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의 이날 합동분향소 조문은 '대국민사과'에 대한 박 대통령 방식의 답변이다. '말'로 사과하는 것은 사고 수습과 직접 관련 없는 문제인 데다, 비판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진정성 없는 '수사(修辭)'는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말보다는 행동을 통해 이번 사고 희생자에 대해 깊은 애도를 표하는 게 적절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무회의 등에서의 사과만으로 끝낼 경우 각료들 앞에서 하는 '간접 사과'라는 비판도 의식했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로는 정부 합동분향소가 이날 오전 10시 공식적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대통령으로서 첫 조문을 한다는 차원이기도 하다. 달리 보면 대국민사과 요구와는 별개의 일정으로 미리 계획됐을 수 있다.
10여분간 진행된 대화에서 박 대통령은 주로 가족들의 불만과 하소연을 청취하는 데 집중했다. 한 가족은 "우리나라를 떠나고 싶다는 사람이 이렇게 많으면 안 되지 않느냐"고 했고 박 대통령은 "잘 알겠다"고 답했다. "내 자식이 이렇게 됐으면 어떻게 할 건지 그 마음으로 해달라", "이런 일이 다시는 없도록 해달라"는 등 말에도 박 대통령은 "반드시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조문 후 청와대로 돌아와 오전 10시 30분부터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사고를 예방하지 못하고 초동대응과 수습과정에 미흡했던 점에 대해 뭐라 사죄해야 할 지 모르겠다"며 "많은 고귀한 생명을 잃었는데 국민 여러분께 죄송스럽고 마음이 무겁다"고 사과했다. 박 대통령은 "새로운 대한민국의 틀을 바로 세워 안심하고 살 수 있는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나설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박 대통령의 이날 합동분향소 방문과 국무회의 사과 및 국가안전처 설치 지시가 정부를 향한 성난 민심을 어느 정도 누그러뜨릴 것인지가 관건이다. 정홍원 국무총리가 사고수습까지 '시한부 직책'을 맡고 있고, 일부이긴 하지만 현직 대통령에 대한 '하야 요구'까지 제기하는 상황에서 박근혜정부는 출범 1년만에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압승이 예상됐던 6ㆍ4 지방선거도 악몽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세월호 참사에 따른 국민적 절망이 현 정부에 대한 분노로 표출되면서 국정운영 동력이 최고조에 달해야 할 집권 2년차는 정반대 상황에 처했다.
앞으로 박 대통령은 절망과 분노를 극복하고 새로운 대한민국의 판을 짜기 위한 작업에 본격 착수할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이번 사고를 계기로 근본적인 국가 시스템을 바로 세우는 '국가개조' 수준의 혁신안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짧게는 6ㆍ4 지방선거를 전후로 국무위원 및 청와대 비서진에 대한 전면 개편 가능성도 점쳐진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 사고가 수습 국면으로 접어든 뒤 일련의 비전과 계획을 담아 대국민담화 형태로 발표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신범수 기자 answ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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