 온갖 도시의 불빛이 딴 세상 같았고 발이 자꾸 헛디뎌졌다."

5월 광주는 어떤 작가에게든 매우 어려운 주제다. 파괴된 영혼의 말을 대신 전한다고 할 때 작가 역시 파괴되는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또한 살아남은 자의 상처를 후벼파야 한다는 역설도 무시할 수 없다. 게다가 위령과 상처의 치유, 응징, 복권 등을 동시에 감행해야 하는, 지독하고도 형벌스런 과제를 안게 된다. 이번 소설과 관련,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80년 5월 광주는 작가의 역량을 시험대에 올리는 일"이라며 "'소년이 온다'는 한강을 뛰어넘는 한강의 소설"이라고 평가한다. 한강의 소설이 피할 수 없는 숙명, 소명의 완수에 대해서는 독자들의 영역에 달려 있다.

작가가 고백했듯이 주인공들은 현실에 있었던 인물이다. 중학교 3학년인 동호와 정대가 계엄군에 쓰러져 죽고, 동생 뒷바라지하느라 자신의 꿈도 놓아버린 정대 누나 정미 역시 행방불명된다. 그리고 그 현장에서 살아남은 김은숙, 임선주, 김진수는 파괴된 삶을 고통스럽게 이어간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무덥고 습했던 여름 끝에 가로수를 걷다가 바람이 얼굴과 팔에 감기는 감각에 놀라며 동호를 생각한다. 우리가 이들에게 어떠한 대답을 해줄 수 있는가 ?"라며 인간 존재의 본질을 되묻는다.
"당신을 잃은 뒤, 우리들의 시간은 저녁이 되었습니다. 우리들의 집과 거리가 저녁이 되었습니다. 더이상 어두워지지도, 다시 밝아지지도 않는 저녁 속에서 우리들은 밥을 먹고, 걸음을 걷고 잠을 잡니다. 당신이 죽은 장례식을 치르지 못 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본문 중 일부)

한강은 한승원(75)의 딸로 한국문학사에서 유례가 드문 부녀 소설가다. 두 사람은 소설가이자 교육자라는 평행이론에 시인이라는 타이틀이 더해져 있다. 한강은 데뷔 초기 "아버지에게서 받은 문학적 영향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숱하게 받았다. 그 때마다 그녀는 "아버지의 서재"가 한강 문학의 산실이라고 답한다.

"그저 아버지의 서재에서 맘껏 책을 가져다 읽고, 늦은 밤 조용히 글을 쓰고 있는 모습을 보며 자란 것이 가장 큰 영향인 것 같다. 아버지와 나는 세대도 경험도 다르다. 당연히 감수성이 다르며 문학도 다를 수밖에 없지 않는가 ?"

이제 데뷔한 지 20년이 지난 한강을 '한승원의 딸'로 아는 독자들은 드물다. 더 이상 한강에게서 한승원을 연상하지 않아도 될 만큼 문학적 성취를 이룬 까닭이다. 그러나 한강 소설 '소년이 온다'는 핏줄로 이어진 생명의 공유 자체가 한승원 문학의 또다른 유산일 수밖에 없다는 걸 알게 한다. 즉 두 사람이 삶을 함께 누리지 않았다면 나오기 어려웠을, 숙명이 배어 있는 소설로 비춰진다.

한편 오늘날 가장 주목받는 작가 중 한 사람인 한강은 1993년 '문학과사회'에 시를 발표하고, 이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 '붉은 닻'이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검은 사슴', '그대의 차가운 손', '채식주의자', '바람이 분다, 가라' '희랍어 시간' 등이 있고 소설집 '여수의 사랑' 등 다수와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 등이 있다. 현재 서울예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이규성 기자 peac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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