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나는 당시 얼굴이 화끈거려 제대로 껌을 팔지 못했다. 옷차림도 추레하게 입고 얼굴도 씻지 않고 나섰지만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버스 안의 모든 승객들이 나를 쳐다보는 것만 같아 당장 버스에서 내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껌을 팔아야만 자신의 가족을 먹여 살리는 한 소년의 절절한 가슴이 어떠했을지 느끼지 못했다. 실제로 껌을 사며 돈을 주는 승객들은 어떤 마음으로 소년을 대하는지 파악조차 할 수 없었다. 말이 참여관찰이지 그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체감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현 부총리는 올해가 시작되자마자 지난 2일 전주 한옥마을을 현장 방문했다. 그 자리에서 지역 문화산업 대표, 청년창업가 등과 간담회를 가지고 현장의 애로사항을 들었다. 정책과제를 발굴했다고 한다. 여기에는 출입기자 20여명도 같이 했다. 지역대표와 대화하는 자리에 많은 기자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고 카메라가 터지는 상황의 간담회에서 어떤 체감을 할 수 있었을까. 잘 짜인 시나리오대로 다음은 누가 말하고 그것에 대해 부총리가 답하는 '이벤트식 현장방문'으로는 절절한 서민들의 목소리를 듣기 어려울 것이다.
박근혜정부는 '현장에 답이 있다'는 것을 늘 강조한다. 맞는 말이다. 모든 문제는 현장에 있다. 그 현장에 제대로 서 있다면 갈등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다. 그것을 바탕으로 해결점을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짜인 시나리오에 맞춘 지금과 같은 현장방문으로서는 체감은커녕 오히려 위화감을 줄 수 있다. 시나리오는 훌륭할지 몰라도 그것은 현실과 분명 다르기 때문이다.
세종=정종오 기자 ikoki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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