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판에 비가/비문을 읽는다//읽는 일은/지우는 일
속으로 삼키고 삼켜서/모래알로 출가시키는 일//탁본을 떠도 뜻을 알 수 없는,/한 이백 년쯤 묵은 글자가/달싹거린다
흙먼지를 품은 글자 속에서/돋아난 싹//지워지고 지워져서 푸른/삐침//획 끝에/꽃이 벙근다
손택수의 '일획'
■ 추사 김정희가 남긴 서예 작품 중에 '잔서완석루(殘書頑石樓)'라는 것이 있다. 비문(碑文)이 새겨진 깨진 돌덩이 하나를 서재에 갖다 놓고, 그 방의 이름을 저렇게 붙인 것이다. 잔서는 남아 있는 글씨이고, 완석은 그 글씨를 아직까지 붙들고 있는 고집스러운 돌이라는 뜻이다. 옛사람의 글씨를 찾아 헤맸던 금석학(金石學)의 전성기에, 추사는 저 돌의 고집이 고마워 공부방에 모셔 놓았다. 손택수는 오히려 그 글씨를 지우고 있는, 자연이라는 예술가에 대해 읊고 있다. 비가 비석의 글자를 훑어 내리는 것을 '읽는다'고 표현했다. 읽으면서 그만큼 지운다. 비는 그 비석 알갱이를 삼켜서 모래알로 만들어 버린다. 글자는 사라지고 마침내 비석은 원래의 그냥 돌로 돌아가 자유를 얻는다. 하나의 인위(人爲)에 갇혀 있을 때, 사람들은 그것에 그토록 열광했었지만, 마지막 자취마저 내던지고 나니, 마침내 자연이 새로운 예술을 품어 돋운다. 풀싹 하나 푸른 삐침으로 밀어 올리더니 획 끝에 꽃을 매단다. 어느 묵란도가 이토록 정교하고 생생하랴. 예술은 다 버리고 난 다음에 얻는 자유의 일획이 아니던가.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