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평극장' 배우 심철종 "연극계 '장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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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극장 1人 배우, 거실객석 1人 관객


[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광화문의 한 오피스텔 401호. 이곳 한 평 남짓 되는 부엌에서 모노드라마가 펼쳐진다. 객석은 부엌을 바라보고 있는 거실이다. 지난달 29일 저녁 8시 펼쳐진 연극의 관객은 기자 혼자다. 연극인 심철종(53)씨는 이 한 명의 관객을 위해 혼신의 연기를 펼친다. 빡빡머리에 진한 쌍커플로 강한 인상을 풍기는 그는 연출가 겸 배우이자 극작가다. 이 연극의 구성은 70%가 심 씨의 인생 이야기로, 나머지 30%는 픽션으로 이뤄져 있다. 40여분 진행된 1인극은 '기억'과 '사랑'과 '인생'이라는 세 가지 화두를 던졌다. 그는 연기를 통해 치매 걸린 어머니에게 기억을 상기시키는 내용, 사랑하던 여인들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죽음과 대비된 삶 자체의 소중함을 보여줬다.

그는 왜 자신이 생활하는 공간에서 관객도 별로 오지 않는 이 연극을 1년 반 동안 이어오고 있는 것일까?


"예술에 대한 진정성을 보여주고 싶었다. 한때 잘나간 적도 있었지만, 모든 걸 다 버리고 미니멀하게 살면서 인간의 본성과 삶, 죽음에 대해 말을 거는 그런 '작지만 혁명 같은' 연극을 하기 위해서"라고 심 씨는 이야기한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가 있었다. 그는 "연극인 중에는 독거노인이 많은데 연극 인생의 결말이 그렇게 끝나는 게 안타까웠다"며 "극장 겸 생활공간으로 자신이 살아가는 곳에 관객을 초대한다면, 연기로 먹고 살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부터 이것을 꼭 성공시키고 싶다. 아직 관객은 많지 않지만 마니아층이 조금씩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심씨는 32년째 연극을 하고 있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 그는 정신이 이상하다는 소리를 주변에서 들을 정도로 말수가 극히 적고 친구도 잘 사귀지 않았다. 대신 그리기 실력이 출중해 그림으로 자신의 감성을 표출할 뿐이었다. 하지만 대학을 중도에 그만두고 연극의 길로 나서면서 그의 인생은 180도 바뀌었다. '크레이지 심'으로 통했던 심씨는 현대극단, 국립극장을 거쳤고, 1989년부터 '개'라는 모노드라마로 일본 초청 공연을 펼칠 정도로 당시 주목을 꽤 받았던 배우였다. 이후 1993년부터는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각색한 하이네 뮐러의 실험극 '햄릿머신'이라는 연극으로 전국 각지에서뿐 아니라 유럽에까지 출장공연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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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단지 배우만이 아닌 연극인 후배들을 길러낸 연극계 대선배이기도 하다. 지난 1998년 홍대 인근에 '씨어터 제로'라는 극장을 세워 운영하면서, 젊은 연극인들을 발굴하고 양성해 나갔다. 하지만 재정적으로 어려워지면서 극장운영은 녹록치 않게 됐다. 더욱이 간경화로 건강이 악화되면서 운영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경영에 너무 매진하고 있는 자신에 대한 회의가 밀려오기도 했다. 심씨는 "병원으로부터 살 수 있는 날이 6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는 선고까지 받은 상황이었다"며 "그 이야기를 듣고 홀로 여행을 다니며 예술의 본질을 담은 연극을 다시 시작하자고 다짐했고 술, 소금을 끊고 자가치료를 시작했다"고 회고했다. 이후 그는 화려한 배우, 기업과 정부기관에 스폰을 얻으러 다니며 분주했던 극장장의 삶을 모두 내려놓았다. 그래서 찾은 곳이 바로 이곳 광화문 '세상에서 제일 작은 한평극장'이다.


심 씨는 "나는 연극계 '장인'이 되고 싶다"며 "인간의 감성을 움직이는 다양한 연극이 가능하다는 것을 정직하게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서 '한평 극장'은 그에게 큰 도전이자 그를 다시 살아가게 해준 동력이다. 심씨는 최근 후배, 동료들과 다시 한번 또 다른 도전을 하고 있다. 그는 다음달 개최되는 '거창국제연극제'의 개막작인 '100인의 햄릿'의 연출을 맡아 한창 준비 중이다. "'기름기' 빼고, 예술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 감성을 울리는 연극"을 외치는 심씨가 만들고 있는 공연이 어떨지 새삼 기대를 모으고 있다. 그는 햄릿 역을 맡는 100명 중 30명의 배우들이 오는 20일 광화문에서 삭발 퍼포먼스를 진행한다고 살짝 귀띔했다.


오진희 기자 val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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