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선가시처럼 목에 걸린 영화 '바람이 분다'
[스포츠투데이 조병무 기자]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바람이 분다'는 한국 관객을 배려한 영화가 아니다. 일장기가 그려진 제로센이 난무하는 장면은 보는 내내 불편하다. 감독은 비행기 설계자 호리코시 지로(1903-1982)의 실제 삶과 시인 겸 소설가 호리 타츠오(1903-1954)의 소설 속 이야기를 엮어 한 편의 러브 스토리를 만들었다 한다. 하지만, 이 영화를 남녀 간의 순수한 사랑 이야기로만 봐주기에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장치들이 우리들의 아픈 상처를 자극한다.
청년 지로와 훗날 그의 연인이 되는 나오코와의 첫 만남은 지진이 나서 온 도시가 불에 타는 와중에 이루어진다. 지진의 폐허 속에서 다친 사람을 구해주고 돌아서는 지로의 모습은 누가 봐도 멋있다. 나오코는 지로에게 연민의 정을 품고 두 사람의 인연은 더 길어지게 된다. 영화에서는 사고 현장에 정의로운 젊은이가 출동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 일본 정부는 관동대지진의 혼란이 수습되지 않자 국민의 불만을 다른 쪽으로 돌리려 조선인들이 폭동을 일으킨다는 소문을 퍼뜨렸고, 일본인들은 몰려다니며 6천여 조선인을 무차별 학살했다는 것은 확인된 사실이다.
지로는 결핵에 걸린 나오코를 사랑하게 되고, 나오코는 지로의 청혼을 받아들인다. 당시 결핵은 전염성 강한 불치의 병이었다. 두 사람은 함께 하는 시간이 매 순간 절실했다. 퇴근해 돌아온 지로는 한 손으로는 병들어 누워있는 아내의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비행기 설계도면을 그렸다. 나오코도 지로와 함께 비행기를 설계한 셈이다. 마침내 지로는 꿈 꾸어온 비행기를 완성했다. 그 날, 나오코는 몰래 집을 떠났다.
이들의 애틋한 사랑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과거 작품에서 보여왔던 소년소녀의 사랑 혹은 우정과 질량감이 다르다. 감독의 초기 작품인 '미래소년 코난'의 코난과 나나, '천공의 성 라퓨타'의 시타와 파즈 커플은 텔레파시나 밧줄로 묶어냈지만, '바람이 분다'의 지로와 나오코는 연애의 설레임부터 치열한 세상살이까지 아주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특히, 아픔을 이겨내고 행복하기를 소원하는 나오코의 결혼식 장면은 코 끝을 찡하게 한다.
지로가 만든 비행기는 제로센이다. 제로센은 일본 해군의 요청으로 미쓰비씨사에서 대량생산한 전투기다. 그 수는 1만 여대에 이른다. 영화 중간 중간에 지아니 카프로니 백작이라는 사람이 나타나 꿈과 환상의 이태리 비행기로 얼버무려지지만 제로센은 가미카제 특공대의 자살공격기였음을 우리는 잘 안다. 태평양 전쟁이 막바지로 치달을 무렵, 제로센 1천 여대가 자폭하며 400여 척의 연합군 군함에 피해를 입혔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목표로 삼았던 연합국 항공모함은 한대도 침몰되지 않았다. 사실 가미카제 전술은 연합군에 대한 공격 효과 보다는 최후의 발악을 하던 일본군이 자국민을 상대로 군국주의 정신을 극대화하는 방편으로 쓰였다. 야스쿠니 신사에 가면 제로센을 볼 수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지난 7월 26일 한국 기자들과의 인터뷰 자리에서 '일본은 과거에 무엇을 했는지 잊고 있다. 일본은 역사적 감각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런 나라는 망한다. 위안부 문제는 이미 오래 전에 일본이 제대로 청산했어야 하는 부채다. 한반도 여러분께 사과 드린다'며 자신의 역사인식을 분명히 했다. 양심 있는 감독이다. 그렇다고 '바람이 분다'를 편안한 마음으로 즐길 수 있을까? 과거사에 대한 사과도 없이, 망언의 수위는 높아지고, 평화헌법마저 개정하려 하는데, 현실은 현실이고 영화는 영화다라고 따로따로 나누어 볼 수 있을까? '바람이 분다'는 철저히 일본인을 위해 만든 영화다.
거장은 이번이 마지막인 듯 인생을 반추하며 자기 자신의 삶을 영화 전반에 투영해놓기까지 했다. 그들의 잔치에 한국 사람들은 초대받지 않았다. 우리는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을 구태여 먹으려 애 쓸 필요가 없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