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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千日野話]퇴계도 일어나 학다리춤을 췄다(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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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섬의 스토리텔링 - 퇴계의 사랑, 두향(73)

[千日野話]퇴계도 일어나 학다리춤을 췄다(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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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또 나으리의 큰 뜻이 담긴 이곳의 이름을 제가 짓는 것이 천하의 밝음에 누를 끼치는 것이 아닐까 심히 저어되옵니다. 하오나, 사또를 모시면서 그 거경(居敬, 늘 공경하는 마음으로 일상을 살다)과 춘풍(春風, 모든 사람의 본질과 실체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봄바람같은 마음)을 사모하였기에, 혼신의 힘으로 최선을 다할 것이옵니다."
좌중이 모두 박수를 쳤다. 일행은 남한강변으로 다시 자리를 옮겼다.

강선대와 이호대는 충주댐 건설로 지금은 모두 물에 잠겨있다. 하지만 퇴계 당시에는 강 양쪽 기슭의 기암절벽을 배경으로 울창한 노송과 우레와 같은 물소리가 반기는 절승(絶勝)이었다. 도락산을 타고앉은 채운봉과, 희디흰 봉우리가 옥으로 만든 죽순을 닮았다 하여 퇴계가 작명한 옥순봉이 내려다보고 있다. 강선대 위에서 다시 마지막 제명연(題名宴)이 펼쳐졌다. 이지번과 이지함 형제는 선무(仙舞)를 추고, 퇴계도 일어나 춘풍에 노니는 학다리춤을 추었다. 공서와 이산해는 부채를 흔들며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그런 가운데 명월은 두보의 '강매(江梅)를 읊는다.

 梅蘂臘前破 梅花年後多(매예납전파 매화연후다)
 매화 꽃술은 섣달 전날에 터지지만
 매화 꽃잎은 신년 첫날에 벙그는구나
 絶知春意好 最奈客愁何(절지춘의호 최나객수하)
 봄날이 좋은 줄 문득 알았는데
 이걸 어쩌나 나그네 근심을

 雪樹元同色 江風亦自波(설수원동색 강풍역자파)
 눈빛과 매화꽃빛 원래 같은 색이고
 강바람 또한 제 물결을 쳐서 생긴 것

 故園不可見 巫岫鬱嵯峨(고원부가견 무수울차아)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니
 높고 험한 무협의 산이 답답하도다

 
시를 읊고난 뒤 명월은 일어나 검무(劍舞)를 추기 시작한다. 두향은 구담봉 농바위 소석대(小石臺)에 새겨진 퇴계의 시를 읊으며 거문고를 연주했다.

 碧水丹山界(벽수단산계)하고
 淸風明月樓(청풍명월루)라
 仙人不可待(선인불가대)하니
 ??獨歸舟(초창독귀주)로다

 푸른 물 붉은 산 경계에
 바람 맑고 달 밝은 누각이 있네
 산에 살던 사람 기다릴 수 없으니
 슬픔 속에 홀로 배타고 돌아온다

 
거문고 위에서 문득 흐느낌이 들렸다. 가슴이 벅차서였을까. 어떤 예감이 목울대를 넘어와 울컥 울음으로 솟은 것일까. 두향이 울고 있었다. 이산해가 와서 가만히 그녀의 등을 두드리며 달랬다. 사람들은 모두 춤을 멈추고 강선대 바위에 둘러앉았다. 공서가 문득 말했다.

"오늘 하루 단양의 풍광을 누리다 보니, 심신이 모두 지치는 듯 합니다. 하지만 이 강선대는 단양팔경의 백미이니, 더욱 공을 들여 칭명을 하는 것이 좋겠지요. 제가 즉흥으로 '강선두향가'를 읊으려 하니, 모자라더라도 유쾌히 들어주십시오."

 모두들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이십년 이 내몸은 아무것도 아니었네
 연년세세 꽃 피어도 봄이 온 건 아니었네
 2월 찬바람에 거친 분매(盆梅) 한 그루
 높고 외롭고 쓸쓸한 사람을 만났네
 뜻이 맑을수록 세상에 섞이지 못해
 가은(可隱)의 단산벽수로 숨어든 사람
 시도 말씀도 꽃처럼 향기로워
 한 낱말을 따라가면 한 구절이 돌아오고
 뜻도 천성도 물처럼 낮추나니
 한 마음을 낮출수록 한 뜻이 드높아져
 천하의 고명(高名) 아래 이런 사람 숨었다니
 알수록 모르겠고 갈수록 깊어지도다
 도수매 늘어뜨린 꽃잎아래 몸을 낮춰
 사랑도 이처럼 어리고 여린 마음이어야 하나니
 생각이 깊어지니 다정이 병이 되네
 평안이 길어지니 걱정이 생겨나네"
<계속>

▶빈섬의 스토리텔링 '千日野話' 전체보기



이상국 편집에디터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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