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략전쟁을 자행한 대가로 상실한 군대와 자위권을 회복하겠다는 생각은 당연한 연장선상에 있다. 더구나 종군 위안부 문제를 아예 '역사 왜곡'으로 만들어 가려는 아베 정권의 태도엔 어안이 벙벙할 정도다.
그런데 요즘 이 치열한 한일전에 미국이 뛰어들고 있다. 미국이 이 위험천만한 한일전에 개입하는 것은 그만큼 절박한 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집권 2기 이후 내세운 세계전략은 한마디로 '아시아·태평양 중시전략(Pivot to Asia-Pacific)'으로 설명된다.
향후 지구촌의 중심으로 떠오를 이 지역에 전략적 중심축을 이동해 놓겠다는 의미다. 물론 이를 통해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의도다. 그런 구도 속에선 일본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아시아에서 미국을 대신해서 중국에 맞설 수 있는 국가는 일본뿐이라는 결론은 쉽게 나온다.
지난 21일엔 존 케리 국무장관과 척 헤이글 국방장관이 호주의 국방 및 외무장관과의 연례협의를 마친 뒤 일본의 방위정책 재검토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한국 정부가 강력하게 거부감을 피력하고 있는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지지 의사를 천명한 셈이다. 미국 외교가에선 “한국민과 정부의 감정은 이해하지만, 미국의 전략적 이해관계를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는 말이 점차 자리 잡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24일(현지시간) 얼어붙은 한일관계가 미국의 아시아 정책에 부담을 주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실었다. 신문은 “최근까지 (불편한 한일관계의) 책임은 위험한 민족주의자 아베 총리에게 있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지만, 최근 들어 그 분위기가 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워싱턴의 균형추가 갈수록 일본 쪽으로 기울고 있음을 전한 것이다.
실제로 최근 미국을 방문한 외교부의 고위관계자는 “미국 측 파트너를 만나면 자꾸 일본과 불편한 관계를 빨리 풀라고 요구해온다”며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미국의 이해관계로 보면, 일본을 앞세운 중국 견제 전략에 한국이 어깃장을 놓고 있는 것으로 비쳐지고 있는 셈이다.
한국 외교는 치열한 한일전에서 미국의 편파판정을 감수해야 하는 처지에 내몰릴 수도 있다. 현재의 불리한 상황을 감안, 분위기 반전을 위한 대책이 시급한 상황까지 이르렀다. 외교전이 펼쳐지는 외교무대는 물론, 인권과 학술 및 민간분야의 장외 응원전까지 고려한 새로운 작전이 필요한 시점으로 보인다.
뉴욕=김근철 특파원 kckim100@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