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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과 '박수' 교차한 강기훈씨 재심 법정…"이 날만을 기다렸다"

최종수정 2014.02.13 16:08 기사입력 2014.02.13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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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서울고법, 자살방조 혐의로 기소된 강기훈씨에 '무죄' 선고
법정 안팎 재판 보러 온 사람들로 인산인해…판결 선고에 박수치며 눈물
시종일관 담담하던 강씨, 돌아가신 어머니 얘기에 끝내 눈시울 붉혀


▲ 13일 오후 서울고법에서 강기훈씨가 무죄 판결 관련 입장을 밝히고 있다.

▲ 13일 오후 서울고법에서 강기훈씨가 무죄 판결 관련 입장을 밝히고 있다.


[아시아경제 이혜영 기자] "말로 표현할 수 없이 기쁩니다. 20년을 '무죄' 한마디를 듣기 위해 달려왔습니다."

13일 오후 2시 서울고법 505호 법정에서 박수와 함께 안도의 한숨 소리가 터져 나왔다. 한 시간 가까이 재판장의 입을 숨죽이며 지켜보던 사람들은 '무죄' 판결이 선고됨과 동시에 서로 손을 맞잡고 눈물을 흘렸다.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몰리면서 미처 법정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은 문 밖에 선 채로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렸고 판결이 선고되자 서로 부둥켜안고 눈시울을 붉혔다.

이날 이 법정에서는 1991년 자살방조 혐의로 기소돼 옥살이를 했던 강기훈씨의 재심 선고공판이 열렸다.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이라 불리며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된 것을 반영하듯 법정 주변은 이른 오후부터 강씨 지지자들과 시민단체 관계자 등으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간암 투병 중으로 건강이 좋지 않은 강씨는 다소 수척해진 모습으로 검은색 목 폴라 티셔츠에 회색 정장을 입고 피고인석에 섰다. 재판장이 판결문을 읽어 내려가며 무죄를 선고하기까지 30여분 간 그는 시종일관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판결 선고 직후 기자회견을 통해 입장을 밝힌 강씨는 자신의 기쁨보다는 주변 사람들의 관심과 희생에 고마움을 표했다. 그는 "이 자리에 오기까지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수많은 분들의 위로와 격려를 잊지 않고 있다"며 "당사자와 똑같이 괴로워하고 아파한 이 분들의 아픔이 오늘의 판결로 조금이라도 풀리길 바란다"고 말했다.

담담한 모습으로 기자회견에 임하던 강씨는 무죄 판결을 기다리다 돌아가신 어머니 얘기가 나오자 감정이 북받친 듯 잠시 입을 꾹 다물고 눈을 감기도 했다.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 진상규명 대책위원회'에서 활동했던 김성근 목사와 함세웅 신부도 이날 재판을 보기 위해 법정을 찾았다. 법정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이들은 선고가 나기까지 긴장된 표정 속에 조용히 눈을 감고 결과를 기다렸고 무죄가 선고되자 나오자 그제서야 환한 웃음을 지었다.

김성근 목사는 "이 기쁨을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정말 기쁘다"고 소감을 전했다. 함세웅 신부는 "23년간 무죄를 위해 목숨을 걸어 온 강기훈 형제는 한반도의 찢겨진 삶을 상징한다"며 "검찰로부터 (강기훈씨를) 못 지킨 것을 사제로서 죄책감을 가져왔다. 오늘의 판결로 사법부가 조금이나마 속죄의 속내를 내비쳤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민주당 신계륜 의원도 현장을 찾았다. 신 의원은 선고 결과를 '사필귀정'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검찰에 의해 조작·날조된 사건은 현 정부에서도 발생하고 있을 수 있다"며 "사법 피해자가 더 이상 생기지 않도록 '강기훈 법(가칭)' 등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기훈의 쾌유와 진실규명을 위한 시민모임' 소속 회원들은 선고 결과를 환영하며 강씨를 억지 증거로 기소하고 유죄 판결을 내린 검찰과 사법 조직을 강하게 비판했다. 김선택 집행위원장은 "강기훈 유서날조 사건은 국가권력이 정의롭지 못한 폭력을 휘두를 때 국민 개개인에게 어떤 불행한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건"이라며 검찰이 판결을 받아들이고 상고를 포기할 것을 촉구했다.

한편 이날 서울고법 형사10부(부장판사 권기훈)는 "검찰의 증거만으로 피고인이 유서를 대신 작성했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강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유서의 필적과 피고인의 필적이 동일하다고 본 1991년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의 감정은 신빙성이 없으며 이 사건의 유서를 김기설씨가 직접 작성했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이 사건은 1991년 5월8일 당시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사회부장이던 고(故) 김기설씨가 노태우 정권의 퇴진을 주장하며 반정부 투쟁 분위기를 확산시키려고 분신자살하자, 전민련 총무부장이었던 강씨가 김씨의 자살을 방조하고 유서를 대신 써준 혐의를 받고 3년간 옥살이를 한 것에서 시작됐다.

검찰은 강씨가 김씨의 유서를 대신 작성해주며 분신자살을 하도록 방조했다며 기소했고, 서울형사지법은 강씨의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 3년에 자격정지 1년6월을 선고했다. 판결은 1992년 7월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3년의 옥살이를 마치고 출소한 강씨는 2007년 11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진실 규명 결정에 따라 재심을 청구했고 2012년 10월 대법원에서 재심 개시 결정을 받아 서울고법에서 재심공판이 진행돼왔다.


이혜영 기자 itsm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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