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양낙규 기자]10월의 독립운동가에 이성구(1896∼?) 선생과 6ㆍ25전쟁영웅에 로버트 마틴(1902.4∼1950.7) 미군 대령이 각각 선정됐다.


양낙규 기자의 Defense Club 바로가기

30일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독립운동가에 선정된 이성구(1896∼?) 선생은 1896년 평북 선천에서 출생한 선생은 1919년 3ㆍ1운동이 전국적으로 전개될 때 선천읍에 있던 선천면사무소의 방화사건을 주도했다. 방화 소요죄로 징역 10년의 선고를 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1923년 5월 형집행 정지로 석방되어 상하이로 망명했다.


3년 뒤 상하이 '병인의용대'에 가입해 3차례 상하이 일본총영사관 폭파를 단행,창고를 파괴하고 일경 2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1930년 6월 상하이 한국독립당에 가입해 기관지인 '상해한문' 기자로 활동하면서 일제의 침략통치에 항거했다. 그러나 일제의 단속에 걸려 1933년 10월 체포되어 이듬해 3월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징역 7년의 형을 받고 경성교도소에서 순국했다. 정부는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10월의 6ㆍ25전쟁영웅'으로 선정된 로버트 마틴(1902.4∼1950.7) 미군 대령은 6ㆍ25전쟁 중에 전사한 인물이다. 마틴 대령은 1950년 7월 천안지역 인근으로 진격하던 북한군 T-34 탱크에 맞서 싸우다가 장렬히 전사했다. 그가 전사할 무렵은 전쟁 발발 초기로 오산 죽미령에서 미국 스미스 기동대가 참패하는 등 북한군이 파죽지세로 남진하던 때다.


당시 미 34연대 작전장교인 존 던 소령은 24사단장 딘 소장의 명령에 의해 북진을 시도하고 있었지만 북한군의 매복공격으로 예하 중대들이 상당한 피해를 봤다. 이 때문에 평택∼안성 축선에 방어선을 설치하려던 34연대의 계획은 수포가 됐고 대전지역까지 위험에 빠졌다.

AD

1950년 7월 8일 천안지역을 방어하던 마틴 대령은 절망적인 상황임에도 소규모 병력을 이끌고 대전차 공격을 지휘했다. 천안대로 동쪽에서 전투를 수행하던 그는 계속 진격해 오는 T-34 탱크에 공격을 가했다.


마틴 대령이 발사한 구식 로켓탄은 T-34 탱크의 강철 외피를 뚫지 못했고, 탱크에서 발사된 포탄을 맞고 그는 산화했다.


양낙규 기자 if@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