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론, 추진 동력 얻을 수 있을까?
[아시아경제 나주석 기자]지난 17일 강창희 국회의장은 제헌절 기념축사를 통해 개헌 논의를 꺼내들었다. 강 의장은 "개헌의 필요성에 많은 국민이 동의하고 있다"며 "현행 헌법이 이루어진 1987년 이후 우리 사회의 규모와 내용이 천양지차로 달라졌다"고 말했다. 국회의장이 직접 개헌 필요성을 제시하고 나선 것이다. 하지만 국회의장의 개헌론에 대한 여야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한 상황이다.
이날 새누리당 민현주 대변인은 구두논평을 통해 "국민의 의견을 잘 살펴보고 헌법과 시대 정신을 잘 반영할 수 있도록 개헌 문제를 고민해보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배재정 대변인도 "개헌 시기는 국민의 동의가 가장 중요하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개헌에 대해 따로 말씀드리지 않겠다"며 "개헌에 대해서는 입장이 없다는 것이 청와대의 공식 입장"이라고 말했다. 환영과는 거리가 먼 반응이다. 그나마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는 이날 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권력의 부패를 막기 위해서는 반드시 권력을 분권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 강 의장조차도 현 시점을 개헌론을 본격화할 시기라고 보지는 않았다. 강 의장은 새 정부가 출범한지 5개월도 되지 않았으며 경제·안보 환경 또한 좋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며 "올해 말까지는 새정부가 일을 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되, 내년 초부터는 개헌 논의를 본격적으로 공론화해서 19대 국회에서 마무리를 짓자"고 말한다.
강 의장은 본인조차도 현 시점은 이르다고 인정하면서 왜 개헌론을 지폈을까? 강 의장으로서는 전반기 국회의장인 자신의 임기가 끝나는 2014년 5월 30일 전에는 논의가 시작되어야 한다는 현실적인 필요성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의 모든 일정이 선거중심으로 옮겨가기 전에 개헌론의 불씨는 어떻게든 지펴야 한다는 필요성 때문으로 보인다.
개헌의 방향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지만, 필요성은 높은 편이다. 1987년 만들어진 헌법과 우리의 현실 사이의 괴리가 크다는 점 뿐만 아니라 5년 단임제 대통령제의 문제점, 분권형 대통형제도의 필요성 등의 주장들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여야에서도 개헌론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목소리들은 많다. 민주당 김한길 대표는 민주당 우윤근 의원의 저서 '개헌을 말한다' 출판기념회에서 "개헌은 대통령이 이끄는 것보다 국회에서 제대로 된 절차를 거쳐 논의돼야 한다"며 "언제가 적정한 때인가 하는 것은 국민들의 동의를 구하는 때가 적정한 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새누리당 이재오, 민주당 김진표 의원 등은 지난달 대정부질문을 통해 정홍원 국무총리에게 개헌 필요성에 대한 질문을 하기도 했다. 지난 5월에는 여야가 헌법 개정 준비 작업에 착수하기도 했다.
하지만 개헌론이 본격적으로 진행될지 여부는 집어봐야 할 부분들이 있다. 우선 1987년 이후 수차례 개헌론이 제기됐지만, 번번이 무산시켰던 요인 '정치일정과 현안'이 바로 그것이다. 개헌론의 경우 필요성과 중요성은 다른 어떤 정치일정보다 큰 의미를 가질 수 있지만, 당장의 선거가 중요한 정치인들로서는 개헌논의는 후순위로 밀리기 때문이다.
일단 이 문제에 있어서는 현재는 19대 국회가 아직 전반기를 넘기지 않았다는 점에서 여유가 있다. 또한 대선 일정 또한 시간이 남아 있고, 뚜렷한 차기 대선 후보주자도 없는 상황도 개헌론에는 우호적이다. 다만 문제는 개헌논의를 추진할 수 있는 주도 세력이 없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보다 중요한 점은 개헌론의 주도 세력이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로서는 한참 국정을 운영해야 할 때 정치의 중심이 개헌론으로 옮겨가는 것에 대해서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여야의 경우에도 사사건건 부딪치고 있는 상황에서 개헌논의를 본격적으로 꺼내들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무엇보다도 새누리당 황 대표의 경우 내년 5월로 당대표 임기가 끝나며, 민주당 김한길 대표는 복잡한 당내 역학관계로 주도권을 행사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또 다른 사항은 개헌논의 시기 문제다. 강 의장은 내년 초 개헌논의를 시작하자고 제안했지만, 내년 초면 이미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이라서 개헌논의가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 때문에 개헌논의가 시작되려면 이번 정기국회에서부터는 시작되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내년초까지 개헌논의가 본격화되지 않을 경우에는 지방선거 이후 시점에나 개헌논의가 다시금 나올 수 있을 전망이다. 하지만 이즈음이 되면 국회의원들의 임기는 후반기로 접어들게 되면서 개헌론의 탄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분석도 가능한 상황이다.
개헌론이 본격 추진되기 위해선 고차방정식의 문제 해법이 필요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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