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소비자보호총괄책임자, 누구 없소
이달부터 금융회사 지정 의무화...'책임만 많은 한직' 인식에 내부선임 어려워
[아시아경제 장준우 기자]금융소비자보호총괄책임자(CCO)를 의무적으로 선임하라는 당국의 주문에 은행들의 한숨이 커지고 있다. 권한보다 책임이 큰 CCO 자리에 누구를 앉혀야 할지 난감한 상황이다.
23일 금융권 등에 따르면 CCO는 독립된 소비자보호부서를 이끌고 금융상품 개발 단계서부터 판매, 사후 관리에 이르기까지 금융 전 과정에 관여해 금융소비자보호를 책임지는 역할을 맡는다. 이달부터 시행된 '금융소비자보호 모범규준'에 의해 금융사들은 선임 임원 가운데 CCO를 지정해 소비자보호총괄부서를 관할하게 하고 업무상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
하지만 신한ㆍKB국민ㆍ우리ㆍ농협 등 시중은행 대부분은 아직까지도 선임부행장이나 본부장들이 CCO를 겸직하는 등 당국의 모범규준을 준수하지 못하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소비자보호에 대한 중요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당국의 모범기준을 이행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하지만 내부적으로 CCO 선임과 독립조직을 신설하기 위한 시간이 더 필요하기 때문에 은행들이 의견을 모아 당국에 6개월 동안의 유예를 요청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시간이 필요한 일인데 당국이 조급하게 소비자보호 관련 규정을 따르도록 주문하고 있어 내부적으로 어려움이 많다"고 덧붙였다.
소비자보호 업무는 임직원들이 기피하는 부서 1순위로 통한다. 인사평가에 중요한 영업 경력이 단절될 뿐 아니라 고객들의 불만을 접수하고 처리해야 하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당국이 금융소비자보호를 강조하면서 이를 책임지는 CCO의 위상이 커질 것으로 보였지만 아직도 책임만 많은 한직으로 인식되고 있는 분위기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소비자보호를 책임지는 CCO는 영업부문과 대치되는 껄끄러운 자리"라며 "소비자보호에 대한 실적평가도 민원취하 여부에 달려있어 임원이 관리할 수 있는 범위가 한계적"이라고 말했다.
금융권에서는 CCO의 위상은 최고경영자(CEO)의 경영철학에 따라 다를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소비자보호를 장기 성장의 기반으로 보는 CEO라면 가장 신뢰할 수 있고 전도유망한 임원을 CCO로 선임할 것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CCO는 임원의 무덤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CCO를 영입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모범규정안의 취지에 맞게 독립성이 온전히 보장되려면 내부 인사보다 외부인사가 더 적합하다"며 "하지만 내부사정에 어두운 외부인사가 CCO를 맡게 되면 내부에서 더 많은 갈등을 빚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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