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보험약관 보험금 지급 분쟁 '불씨'
소비자가 甲으로...금융패러다임 大전환⑦
[아시아경제 최일권 기자] #50대 김모씨는 몇 년 전 암진단을 선고받고 서울에 있는 대형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다행히 보험사를 통해 암보험에 가입한 상황이어서 치료비 부담은 덜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병원에 사정이 생기면서 김씨는 한동안 동네에 있는 개인병원에서 암치료를 받아왔다. 입원비는 500만원을 훌쩍 넘었다. 이번에도 김씨는 입원급여를 신청했지만 보험사는 해당병원에서 암치료를 하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입원비를 지급하지 않았다. 김씨는 금융감독원에 민원을 제기했다.
금융민원 가운데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게 보험 관련 민원이다. 그 중에서도 보험금 지급을 둘러싼 보험사와 소비자간 갈등은 최근 들어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접수된 민원 가운데 '보험금 산정 및 지급' 건은 전년대비 44.8% 증가한 1만3000건을 기록했다. 특히 대형 손해보험사의 관련 민원은 전년 보다 두배 이상 늘었다.
보험금 지급 민원을 야기하는 결정적인 요소는 복잡한 약관이다. 깨알같은 글씨가 적힌 책 한권 분량의 약관을 가입자가 전부 파악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막상 사고를 당하면 복잡한 약관은 보험사들이 보험금 지급을 하지 않아도 되는 핑계거리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실손보험은 민원 발생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실제 발생한 손해액 만큼 보험사에서 보상하다보니 지급 여부 뿐 아니라 지급 범위를 놓고 이견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특히 보험사들이 외부 손해사정인을 고용해 실손보험금 지급액을 산정하면서 민원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기욱 금융소비자연맹 보험국장은 "손해사정인이 보험사를 대신해 활동하면 아무래도 고객 보다는 보험사 입장에서 업무를 처리하게 된다"면서 "지급액에 대한 불만이 커질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말했다.
지급 관련 민원이 늘어나자 금융당국과 보험업계는 다양한 대책을 내놓고 있다.
보험사가 사기 여부를 조사하기 위해 보험금 지급을 미루려면 '경찰에 조사를 의뢰했다'는 내용의 증빙서류를 금융당국에 제출하거나 보험금 지급건이 발생하면 피보험자가 가입한 모든 보험상품을 찾아 추가 지급하는 식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소비자 보호가 궁극적으로 회사 경영에 도움이 된다는 인식이다. 보험금 지급이 회사 입장에서는 단기적으로 손해일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이미지가 개선돼 불완전판매가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보험사가 소비자보호에 나서는 근본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보험사 뿐 아니라 소비자들의 인식 변화도 요구된다. 정당한 소비자 보호 권리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의무 역시 필요하다는 얘기다. 한 손보사 관계자는 "보험은 기회비용을 지불하는 상품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강호 보험연구원장은 "보험 가입자들의 보험에 대한 이해도가 높지 않다"고 지적했다.
소위 블랙컨슈머를 막는 것도 과제다. 김용우 금감원 소비자보호총괄국장은 "사기 여부를 따지는 게 결과적으로 보험사들의 보험금 지급 지연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금감원의 인위적인 민원감축이 오히려 블랙컨슈머를 양산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보험사 민원 담당 부장은 "당국의 민원감축 의지는 좋지만 이를 보험사 압박용으로 활용하는 사례가 있다"며 "블랙컨슈머를 제어할 수 있는 장치가 시급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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