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동선 기자]60 < 2H+G < 64.
무심코 이용하는 계단에도 법칙이 있단다. 한 단의 높이(H)와 폭(G)을 이처럼 계산했을 때 60~64cm가 적당하다는 것인데 사람의 보폭을 고려한 섬세한 배려가 느껴진다. 프랑스 여성 건축가인 에블린 페레 크리스탱의 책 '계단, 건축의 변주'에 나오는 얘기다. 계단을 오르내릴 때 걸음걸이와 리듬이 맞지 않는다면 이런 계산 없이 막무가내로 지어놓은 계단이라 의심해 봄직하다.
비단 계단에만 이런 법칙이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에도 사람들이 으레 지키는 규범이 있다. 우리는 그것을 상식이라 부른다. 비상식적인 일들이 많이 일어나지만 그보다 어이없는 경우는 몰상식을 대면할 때다. 비상식을 뛰어넘는 몰상식은 사회 통념을 송두리째 무시하기에 이에 대한 준거를 마련한 게 명문화된 법일 것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과 그 일가에 대한 압류·압수수색 이후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예우법)이 새삼 환기되고 있다. 전 전 대통령은 뇌물수수와 반란 등의 혐의로 무기징역과 2205억원의 추징금을 선고받았던 터라 이 법에따라 연금, 치료, 비서관 지원 등의 예우를 박탈당했다. 이후 사면·복권 됐으나 한번 박탈된 예우를 다시 받을 수 없다는 게 법제처의 해석이다.
그러나 경호와 경비는 예외여서 전씨를 경호·경비하는 데 지난해에만 7억원의 나랏돈이 쓰였다. 그간 재산이 29만원 밖에 없다고 버티며 1672억원의 미납 추징금을 나몰라라 해왔던 전직 대통령에게 매년 수억원의 혈세가 들어간다는 것에 많은 국민이 혀를 내두르고 있다.
국민의 행복과 안녕에 이바지한 전직 대통령은 마땅히 추앙받고 예우받아야 한다. 그러나 행복과 안녕의 주체가 자신과 그 일가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미납 추징금 특별환수팀의 '활약'이 본격화되자 전씨의 아들들은 국내외에 소유하고 있던 고급 주택을 팔거나 매물로 내놨다. 장남 재국씨의 시공사에서는 구권 화폐로 보너스를 줬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그들은 어쩌면 시공을 넘어 미래를 꿈꿨는지도 모를 일이다.
지난주 전 전 대통령 측이 "취임 전부터 원래 재산이 많았다"(6일 민정기 전 청와대 비서관)며 "수사기록 열람 신청 때 '왜곡된 사실을 바로잡겠다'는 취지의 사유서를 붙일 것"(5일 정주교 변호사)이라고 하는 대목에선 어안이 벙벙하다. 법으로 따져 묻겠다는 포석으로 보이는데 언감생심 '왜곡된 사실' 운운하는 것에 국민들은 '왜곡된 진실은 어디 갔느냐'고 되묻고 있다.
1969년 제정된 '예우법'은 2011년까지 여섯 번 개정됐다. 지난달 말 김영환 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것을 포함해 19대 국회에서도 4건의 개정안이 발의돼 계류중이다. 시공을 초월하지 않는 이상 '국가장법', '국립묘지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등이 적용될 날도 머지않아 올 것이다. 그때 또 많은 국민들은 혼란스러울 것이다.
과연 국민의 상식은 헌법, 법률, 명령, 조례, 규칙 등 법 테두리 어디쯤에 있는 것일까. 아직 법은 상식과는 괴리가 있어 보인다. 몇몇 전직 대통령은 그 법 위에 군림하려는지 모르겠다. 법과 상식의 간극이 클수록 국민들의 허탈감은 더 커진다. 상식이라는 걸음걸이에 리듬이 맞아야 진짜 법이 아닐지.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