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조선산업 거제·통영을 가다
배만으론 배 곯을 판…'해양설비' 눈 돌렸다
고부가사업으로 중국과 경쟁
중소형업체는 기술력이 관건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건조중인 부유식 원유 생산저장하역설비(FPSO). 프랑스 토탈사가 2010년 8월 발주한 이 설비는 현재 건조공정의 90% 이상을 진행, 올 중순께 인도될 예정이다.
[아시아경제 최대열 기자]"한국의 조선산업은 현재 뾰족한 탑 위에 있는 형국이다."
지난 15일 만난 이정호 대우조선해양 경영전략팀 이사는 수년째 침체가 이어지고 있는 글로벌 조선업에서 한국의 위상을 이같이 요약했다. 중국과 앞서거니 뒤서거니하고 있지만 축적된 기술력이나 경험 측면에서 한국이 여전히 정점에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는 곧 언제든 균형을 잃고 고꾸라질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국이 90년대 일본을 제치고 조선업 1위 국가로 올라섰듯, 여차하면 중국이 한국을 추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선박 수주량이나 수출액에선 이미 중국이 앞섰다는 분석도 나온다.
현대중공업을 비롯해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이른바 국내 빅3 조선업체는 이미 십수년 전부터 이에 대비, '선박 이외의 것'에 눈을 돌려 시장에서 자리를 잡고 있다.
이날 방문한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선 몇년 째 이어지고 있는 조선업 불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직원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부유식 원유생산저장하역설비(FPSO)나 파이프설치선과 같은 고가의 해양설비 부문에서 일감을 두둑이 확보한 덕분이다. 현장을 소개하던 이용주 차장은 "같은 규모라면 해양설비는 상선에 비해 부가가치가 10배 가량 높고 인력도 그만큼 더 투입된다"고 설명했다.
인근에 있는 삼성중공업 역시 비슷한 상황이다. 이 회사 역시 벌크선이나 컨테이너선과 같이 통상적으로 일컫는 배보다는 드릴십이나 LNG FPSO와 같이 해양설비에 집중하고 있다.
이동훈 총무팀 홍보파트장은 "90년대 조선업체 가운데 처음으로 드릴십 수주를 따낸 후 전 세계 발주량의 40% 이상을 선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지난해 해양설비 분야 매출이 처음으로 절반을 넘어섰다. 대우조선해양 역시 조선업체 최초로 해양부문 수주액이 100억달러를 돌파했다.
유조선이나 벌크선과 같은 일반상선은 전 세계 해운업황에 따라 시장이 널뛰기를 한다. 반면 드릴십이나 FPSO와 같은 해양설비는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 특히 고유가 현상이 이어지고 가스소비량이 늘어나면서 글로벌 자원업체들의 해양설비 발주량은 꾸준히 늘고 있다.
성우제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학과장은 "해양플랜트와 같이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한 설비에 대해 경험을 일찍부터 쌓아왔기에 그만큼 한국업체들이 특화된 경쟁력이 생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소 규모 선박을 만드는 조선업체의 사정은 조금 다르다. 성동조선해양 등 특화된 건조기술로 일감을 꾸준히 확보하고 있는 곳을 제외하면 동남권 조선업벨트에 있는 다수 중소업체가 이미 문을 닫았거나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다. 성 교수는 "일정한 시류를 타는 조선업 특성상 머지않아 일부 중대형 조선업체를 제외하곤 구조조정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날 찾은 성동조선해양의 야드에서 건조과정을 마치고 인도 직전에 있는 선박은 냉동설비가 탑재된 컨테이너선이나 대형 셔틀탱커와 같이 '틈새시장'을 노린 배들이었다. 일반적인 상선으로는 중국 업체와 경쟁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과거 조선업 호황시절에 연구개발에 소홀했던 업체들은 현재 거의 남아있지 않다"며 "확실한 기술우위가 아니면 살아남기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른바 '부익부 빈익빈'인 한국의 조선산업에 대해 업계나 전문가들은 우려 섞인 전망을 내놓는다. 이정호 이사는 "조선산업을 넓게 본다면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한 부분이 있는 한편 각종 선박 기자재 등 크기나 기술력을 가리지 않고 기본으로 받쳐줘야하는 부분이 있다"며 "중소형 조선업체를 겨냥한 차별화된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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