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경기전망 '단명(短命)' 논란
[아시아경제 박연미 기자] 한국은행이 석 달 만에 내년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제자리로 돌려놨다. 신흥국의 경기 둔화와 국제유가 상승이 부담이 될 것이라고 했다. 국내 경기 전망엔 변화가 없지만, 대외 변수 때문에 성장률 전망치를 낮춘다는 얘기였다.
10일 한은이 발표한 내년도 성장률 전망치는 3.8%다. 한은은 지난 7월 3.8%였던 종전 전망치를 4.0%로 올려 잡았지만, 불과 석 달 만에 눈높이를 낮췄다. 신규 취업자 수 전망치는 종전 40만명에서 38만명으로, 물가 전망도 2.9%에서 2.5%로 하향 조정했다. 그러면서도 내년도 경상수지 흑자폭은 종전 전망치보다 70억달러 많은 450억달러까지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잦은 성장률 전망치 조정 배경을 묻자 김중수 한은 총재는 "국제통화기금(IMF) 등 주요 국제기구가 잇따라 성장률 전망치를 낮추고 있음을 고려했다"고 말했다. 대외 변수를 고려해 전체적인 흐름을 따랐다는 얘기다. 신운 한은 조사국장은 "신흥국의 경기둔화와 국제유가 상승"을 성장률 전망치 하향 조정의 결정적인 배경으로 꼽았다.
하지만 김 총재와 신 국장의 말은 경기전망 단명의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더구나 신흥국의 성장세 둔화와 중동의 정정불안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한은은 지난 7월 이른바 '장밋빛 전망' 논란 속에서 내년도 성장률 전망치를 높였다. 수출에 기대는 경제 구조를 고려하면 세계 성장률 전망치를 낮추면서 국내 성장률 전망치를 높여 잡는 그림이 어색하다는 비판이 나왔지만, 김 총재는 4.0% 성장을 자신했다. 금리 인하 문제로 각을 세웠던 기획재정부가 '4.0%' 성장을 공언한 마당이었다. 5월 금리인하에 이은 7월 전망치 상향조정을 두고 김 총재가 정부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그랬던 한은이 석 달 만에 변심했다. 이에 신 국장은 "정부 전망치가 3.9%, 한은의 전망치는 3.8%로 불과 0.1%포인트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면서 "전망은 통계가 아닌 만큼 오차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오차범위 이내의 숫자로도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아울러 "예산안 심사를 앞두고 세수 전망을 둘러싼 논란이 일수도 있지만, 세수는 성장률뿐 아니라 성장의 내용에 따라서도 좌우되는 것"이라는 논리를 폈다. 신 국장의 설명을 종합하면, 세수에선 수출보다 내수의 비중이 높은데 내년엔 내수 전망이 괜찮아 성장률 전망치를 좀 낮추더라도 세입 기반엔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4.0%라는 부담스러운 숫자를 내려놓으면서도 예산 심사에 고춧가루를 뿌렸다는 비판을 피해갈 수 있는 설명이지만 시장을 설득하기엔 한계가 있어 보인다.
국회의 예산안 심사를 기다리고 있는 정부는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판을 벌이기도 전에 내년도 세입 전망이 설득력을 잃었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온다.
기재부 고위 관계자는 "한은이 국정감사와 예산안 심사를 앞두고 성장률 전망치를 내려 잡아 예산안 심의 과정이 상당히 까다로워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경제 여건이 크게 달라지지 않은 현시점에 한은이 수정 전망을 내놓은 건 역설적으로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의 장악력이 얼마나 추락했는지 보여주는 증거"라고 수군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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