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디니의 손목에 수갑이 채워졌다. 그는 천천히 검은 상자 속으로 들어갔다. 여기저기서 실패한 것 아니냐는 수군거림이 들려오기 시작했을 때, 드디어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한 손에는 자물쇠를 풀어 버린 수갑을 치켜들고서. 감탄과 함성이 쏟아졌다. 후디니는 그 튼튼한 수갑을 어떻게 풀었을까. 오늘까지도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이대우가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할 즈음 또 다른 기막힌 마술이 등장했다. 패거리를 이룬 마술사들이 가짜ㆍ짝퉁ㆍ중고부품을 거대한 원자력 발전소에 끼워 넣었다. 부품 시험성적표는 순식간에 불합격에서 합격으로 둔갑시켰다. 신기하게도 원전은 돌았다. 5000만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한 대담한 마술 쇼였다.
탈주범의 활보와 원전 비리에 모두들 놀랐지만 반응은 달랐다. 전과 12범 이대우는 무섭다. 그의 출몰은 불안하다. 하지만 그를 향해 '왜 그랬느냐'고 따지지는 않는다. 비난은 그에게 도망갈 기회를 준 수사 당국에 쏠린다. 원전 비리로 가면 불안을 넘어 분노가 끓는다. 책임이 없지 않은 정부 인사까지 최상급 분노를 쏟아 낸다. 대통령은 "용서받지 못할 일"이라 했고 국무총리는 "천인공노할 범죄"라 말했다.
그들은 왜 쉽게, 반복적으로 국민을 배반했을까. 도덕성을 허문 단초는 한통속으로 엮여 죄의식까지도 나눠 갖게 된 패밀리 문화다. 특정 학맥을 끈으로 원청과 하청, 부품과 검증기관의 요직에 포진해 끈끈한 유착 관계를 맺어 왔다. 그들은 선수이자 심판이었다.
끼리끼리 뭉치는 그들만의 패밀리 문화는 한국적 권력이 된 지 오래다. 사회를 흔들고 독점과 차별, 부패와 부정의 온상이 되었다. 어디 원전뿐인가. 정치권, 행정부에서 산업, 교육, 문화, 체육계에 이르기까지 곳곳에 끼리끼리와 패밀리가 똬리를 틀고 있다. 모피아, 금피아, 친노ㆍ이ㆍ박, 고소영, 성시경, 인수위 동지로 또는 학연, 지연, 혈연을 엮어서… 속속 금융 수장을 꿰차고 있는 모피아의 요즘 활약상을 보라. 지금 이 순간에도 보통 사람들이 깜짝 놀랄 마술 같은 패밀리 이벤트, 또는 천인공노할 음모가 어디선가 은밀하게 만들어지고 있는지 모른다.
박명훈 주필 pmh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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