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글라데시 참사를 계기로 살펴 본 세계의 공장잔혹사
[아시아경제 나주석 기자]공장이 인류사에 등장한 이후 수많은 노동자들이 공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산업혁명이 시작됐던 18세기 영국에서는 화재 등으로 수많은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고, 상해를 입었다. 산업혁명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공장은 세계 곳곳에 세워졌고 열악한 노동환경 역시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산업혁명이 시작된 지 200여년이 훌쩍 흐른 시점에서 세계는 얼마나 과거보다 나아졌을까? 200여년의 시간 속에서 인류는 공장 시설들이 개선하고, 산업현장에 새로운 안전 규정을 도입하는 등 꾸준히 공장시설을 개선해왔다. 이러한 변화를 가져온 것은 기술의 진보와 기업인들의 혁신 노력도 일부 기여를 했지만 그보다는 노조와 열악한 공장 환경에 분노한 대중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계의 모든 공장이 나아진 것은 아니다. 더럽고 위험하고 힘들어해서 다들 꺼려하는 공장은 세계 경제 체제의 위계질서를 따라 선진국에서 후진국으로 옮겨졌다. 신흥국 또는 개발도상국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나라에서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노동자들의 숱한 희생이 발생했지만 세상에 주목을 받지 못했다.
감춰진 진실은 24일(현지시간) 방글라데시에서 세상 속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방글라데시의 수도 다카 외곽 사바르 구역에서 8층짜리 건물 붕괴현장이 바로 그곳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사망자는 330여명을 넘어섰으며, 방글라데시 정부는 아직도 수십여명의 노동자가 잔해속에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한 2350여명의 노동자가 구조됐는데 이 가운데 절반 가량은 경중의 차이가 있을 뿐 사고로 인해 부상을 입었다. 대다수의 부상자는 의류 공장에서 일했던 여성들이다. 아직도 매몰 현장에서는 구조를 애타게 기다리는 노동자와 이미 목숨을 잃은 노동자, 그리고 이들을 애타게 찾는 가족들이 남아 있다.
노동자들은 공장주들에게 건물이 위험 징후를 보이고 있다고 말을 했지만, 이들의 호소는 외면 받았다. 위기 상황 속에서 노동자들은 '상황이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최후의 순간까지 일을 하고 있었다. 탈출할 수 있었던 문은 사실상 닫혀 있었던 것이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공장소유자 및 관계자, 건물 관계자 등 8명을 체포했다고 현지 언론들이 보도했다.
이번 사고와 관련해 영국의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악의 공장 사고 다섯 건을 소개했다. FT는 이보다 훨씬 많고 더욱 참혹한 참사들이 있지만, 이번에 소개하는 내용들은 가장 기록이 소상히 남아 있고, 사람들의 기억속에 크게 자리잡고 있는 사건들을 기준으로 정리했다고 밝혔다.
1) 미국 뉴욕, 트라이앵글 셔츠웨이스트 공장 화재
1911년 5월 25일 뉴욕에서 발생한 트라이앵글 공장 화재로 인한 사망자는 146명, 주로 유대인과 이탈리아 이민 여성들이 사망했다. 단순 화재 사고가 됐을 수 있었던 사고가 대형 참사가 된 것은 공장 문이 잠겨져 있어노동자들이 화마를 피하지 못해서였다. 당시 공장주였던 아이작 해리스와 막스 블랑크는 살인 혐의로 기소됐다. 미국에서 이 사건은 큰 반향을 가져왔다. 이후 이 사건은 미국 노동자의 권리 문제에 있어 일대 전환을 가져온 전기로 손꼽히고 있다.
2) 태국 방콕 근교, 카이더 장난감 공장 화재
어린 아이들이 좋아하는 토끼, 코끼리 돼지 등의 장남감을 만드는 카이더 장난감 공장에서 1993년 5월 10일 화재가 발생했을 당시, 이 공장에서는 대피시설이나 화재 경보 시설 등은 없었다. 사고 뒤 경찰 조사에 따르면 이 공장에서도 탈출구중 일부가 문이 잠겨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카이더 장난감 공장에서 생산되는 장난감 공장들은 미국 유수의 장난감 회사들에 납품됐다. 이 사고로 188명이 사망했다. 이 가운데 10대 소녀를 비롯한 여성은 174명이었다. 사고 발생 뒤 제품을 납품받았던 미국 기업들인 화재 사고와 관련해 자신들이 책임이 없다고 말했다.
3) 중국 선전 근교, 지리 인형 공장 화재
1993년 11월 20일, 지리 인형 공장에서 지하 기계실에서 발생한 화재가 자재 창고에 불이 옮겨 붙으면서 커졌던 화재로 87명이 사망했다. 대다수의 사망자의 사인은 질식이었다. 시 관계자가 서방 언론에 확인해준 바에 따르면 이 공장은 작업시간 중에 근로자들이 밖에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창문과 공장의 문을 모두 잠가 뒀다고 한다.
4) 파키스탄 카라치, 알리 엔터프라이즈 공장 화재
지난해 11월 11일 알리 엔터프라이즈 공장에서 화재가 나기 전까지는 이 공장은 안전에 문제가 없는 공장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이날 발생한 사고로 262명이 목숨을 잃었다. 대부분의 사망자는 외부에서 잠긴 문을 열지 못해 건물 안에 갇힌 채 죽었다.
5) 방글라데시 다카, 타즈린 공장 화재
지난해 12월 9층 규모의 타즈린 패션 공장 지하에서 불이나자 삽시간에 불이 번져 상당수 근로자가 건물에 고립됐다. 이 공장에서는 월마트 등에 납품하는 의류를 생산하는 공장이었다. 사고로 112명이 사망했다
사고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이후 방글라데시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여성 운동가로 활약하고 있는 수미 아베딘은 "살기 위해서 건물을 뛰어내린 게 아니라, 가족들이 내 시신이라고 확인할 수 있도록 건물 밖으로 몸을 던졌어요"라고 말했다.
한편, 미국 노동자권익단체인 노동자권리컨소시엄(WRC)의 조사에 따르면 방글라데시 4500여개의 의류 공장의 작업 환경을 서구 기준으로 끌어올리는데 드는 비용은 5년간 30억달러를 투입하면 되는 것으로 추산됐다. 이는 소비자들의 부담하는 옷값의 10센트(100원) 정도만 더 지불하면 되는 금액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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