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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목욕하는 두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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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의 시골집에서 명절을 쇤 뒤 땀이나 쭉 빼고 가야겠다고 들른 불국사 온천. 토요일이라 그런지 물 반 사람 반이다.

앞에서 앉아 몸을 닦고 있는 노인이 유난히 마른 체구라 무심코 바라보는데, 그는 왼팔이 없다. 젊은 날 전쟁의 상처일까. 아니면 산업화를 거쳐오면서 겪은 노동의 잔흔일까. 그의 오른손은 두 손이 하는 몫을 하느라 부산했지만 아주 정확하게 자기 일을 해나갔다. 등 뒤의 때를 미는 일은 역부족이었지만 다른 건 아무 불편을 느끼지 않는 듯 했다. 그런데 그 옆에 한 노인이 앉는다. 문득 바라보다 이 노인도 한 팔이 없다는 걸 알고 잠깐 놀란다. 그는 오른팔이 사라졌다. 오늘 어느 상이용사 단체에서 온천을 온 걸까? 아닌 것 같다. 먼저 앉았던 노인이 반색을 하며 다른 노인에게 사라진 자기 팔뚝을 가리키며 인사를 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나중 노인도 껄껄 웃는다. 동병상련이란 말이 이렇게 실감나는 풍경이 또 있을까?
왼팔없는 노인이 말을 걸었다. 그는 활달했다. "어디서 왔수?"  
오른팔없는 노인이 대답한다. "아화에서 왔어요. 댁은 어디여?"  
왼팔노인이 대답한다. "아, 나는 여기 이 동네 살아요. 그런데 몇 살이나 됐소?"  
오른팔 대답. " 일흔 다섯이요."
왼팔. "나보다 두 살 아래네. 정정하시네."

실례지만 그 대화를 엿듣고 싶어 약간 가까이로 다가갔으나 물소리 때문에 잘 들리지 않았다. 아마도 언제 팔을 잃었는 지에 대한 대화를 더 나누는 것 같았다. 살아온 날들의 어려움까지, 서로 나눴으리라. 어쩌면 서로 합쳐져야 온전한 두 팔이 되는 사람끼리의 유대감 같은 것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생각보다 빨리 대화는 끊어졌다. 흘깃흘깃 살피는 주위의 눈들을 의식했음일까? 오른팔 없는 노인이 입을 다물었고, 몇 마디 더 건네던 왼팔 없는 노인도 마침내 자기 몸을 닦는데 열중하기 시작했다.

어찌 몸만 떨어져 나갔으랴? 마음도 한 덩이 떨어져 나갔으리라. 옹이가 앉듯 굳어버린 상한 자리에 불편과 괴로움의 더께가 앉았으리라. 제 팔뚝을 제 손으로 잘라내 한 깨달음을 얻었던 옛 조사(祖師)처럼 그들 또한 잃은 것 대신에 무엇인가 얻은 것이 있었을까. 지금은 상한 날들을 씻어내려는 듯 물방울들이 기우뚱한 어깨와 허리를 타고 흘러내리고 있을 뿐이다.
<향상(香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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