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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사리 말문 연 전명규 전 빙상연맹 부회장

[아시아경제 김흥순 기자]중년 남자가 한국체대 뒷문을 나섰다. 얼굴에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황사와 미세먼지를 막기 위해서였을까. 지난 21일 오후 7시, 캠퍼스에 어둠이 짙어갔다. 그 남자가 전명규(51) 교수, 전 빙상연맹 부회장이었는지 확인하지 못했다. 전 교수를 만나기 위해 본지 기자가 한국체대를 방문한 지 나흘째 되던 날의 일이다. 그는 지난 17일 빙상연맹 부회장직에서 물러난 뒤 연구실에 칩거하면서 언론과 일절 접촉하지 않았다.

그는 왜 침묵하는가. '파벌', '전횡' 등 2010년 밴쿠버동계올림픽부터 불거지기 시작해서 2014년 소치에서 폭발한 국내 빙상에 대한 비판과 비난을 홀로 짊어진 그는 왜 자신을 변호하거나 반격하지 않는 것일까. 소치대회가 끝난 지 한 달. 빅토르 안(29)의 러시아 귀화, 김연아(24)의 억울한 은메달 등 논란은 여전하다. 전 교수는 "올림픽 지원 단장으로서 남자 쇼트트랙 대표 팀의 성적 부진에 책임을 지겠다"며 사퇴했다.
전 교수는 2002년부터 한국체대에서 전문실기(빙상) 교수로 일했다. 본지 기자는 그를 인터뷰하기 위해 여러 차례 전화를 했다. 그러나 휴대전화는 꺼져 있거나 받지 않았고 유선 전화도 연결되지 않았다. 직접 찾아갔다. 그의 연구실은 교내 빙상장에 있다. 전 교수가 출근한 사실을 확인해도 만날 수 없었다. 18일부터 매일 찾아갔다. 사흘째인 20일에야 얼굴을 마주쳤다. 불 꺼진 연구실 문을 두드리자 "누구세요"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한동안 침묵이 흐른 뒤 잠긴 문이 열렸다. 그는 태극마크 선명한 검은색 트레이닝복을 입었다. 표정에 피곤함과 경계심이 교차했다.

전명규 교수

전명규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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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입장을 말할 상황이 아니고 그래서도 안 된다. 때가 되면 자리를 마련하겠다."
전 교수는 자신이 침묵하는 이유를 '빙상 발전을 위한 대의적 차원'으로 이해해 달라고 했다.전 교수는 "(자신과 빙상연맹에 대한 비난의)사실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책임자의 한 사람으로서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했다. 그는 "빙상계가 거듭나려 노력하는 시점이다. 물러난 사람으로서 자중하고 제자들을 가르치는 일에 집중하겠다"고 했다. 빙상연맹은 최근 쇄신을 외치며 빙상발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전명규 교수는 '한국 빙상의 대부'라는 찬사와 '파벌과 전횡의 중심'이라는 평가를 동시에 받는다. 소치대회를 앞두고 이미 심상찮았다. 빙상계 원로인 장명희(82) 아시아빙상경기연맹 회장이 "자신을 추종하는 세력은 잘못도 용서해 주지만, 눈 밖에 나면 불이익을 준다"며 전 교수를 지목했다. 빅토르 안의 아버지 안기원(57) 씨도 "코치 선임과 대표 선발 방식 등 연맹의 모든 행정을 한 사람이 독점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전 교수는 쓴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너무 일방적으로 사람을 매도하는 분위기로 흘러가는 것 같다"면서도 "누구와 싸우는 듯한 모양새로 비쳐도 '지금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또 "개인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최근에는 빙상 관련 기사를 확인하지 않는다. 텔레비전 뉴스 자막에 이름이 나오는 걸 보고 바로 전원을 껐다"고 했다. 그를 마지막으로 만난 25일 오후까지 그는 연구실에서 한번도 나오지 않았다. 20일 소치올림픽에 출전한 제자들을 환영하는 학교 행사에도 불참했다.

윈터 스포츠 전문 웹진 '하키뉴스 코리아'의 편집인 겸 발행인인 성백유(53) 대표는 전명규 교수가 사퇴한 지난 17일 자신의 소셜 네트워크(SNS)에 "평창올림픽이 4년 남았는데 임진왜란 때 이순신을 옥에 가둔 꼴"이라고 비판했다. 성 대표는 1998년 나가노, 2006년 토리노 등 동계올림픽과 여러 세계선수권대회를 취재한 동계종목 전문기자다. 그는 전 교수에 대해 "한국 빙상계에서 학부형의 촌지를 없앤 지도자다. 그동안 동계올림픽에서 한국이 따낸 메달은 모두 빙상종목에서 나왔으며 피겨 외에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선수가 없다"고 했다.

성 대표는 '사실을 모르는 네티즌과 인터넷 뉴스 팀'이 진실을 왜곡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SNS에서 "전명규가 길러낸 빙상 스타들에게 묻는다. 전이경, 김동성, 채지훈, 이상화, 모태범, 이강석, 이승훈, 안현수. 너희들이 대답을 해라. 전명규가 죄인이냐? 누가 죄인이고 도둑인지 너희들 입으로 진실을 밝혀라"고 부르짖었다.
전명규 교수는 앞으로도 침묵을 지킬 것 같다. 운영하던 블로그도 폐쇄했다.

김흥순 기자 sport@




김흥순 기자 spor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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