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

[Book]고르바초프의 '선택'.."인간의 존엄보다 높은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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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씨앗을 심지만 수확을 볼 수 없을 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소련 사회의 개혁에 필요한 여러 씨앗들을 많이 심어둬야 하는 것의 임무다"


1985년 소련공산당 서기장으로 처음이자 마지막 소련대통령인 고르바초프의 취임 연설은 훗날 자신에게 닥쳐올 비극을 미리 예견이라도 한 듯 하다. 예감은 곧 찾아왔다. 1991년 그가 권좌에서 물러난 순간 조국과 과거의 동지들은 '배신자', '매국노', 심지어는 '예수를 팔아넘긴 유다'로 비유되는 등 온갖 수모와 비난을 퍼부었다.

반면 서방에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체제를 종식시키고, 독일 통일과 동유럽의 민주화를 불러온 인물로 온갖 찬사를 보냈다.그처럼 평가가 극명히 엇갈리는 지도자도 드물다. 어느 평가이든간에 결국 고르바초프는 21세기 가장 비운의 개혁가인 것은 분명하다.


여기서 의문이 남는다. 과연 소련의 종말이 고르바초프의 정치적 실수 탓일까 아니면 이미 예정된 붕괴였을까 하는 점이다. 그러나 소련은 고르바초프 이전에 늙은 정치국원과 장로장치로 변질된 공산당 일당독재로 죽어가는 철의 장막이었다는 것은 모두가 인정하는 부분이다.

고르바초프의 회고록 '선택'은 그가 쓴 마지막 자서전이다. 고르바초프는 자서전에서 "이제 비로소 내 삶에 대한 이야기를 모두 털어놓았다는 생각이 든다. 도대체 내 삶의 어떤 면이 나의 정치적 선택과 결단에 그토록 큰 영향을 미쳤는가라는 대답이 바로 이 책"이라고 정리한다.


따라서 일정 부분 자신을 변호하는 데 집중돼 있다는 걸 인정하고 읽을 수 밖에 없다. 그렇다라도 고르바초프가 직접 들려주는 이야기는 철의 장막에 가리워진 권력투쟁의 이면사, 최고 지도자들의 부침과 대권을 둘러싼 세력간 합종연횡과 음모, 배신, 천의 얼굴을 한 권력의 맨 얼굴과 비밀 등 드라마틱한 요소들로 가득하다.


더욱이 고르바초프는 우리나라와 각별한 인연을 갖고 있다. 역사적인 한소 수교와 88 서울올림픽 소련 참가 등이 그것이다. 고르바초프의 최측근였던 알렉산드르 야코블레프는 후일 회고담에서 수교와 올림픽 참가가 여러 곡절에도 불구하고 고르바초프, 세바르드나제, 야코블레프 등 3인에 의해 결정된 것임을 밝힌다.


고르바초프의 정책은 페레스토로이카(개혁)과 글라스노스트(개방)으로 정의된다. 그의 개혁, 개방은 21세기 역사의 큰 흐름을 완전히 바꿔놓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지만 아직 공정하고 객관적인 평가를 내리기에는 이르다는 의견도 많다. 자서전에서는 일개 지방의 지도자에 지나지 않던 시골 정치인인 고르바초프가 서열과 출신 성분이 엄격한 소련에서 어떻게 최정상에 이르렀는지를 잘 보여준다.


지성, 낙관론, 지칠 줄 모르는 활력, 달변, 놀라울 정도의 정치적 민첩성과 수완 외에도 쿨라코프, 안드로포프, 수슬로프 등 당대 실세들과 연줄을 쌓아가는 영리함이 그의 무기였다. 그러나 고르바초프라 할지라도 목숨을 건 정치싸움에 도전했다가 아무런 상처 없이 벗어날 수는 없는 노릇, 최종 승리를 쟁취하지 못하면서 최악의 상처를 입게 된다. 그래서 그에게는 항상 비운의 개혁가를 낙인이 찍혀 있다.


세계사적으로 보면 냉전과 평화 구축, 러시아의 시장경제와 민주화를 가져온 인물이라는데 이견이 없다. 자서전에서는 고르바초프라는 인물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으며 80년대 전후의 소련 내부 사정과 연방 해체 과정의 흑막을 보다 자세히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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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일 고르바초프 최후의 자서전 '선택'/고르바초프 지음/이기동 옮김/프리뷰 출간/값 2만1000원>




이규성 기자 peac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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