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죽하면 '상명지통(喪明之痛)'이란 말이 생겼을까. '상명지척(喪明之戚)'이라고도 하는 이 말은 눈이 멀 정도로 슬프다는 뜻이다. 아들이 죽은 슬픔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공자의 제자인 자하(子夏)가 아들이 죽자 상심한 나머지 밤낮을 울다가 마침내 눈이 멀었다는 고사에서 유래했다.
단 12척의 배로 백척간두에 놓였던 나라를 구한 성웅(聖雄)도 자식의 죽음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한낱 아비였다. 안편도, 지금의 전남 신안군 장산도에 머물던 장군 이순신은 충남 아산 본가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는다. 스무 살의 셋째 아들 면이 전사했다는 소식이었다. 장군은 하늘을 원망하며 아들의 죽음에 통곡했다. 1597년 10월14일, 그날의 일기는 한마디 한마디가 절절했다.
"하늘이 어찌 이다지도 너그럽지 못하단 말인가? 아들아,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것이 마땅한데, 네가 죽고 내가 살았으니 이렇게 이치에 어긋나는 일이 어디 있느냐? 천지가 캄캄하고 태양조차 빛을 잃었구나. 슬프다. 내 아들아! 날 버리고 어딜 갔느냐?…하룻밤 지내기가 1년 같구나."
세월호가 침몰한 지 오늘로 엿새째. 살아 돌아온 학생들은 325명 가운데 75명. 나머지 250명의 학생들은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왔거나 아직도 어둡고 차가운 물속을 헤매고 있다. 진도 팽목항과 실내체육관에서 실종된 자식들을 한없이 기다리는 부모들의 심정이 오죽할까. 우울과 불안, 통곡, 오열, 탈진, 실신, 분노…. 마음도 몸도 서서히 무너져가고 있는 그들의 충격을 그 어떤 말로 대신할 수 있겠는가.
자식을 잃은 부모들, 그리고 아직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아니 놓을 수 없는 부모들. 자식을 먼저 보내고 살아남았음을 자책하는 부모들의 눈물을 위로할 수 있을까. '참척을 당한 어미에게 하는 조의는 아무리 조심스럽고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위로일지라도 모진 고문이고, 견디기 어려운 수모(박완서의 '한 말씀만 하소서')'라던데….
어경선 논설위원 euhk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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