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메테우스가 신으로부터 훔친 불과 함께 문자를 인류에게 가져다주었을 때 제우스는 격노해 그를 얼음산에 묶어놓고 평생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게 하는 형벌을 내렸다.
지금 우리 앞에 문자가 펼쳐 내는 풍경을 보며 나는 오래 전의 그 비탄과 격노를 듣는 듯하다. 요즘 우리가(인류가, 아니 한국 사회가) 문자로써 하고 있는 일들은 과연 우리 자신이 문자를 감당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 들게 하고 있다. 글로써 글을 죽이고, 말로써 말을 억압하며, 사실로써 진실을 가리는 현실. 범람하는 것은 잡설(雜說)과 요설(妖設)과 기담(奇談)과 한담(閑談)이다. 넘치는 것은 하찮은 농지거리의 만담(漫談)이며, 만족할 줄 모르는 혀를 달래는 미담(味談)이며, 또한 재미만 있으면 모든 게 용납되는 또 다른 미담(味談)이다.
마치 몸뚱이는 없이 옷가지, 장신구만 현란한 것과 흡사하다. 2500년 전 한 현인이 말한 것처럼 알맹이(質) 없이 껍데기(文)만 요란한 것이다. "책(글)은 인류의 저주다. 인간에게 내리는 최대의 불행은 인쇄의 발명이다(디즈레일리)"라는 개탄은 그 누구보다 지금 우리를 위해 준비해 둔 말인 듯하다.
이명재 사회문화부장 prome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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