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경호 기자]교수신문이 매년 전국 교수들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를 통해 선정하는 '올해의 사자성어'에서 2013년은 '倒行逆施(도행역시)'로 결정됐다. 설문조사는 지난 6일부터 15일까지 열흘간 전국 대학교수와 교수단체, 재야학자 등 622명을 상대로 실시됐으며 추천위원단이 뽑은 43개 후보에서 압축된 최종 5개 후보 가운데 도행역시가 응답자의 32.7%, 204명으로 가장 많이 선택받았다.


도행역시는 중국의 사기(史記)와 오자서열서(伍子胥列傳)에 등장하는 오자서가 그의 벗 신포서에게 한 말로서 어쩔 수 없는 처지 때문에 도리에 어긋나는 줄 알면서도 부득이하게 순리에 거스르는 행동을 했다는 데서 유래했다. 도행역시를 추천한 육영수 중앙대 교수(서양사)는 "박근혜 정부의 출현 이후 국민들의 기대와는 달리 역사의 수레바퀴를 퇴행적으로 후퇴시키는 정책ㆍ인사가 고집되는 것을 염려하고 경계한다"라고 추천 이유를 밝혔다.

최낙렬 금오공대 교수협의회장(물리학과)은 "새 정부의 일처리 방식이 유신시대를 떠올릴 정도로 정치를 후퇴시키고 있다"고 말했고 김선욱 숭실대 교수(철학과)는 "한국 최초의 여성대통령, 부녀대통령으로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리더십을 기대했지만, 오히려 과거의 답답했던 시대로 회귀하는 모습을 보였다"라며 "국정에서 민주주의의 장점보다는 권위주의적 모습이 더 많이 보인 한 해였다"고 지적했다.


도행역시 다음으로는 22.5%(140명)가 와각지쟁(蝸角之爭)을 선택했다. 달팽이 뿔 위에서 싸우는 격이라는 뜻이다. 정출헌 부산대 교수(한문학과)는 "새 정부의 출범에 대한 희망을 실감하지 못한 채, 한해 내내 지루하기 그지없는 여야의 정쟁으로 일관했다"라고 추천이유를 밝혔다.

3위는 가짜가 진짜를 어지럽힌다는 뜻의 이가난진(以假亂眞). 재야사학자 김명수씨는 "한 해 동안 나라가 온통 국가기관의 선거개입으로 혼란에 빠져 있다"면서 "사이버상에서 가짜들이 거짓말과 비방으로 여론을 호도하고 국민을 우롱했다. 거짓이 진실을 가린 한 해였다"라고 말했다.


4위(17.8%, 111명)는 일의고행(一意孤行)이다.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고집하면서 완고하게 일을 추진한다는 의미다. 5위(9%, 56명)는 가죽신을 신고 발바닥을 긁는다는 격화소양(隔靴搔痒)이다. 힘써 노력하지만 얻는 성과가 없거나, 일이 철저하지 못해서 성에 차지 않는다는 의미다.


올해의 사자성어는 2001년부터 매년 발표돼 왔는데 대체로 당시 시대상황을 부정적으로 묘사한 사자성어가 주를 이루어왔다. 김대중정부 마지막해인 2001년은 오리무중(五里霧中), 2002년은 이합집산(離合集散)이었다.


노무현정부 5년간을 보면 2003년 출범 첫해는 우왕좌왕(右往左往)이었고 사상 초유의 탄핵사태가 벌어진 2004년은 한 무리에 속한 사람들이 다른 무리의 사람을 무조건 배격한다는 당동벌이(黨同伐異)였다. 2005년은 상화하택(上火下澤, 위에는 불, 아래에는 못. 불이 위에 놓이고 못이 아래에 놓인 모습으로 사물들이 서로 이반하고 분열하는 현상을 상징), 2006년은 밀운불우(密雲不雨, 하늘에 구름만 빽빽하고 비가 되어 내리지 못하는 상태), 2007년은 자기기인(自欺欺人, 자신을 속이고 남을 속인다. 자신도 믿지 않는 말이나 행동으로 남까지 속이는 사람을 풍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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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정부 5년간을 보면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가 대규모 일었던 2008년은 호질기의(護疾忌醫)였다. 병을 숨기면서 의사에게 보이지 않는다는 말로 문제가 있는데도 다른 사람의 충고를 듣지 않는다는 의미다. 2009년은 방기곡경(旁岐曲逕, 샛길과 굽은 길. 일을 바르게 하지 않고 그릇된 수단을 써서 억지로 함을 비유하는 말)이었다.


이어 2010년 장두노미(藏頭露尾, 머리는 겨우 숨겼지만 꼬리가 드러나 보이는 모습. 진실을 공개하지 않고 숨기려 했지만 거짓의 실마리가 이미 드러나 보인다는 뜻), 2011년 엄이도종(掩耳盜鐘, 귀를 막고 종을 훔친다. 나쁜 일을 하고 남의 비난을 듣기 싫어서 귀를 막지만 소용이 없음을 의미하는 말), 2012년 거세개탁(擧世皆濁, 온 세상이 혼탁한 가운데서는 홀로 맑게 깨어있기가 쉽지 않고, 깨어있다고 해도 세상과 화합하기 힘들다는 뜻) 등이었다.


이경호 기자 gungh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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