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후보자 따를 인재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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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양낙규 기자]북한이 군사적 위협의 강도를 높였다. 핵실험에 대한 유엔의 대북제재 움직임과 한미 간 합동군사 훈련에 반발해 정전협정을 백지화하고 판문점 대표부 활동도 전면 중지하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박근혜 정부의 진용이 갖춰지지 않은 가운데 안보위기까지 겹쳐 국민들은 더 불안하다. 이럴때 국민들은 국가를 지켜줄 수 있는 지도자를 원한다. 또 이 지도자에게는 뒷받침해주는 인재들이 필요하다.

이점을 알고 인재를 적재적소에 잘 배치하기로 유명한 명장이 있었다. 이순신 장군이다. 임진왜란 최고의 선봉장이자 돌격장 정운, 임진왜란 첫 해전부터 최후의 현장 노량해전의 숨은 공신 송희립, 거북선 건조의 핵심 책임자였던 나대용 등이 대표적 인사다. 비록 이순신의 그늘에 가려 역사와 평가의 빛을 받지 못했던 이들이지만 이순신 장군을 만든 핵심참모였다.


이순신 장군보다 2살이 많고 무과급제도 선배였던 녹도만호(鹿島萬戶) 정운(鄭運)은 이순신이 임진왜란 첫 출전을 할 수 있도록 가장 강력하게 요청했다. 이순신이 해전에 나갔을 때 정운은 후부장이었다. 즉 함대의 맨 뒤에 배치되어 있었다. 그런데 다른 전투선이 감히 적을 공격하지 못하자 후부장이었던 정운이 군사들을 독력해 선봉으로 나서는 용맹함을 보였다. 결국 이순신장군의 해전 첫승을 만들어준 핵심참모였던 셈이다.

해전에서 활약한 거북선을 만든 것은 나대용이다. 고향 나주에서 전선을 연구하던 나대용은 이순신장군을 찾아가 일본군의 주전술인 등선육박전술에 효율적이라고 강조한다. 이순신 장군은 군관이었던 나대용을 배를 만드는 책임자로 임명하고 전권을 위임했다. 필요한 인물을 적재적소에 배치한 이순신의 리더십이 발휘된 것이다. 나대용 역시 자신을 알아주고 신뢰하는 이순신을 만나 거북선이라는 당시 세계 최고의 전투선을 만들 수 있었다.


이런 적재적소에 배치된 명장들은 위기가 올 때마다 지휘관을 믿고 충심을 다했다. 이때문에 이순신장군은 전승행진을 걸을 수 있었다. 이순신장군은 이런 인재채용 방식은 임진왜란 7년을 일기로 남긴 '난중일기'에 그대로 남겼다.


최근 인사청문회로 논란이 되고 있는 김병관 국방부장관 후보자도 인재채용 방식을 책에 담았다. 2008년에 번역한 '무엇이 현대전을 움직이는가(How to make war)'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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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후보자는 이 책을 통해 "어떤 방대한 조직에서 소란을 일으키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서 무능력자도 잔존하게 된다"며 "전쟁이 시작되면 이 부적합한 지휘관들을 얼마나 빨리 대체할 수 있는냐가 전쟁에서 궁극적인 성공의 요인"이라고 명시했다.


이순신 장군과 똑같이 적절한 인사채용을 강조했다. 하지만 채용된 인사가 지휘자에게 충심을 다할지 여부는 서로 다른 것 같다. 벌써부터 군내부에서는 "지금까지 불거진 의혹이 사실이 아니더라도 군에 입은 상처가 너무 커 장관이 되더라도 영(令)이 바로설지 걱정"이라고 토로한다. 이런 걱정은 군 내부뿐 아니라 군 밖에서도 나온다는 것을 김 후보자는 알았으면 한다.


양낙규 기자 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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