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화강암 재질에 점을 찍어내 듯 그려진 그림은 기억속에 담긴 가뭇한 풍경처럼 아련하다. 사라져가는 것들, 남루하고 초췌한 모습, 소박한 사람들이 서글프게 다가온다. 그림 속 풍경은 너무 서글퍼서 오히려 정겹고 눈물겹다. 박수근(1914~1965)의 작품 '강변', '빨래터', '절구질하는 여인', '애기 업은 소녀'는 우리나라 사람이 가장 사랑하는 그림들이다.

박수근 작품 '빨래터'.

박수근 작품 '빨래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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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박수근의 탄생 100주년이다. 박수근은 이중섭, 장욱진 등과 더불어 한국 근대화단을 대표한다. 박수근은 평생 초췌하고 궁핍하게 살면서도 가장 한국적인 모습을 화폭에 담아 '국민화가'로 불린다. 박수근은 생전 "나는 우리나라의 옛 석물, 즉 석탑·석불같은데서 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의 원천을 느낀다"는 말로 자신의 작품 세계를 설명한 적 있다.


"나는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는 예술에 대한 대단히 평범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내가 그리는 인간상은 단순하고 다채롭지 않다. 나는 그들의 가정에 있는 평범한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물론 어린아이의 이미지를 가장 즐겨 그린다."

박수근의 아들인 성남씨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가슴을 가진 분"이라고 아버지를 회상한다.

박수근의 아들인 성남씨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가슴을 가진 분"이라고 아버지를 회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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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근은 일제 강점기인 1914년 2월21일 강원도 양구군 양구면 정림리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 부친이 광산업에 실패, 집안이 몹시 궁핍해 보통학교(지금의 초등학교)만 간신히 마쳤다. 독학으로 그림을 공부해 1932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하며 화단에 등장했다. 독학하던 시절, 프랑스 화가 밀레의 '만종'을 접하고 "하느님 나는 이 담에 커서 밀레와 같이 훌륭한 화가가 되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했다는 일화가 있다. 당시 입선작은 '봄이 오다'라는 제목의 수채화로 이른 봄의 농가를 그린 작품이다.

1953년 대한민국 미술전람회(이하 '국전')에서 특선을 받았고, 1957년에는 낙선의 아픔을 겪었다. 그 때 술에 빠져 백내장에 걸렸으며 한쪽 눈이 실명하기도 했다. 돈이 없어 수술받지 못한 탓이다. 박수근은 1962년 국전 심사위원으로 위촉돼 빛을 보는 듯 했다. 그러나 1965년 간경화로 세상을 떠났다. 늘상 궁핍했던 박수근은 미군 PX에서 미군의 초상화를 그려주며 작품 활동을 하기도 했다. 잿빛을 띤 흰색 바탕에 생활 주변의 풍경을 굵은 선으로 소박하게 그렸다. 생전에 박수근 화실조차 없어 마루에서 그림을 그렸으며 변변한 개인전조차 제대로 열지 못 했다.

박수근 작품 '시장사람들'

박수근 작품 '시장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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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과 더불어 가난한 천재의 전형으로 불리는 박수근은 사후에서야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지금은 작품의 평균 크기(호)당 가격이 2억9000만원이 넘을 정도로 가장 그림값이 비싼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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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탓에 가장 위작이 많은 작가로, 여러차례 논란이 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2005년, 2008년 박수근의 대표작 '빨래터'가 위작 논란으로 곤혹을 치뤘다. 나중에 감정을 통해 진품으로 확인됐다. 빨래터는 2007년 5월 미술품 경매사인 서울옥션 경매에서 45억2000만원에 낙찰돼 국내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박수근 작품 '아기 입은 소녀와 아이들'.

박수근 작품 '아기 입은 소녀와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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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근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오는 17일부터 3월16일까지 진행한다. 관훈동 가나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리는 기념전에서는 박수근의 유화 90여점과 수채화, 드로잉 등 120여 점을 볼 수 있다. 총 작품가로는 1000여억원이 넘는다. 이번 전시에서는 '빨래터'를 비롯, 그동안 화집에서만 볼 수 있었던 1950년대 작 '시장 사람들'과 '노인과 소녀'(1959년), '귀로'(1964년), '고목과 행인'(1960년대) 등도 감상할 수 있다.

이옥경 가나아트 대표는 "그간 전시에 자주 안 보였던 작품, 연대별로 박수근의 전체 작품 세계를 알 수 있는 작품을 선별해서 내놓을 작정"이라며 "근대 작가의 뿌리인 박수근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박수근의 작품은 소박한 감정이 묻어나며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이 담겨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가나아트센터는 유럽 및 미국 등에서도 전시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이규성 기자 peac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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