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지우의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
■ '내 딸 속에서 펼쳐지고 있는 나의 내생(來生)'을 다시 생각한다. 황지우도 그렇겠지만 나 또한 내 딸이 나의 다음 생(生)이다. 나는 내생이 론칭하기 위한 마중물같은 존재다. 나는 점점 더 필요없어져야 하고, 점점 더 필요없어져야 하는 생을, 납득하고 결재해야 한다. 딸이 아름다워질 수록, 생의 중심에 들어올 수록, 나는 밀려나는 바깥이 된다. 내생과 동거하는 사람, 혹은 전생과도 동거하는 사람. 나는 겹쳐진 원들의 교집합을 바라본다. 한쪽은 너무 낡았고 한쪽은 너무 새로워, 모두 내것이 아닌 듯 낯설다. 곧 전생은 희미해지고 내생은 또렷해올 것이지만, 문제는 그럴 때 아름다운 폐인을 내 자신이 견딜 수 있는가, 이리라.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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