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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사람은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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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자와 죽은 자가 만나는 추석, 추석연휴에도 어김없이 사람은 죽는다. 신문과 방송이 전하는 화재와 교통사고 뉴스가 그걸 알려 준다. 특별한 사건사고 없이도 사람은 죽는다. 휴대폰 문자로 들어오는 부고가 그걸 입증한다. (내 문자 메시지 알람 음이 '똑똑똑…' 어떤 손가락이 현관문을 세 번 두드리는 노크소리인데, 반갑고 설레는 마음으로 열어본 문자가 부음이면 일순 숙연해지곤 한다.)

오랜만에 만난 부모형제들이 모두 잠든 시간, 익숙지 않은 잠자리에서 뒤척이다 TV를 켰더니, 지리산 자락 외딴 산골 조그만 집에 사는 94세 남편과 93세 아내의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이 화면에 잔잔히 펼쳐진다. 부부로 맺어진 지 어느덧 80년, 그 사이 아들딸 낳고 키워 대처로 내보내고 부부는 그 곳에 남아 있다. 거동이 불편한 아내는 온종일 툇마루에 앉아 있고, 남편이 지팡이에 의지한 채 느릿느릿 호박과 가지 따서 된장 끓이고, 닭장에서 꺼내온 계란으로 찜을 해서 밥을 먹는다. 모든 음식을 아궁이에 나무 때서 익혀내는데 그 역시 남편 몫이다.
어느 날 남편은 아내를 부엌 앞 우물로 인도해 머리를 감기고 수건으로 말리고 빗으로 빗겨준다. "내가 이뻐?" 아내가 묻고 "그럼, 이뿌지" 남자가 답한다. "얼굴에 주름이 백 개도 넘는데 뭐가 이쁠까" 그렇게 말하며 활짝 웃는 93세 아내의 얼굴이 화면에 크게 잡혔는데 온통 깊고 가는 주름 천지다. 그러나 남편을 바라보는 눈에는 장난기가 가득, 천진난만하다. (내 눈에도 '예쁘고 곱게' 보였다.) 이튿날 남편은 외출 준비를 한다. "나 혼자 있으면 무서워, 빨랑 돌아와." 아내의 말을 뒤로 하고 지팡이 짚고 읍내로 나간다. 은비녀와 참빗, 손거울, 그리고 뻥튀기 한 자루를 들고 돌아왔다, 흰머리를 땋아 은비녀를 꽂은 아내는 거울을 보며 다시 환하게 웃는다. 이가 다 빠진 부부는 뻥튀기를 잘게 잘라 사이좋게 나눠 오물거린다. "영감, 우리 한날한시에 돌아갑시다." 아내의 말에 남편이 끄덕인다.

내년 추석에도 그들을 TV로 볼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문득 지리산 자락으로 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차례 음식 준비로 온종일 쿵쾅대다 지금은 저쪽 방에서 곤히 잠든 내 아내를 깨워, 손잡고 함께 가보고 싶다는 생각.

<치우(恥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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