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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개비 목베개'로 한국 규방문화 알린 강금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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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인명품4. 전통침구 장인 강금성 작가

"바람개비·잣 문양, 색동 그리고 우리 천연소재 천 현대화시키고파"
'바람개비 목베개'로 한국 규방문화 알린 강금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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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옛 여인들이 시집갈 때 가져간 이불에는 "우리 딸 흠을 덮어주세요"라는 친정엄마의 배려가 담겨 있다. 고운 오방색 명주조각으로 장식한 '바람개비' 침구 문양은 좋지 않은 기운을 물리치고 복을 기원한다는 의미다. 한옥 온돌방에 깔린 요와 이불은 우리의 옛 규방문화를 상징한다. 요와 이불, 베개를 꾸미는 전통 침구공예는 이렇듯 옛날 어머니들의 한땀한땀 정성어린 바느질 솜씨와 함께 복을 비는 마음이 오롯이 담겨있다.

11일 전통침구공예를 현대화해 국내외에서 선풍을 일으킨 작가 강금성(사진·54·여)씨를 만났다. 서울 정동에 위치한 '빈 컬렉션'은 그의 작업실이자 회사명이다. 왕세자의 부인을 뜻하는 '세자빈'에서 따온 이름이다. 40평 남짓 되는 공간에서 강씨와 여직원들이 바느질과 재봉질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작업실은 명주, 모시, 인견, 울, 캐시미어 등 온갖 소재의 천들과 색색의 실로 가득 차 있다. 모란, 바람개비, 아(亞)자, 색동 등 여러 문양으로 형형색색 꾸며진 작품들은 어떤 현대의 디자인과 비교해도 손색없을 만큼 세련됐다. 특히 양 옆으로 바람개비 문양으로 장식된 목베개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목베개는 강씨가 서울 인사동에서 가게를 차려놓고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부터 관광객들에게 가장 주목을 받았던 물건이다. 베냇저고리와 아기버선엔 귀신이나 액운을 찔러 물리친다는 '작은 삼각꼴 모양'이 달려있다. 잣무늬 방석도 있는데, 색종이처럼 천을 일일이 접어 다림질하며 중앙에서부터 바깥까지 바느질을 해 돌리는 까다로운 공정을 거친다. 이불은 각종 천 소재들을 적절히 결합한, 모던하고 실용적인 모습이다.
강금성 작가의 무릎담요 바람개비·색동 시리즈

강금성 작가의 무릎담요 바람개비·색동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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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강씨는 서양의 퀼트를 먼저 접했다. 30대 초반에 시작해 10년 정도 퀼트 작업을 하고 전시회도 수차례 가졌다. 천을 조각조각 잇고, 누비는 퀼트는 우리 전통 조각보와 비슷한 형태다. 한데 그 시절 늘 떠오르는 게 있었는데, 바로 어린 시절 외할머니가 운영한 한복집에서 봤던 것들이었다. 꽃무늬나 땡땡이 무늬보단 우리 한복에 나타난 색동이나 고풍스런 문양들에 자꾸 마음이 더 끌렸다. 외할머니가 뽕나무를 키우고 누에고치로 명주를 뽑아냈던 기억도 또렷했다. 강씨는 매일같이 동대문 한복집 구경을 취미삼아 다니게 됐고, 명주와 모시 등 우리 천을 가지고 옷도 만들게 됐다. 주변에서는 아예 가게를 내라고 아우성이었고, 그래서 종로구 삼청동에 작은 작업실을 열었다. 이때 그가 지은 옷들은 우리 천연섬유를 결합하고 한복 디자인을 차용한 생활복들이다. '설악산 풍경'으로 유명한 김종학 화백도 강씨에게 옷을 주문해 입었는데, 유명인사들이 그의 가게를 종종 찾았다.
한창 작업에 몰두하던 때 갑자기 목에 무리가 왔다. 병원에서는 잠을 잘 때 수건을 돌돌 말아 항상 목에 대라고 했다. 번뜩 누에고치를 베개 안에 넣었던 외할머니의 모습이 생각났다. 그 기억을 계기로 천연 명주천을 두르고 그 안에 하얀 누에고치들이 가득 담겨 있는 목베개가 탄생하게 된다. 2002년 12월 삼청동에서 인사동 쌈지길로 가게를 옮긴 후 본격적으로 누에고치 목베개를 선보이게 되는데,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작고 세련된 디자인에 잠잘 때의 지압효과, 또 천연 재료라는 점이 알려지면서 인기가 대단했다. 특별한 광고도 없이 입소문으로 알려진 그의 목베개와 옷, 이불은 일본에도 알려졌다. 도쿄 미드타운에 매장을 운영하고 있던 한 인테리어회사에서 강씨와 계약을 해 그의 작품들을 가져가 팔기도 했다. 일명 '주름옷'으로 유명한 일본의 '이세이미야키' 패션디자이너팀도 강씨의 작품을 보러왔고, 국내 디자이너들도 그의 목베개와 이불들을 살펴봤다. 현재 그의 작품이 들어가는 매장은 인사동에서 옮겨져 서울역과 관훈동 인근에 두 곳에 자리해 있다.

강씨의 침구들이 알려지면서 해외로도 전시가 이어졌다. 강씨는 오는 9월엔 프랑스 정부에서 진행하는 '메종앤오브제' 공예전시에 두번째로 참가할 계획이다. 지난 4월 이탈리아 밀라노의 '한국공예전'에서도 그의 작품이 전시됐다. 강씨는 "전통 침구의 바람개비나 잣 문양, 원색의 색동, 은은하고 빛을 띠는 단아한 색상은 아시아권에서도 흔치 않은 우리만의 디자인을 이루고 있다"고 자부한다. 더욱이 이런 디자인들을 현대적으로 잘 풀어내는 게 가장 큰 숙제다. 그래서 그의 실험은 끝이 없다. 그는 "상주명주, 한삼모시, 풍기인견 등 우리 소재를 더욱 알리면서도 여기에 실용성을 가미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직원 2명으로 시작한 그의 사업은 점점 규모가 커져 현재 8명의 직원을 두고 있다. 의상학과 출신 졸업생이나 재학생, 주부들로 구성돼 있다. 강씨에겐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자 후배들이기도 하다. 그는 "침구 작업은 아이를 키우는 것과 같다. 삼칠일, 백일, 돌, 그리고 학교 갈 때 아이의 성장이 다르다는 걸 느낄 수 있듯 인내와 정성이 필요하다"며 "나 스스로도 갖고 싶고 평생 쓸 수 있을 만한 작품을 후회 없이 만들도록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오진희 기자 val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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