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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경영패러다임 3.0]해외서 본 한국기업…정경유착 1세대 그림자 지우고 日에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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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명진규 기자] 1928년 초판이 탄생한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가장 정확하고, 전문적이며, 권위 있는 세계 최고의 영어사전이다. 1989년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한국의 고유명사로 '재벌(chaebol)'이 등장했다. 재벌의 뜻은 다음과 같다.

"한국(남한)의 대기업 형태. 대규모 사업 집단으로 가족 경영을 위주로 함. 가족으로 소유와 경영이 이뤄지며 가족의 폐쇄적인 소유와 경영, 지배가 특징."
이처럼 재벌이라는 단어는 과거 한글, 김치, 태권도 등과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했다. 바꿔 말하자면 외국에서 바라보는 우리 기업들과 한국식 오너 경영에 대한 시선은 멸시와 비웃음에 불과했다.

한국 오너 경영의 역사를 살펴보면 고도 성장기가 시작된 1970년대부터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1997년까지를 1세대, 이후부터 지금까지를 2세대, 이제 막 문을 연 3세대로 구분할 수 있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명시된 재벌이란 단어는 1세대 오너 경영을 여과없이 보여주고 있다. 지금도 후진국에서는 빈번하게 벌어지는 일이지만 당시만 해도 고도 성장기에 있었던 우리나라는 대규모 기간산업을 벌이고 이를 특정 재벌 회사에 맡겼다.
정권의 비호가 없으면 성장도 불가능한 것은 물론 사업조차 할 수 없었던 시대다. 기업의 오너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실제 사업보다 정경유착이었다.

1995년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사태로 법정에 선 기업인은 대기업 총수 8명을 포함해 총 40여명에 달했다. 재벌로 불리던 당시 오너 경영인 대부분이 법정에 서야 했다. '한강의 기적' 속에 가려진 1세대 오너 경영의 단면이었다.

세계 언론은 한강의 신화 속에 감춰진 이면을 들춰내며 한국식 오너 경영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후 과거사를 청산한 오너 기업들은 2세대로 진화했다.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2세대 오너 경영 시대는 이른바 글로벌 시대다. 정권의 비호로 내수 시장이나 국가 차원의 대형 프로젝트들을 수주해 돈을 벌었던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으로 향하며 우리나라의 고도성장을 이끌었다.

이 시점에서 재벌이라 불리던 1세대 오너 경영의 재평가가 시작됐다. 일본 업체를 따라 하기 급급했던 전자·자동차 업체들은 세계 시장으로 몸집을 불려가기 시작했다.

한국식 오너 경영도 자리 잡았다. 1세대 오너 경영 시대에 오너의 절대적인 권력과 사업감각이 회사의 성장을 이끌었다면 2세대 오너 경영 시대에선 전문 경영인과의 호흡이 중요해졌다. 사업 영역은 더욱 커졌고 기술과 국제적인 감각을 갖춘 젊은 전문 경영인들이 합류하면서 한국 오너 기업들에 대한 평가도 달라졌다.

지난해 초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는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한국을 대표하는 대기업들이 해외시장에서 일본의 경쟁업체를 누르고 승승장구하고 있다는 기사를 보도했다. 일본 언론은 자국 산업을 지탱하고 있는 각종 산업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로 한국이 급부상하며 한국식 오너 경영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기 시작했다.

여전히 곱지 않은 시선도 존재했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등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이 국가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지나치게 커 국내 경제계는 물론 정치권도 이들 기업의 과도한 영향력을 벗어나기 힘들다는 평가였다.

이 같은 평가에도 불구하고 오너와 전문경영인이 함께 호흡하는 2세대 오너 경영은 제 실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2세대 오너 경영의 가장 큰 특징은 과감한 투자다.

전문경영인의 경우 사업에 대해선 잘 알지만 책임 문제로 인해 과감한 투자를 결정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반면 오너의 경우 자가당착에 빠질 우려가 많다. 하지만 오너가 자신의 경영철학을 바탕으로 전문성을 가진 전문경영인과 긴밀하게 상의해 투자를 결정할 경우 과감한 투자로 경쟁사들을 한발 앞서 갈 수 있다.

이 같은 2세대 오너 경영의 특징이 지금의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등 수출 대기업들을 일군 것이다.

수출로 인한 고성장이 멈춘 현재 2세대 오너 경영은 3세대 오너 경영에 자리를 넘기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3세대 오너 경영에는 투명한 기업 경영과 창조경제를 통한 새로운 먹거리 발굴이라는 새로운 과제가 주어졌다. 다시 한 번 한국식 오너 경영의 시험대가 마련된 것이다.



명진규 기자 ae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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