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은 여자를 만나 친구의 마음을 알려줬다. 친구가 얼마나 성실한지 칭찬했음은 물론이다. 여자는 양친이 모두 아프셔서 남자를 만날 처지가 못 된다고 말했다. 언젠가 집안이 평안해지면 만날 뜻이 있다고 답했다.
받지 않을 전화 걸기를 의아하게 여기던 마종기 시인은 나중에 시 '전화'에 친구의 마음을 담았다.
당신이 없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전화를 겁니다.
신호가 가는 소리
오래 귀에 대고 많은 전화 소리가 당신 방을 완전히 채울 때까지 기
다립니다. 그래서 당신이 외출에서 돌아와 문을 열 때 내가 이 구석
에서 보내는 모든 전화 소리가 당신에게 쏟아져서(후략)
다들 하루 종일 휴대전화를 곁에 두는 이 시대, 이 시는 어색해진다. 말하자면 '당신이 휴대전화를 지니고 있지 않음을 알기 때문에 전화를 건다'는 상황이 바로 떠오르지 않는다. 지금 그에게 휴대전화가 없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까? 전화를 받지 않아서? 전화를 받지 않는 건 휴대전화를 잃어버려서일 지도 모른다. 이 경우 전화 수신음이나 음악은 그 사람의 곁이 아니라 다른 엉뚱한 곳에서 울리게 된다.
휴대전화가 유선전화를 대체하면서, 이 시에 공감할 생활문화적인 바탕이 사라져버렸다. 편리해지긴 했는데 잔향이랄까, 여운이랄까, 그런 그윽함이 사라지는 게 아닌가 싶다.
여자의 빈 방을 자신의 마음으로 가득 울리곤 하던 친구와 그 여자는 어떻게 됐을까? 그 얘기는 마종기 시인의 시작(詩作) 에세이집 '당신을 부르며 살았다'에서 직접 읽으시길.
백우진 선임기자 cobalt10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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