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배원, '복지 메신저'로 뛴다
시대변화 속 최일선 복지요원으로 활약하는 집배원들
구석구석까지 미치는 손길…복지전달체계 대안으로 부상
[아시아경제 나석윤 기자] 우편물을 가득 싣고 달리는 빨간색 오토바이, 푸근한 인상에 선한 미소와 함께 새로운 소식이 가가호호 배달된다. 클릭 한번, 아니 실시간으로 소식을 주고받는 세상이 됐지만 여전히 집배원들의 가방은 전해야 할 소식들로 가득하다.
올해로 24년 째 집배원 일을 하고 있는 박경원(45ㆍ서울중앙우체국) 씨는 오전 7시에 출근 이후 우편물 분류를 마치자마자 오토바이를 몰고 나선다.
그의 관할지역은 중구 회현동 1가를 포함한 충무로 일대. 이곳을 돌며 하루 배달하는 우편물만 등기 300여통을 포함해 2200~2500통에 이른다. 배달현장에 머무르는 오전 9시부터 오후 4~5시까지 쉴 틈 없이 지역을 훑으며 우편물을 전한다.
그러나 그의 일은 이 같은 우편물 배달이 전부가 아니다. 주민들의 거주지와 생활환경 전반을 살피는 것이 또 다른 몫이다. 화재나 가스누출 점검서부터 심지어 현관문과 창문 문단속 여부까지 세심히 살핀다. 회현동의 경우 주택이 밀집해 있어 작은 부주의가 자칫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형편이다.
그는 "현장에서 주민들을 만나는 것과 함께 이들의 주변을 살피는 일도 우리에게 주어진 또 다른 책무"라며 "집배원들이 지역을 살피는 중 며칠 씩 방치된 시신을 발견해 신고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지역과 동네 구석구석을 누비는 집배원들의 세심함이 복지전달체계의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복지수요가 나날이 늘고 복잡해지면서 전달체계의 효율화와 내실화가 과제로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복지현장의 최일선까지 손길이 닿는 집배원들이 '복지전달자'로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지역 내 소외된 주민들과 꾸준히 만나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이 집배원의 강점이다. 이는 복지 전달 및 공급체계에서 공공부문이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새롭게 주목받는 부분이다.
김용하 순천향대 금융보험학과 교수(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는 "우리나라 복지서비스의 가장 큰 문제는 공급의 80% 이상을 민간이 담당하고 있다는 것인데 공공차원에서 일선 현장 곳곳을 책임질 서비스 모델이 마련돼야 한다"면서 "집배원과 같은 공공영역 내 인적 인프라를 잘 활용하면 가장 아래부분에서 요구하는 복지 서비스이 내용을 쉽게 파악할 수 있고, 이를 중심으로 수요자(소비자) 중심의 복지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집배원들의 이 같은 가능성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열악한 근무 여건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현재 전국의 집배원은 1만5000여명. 집배원들은 인력이 부족해 제대로 된 휴가도 없이 하루 12시간 이상 격무에 시달리고 있다. 예산상의 문제로 채용인원을 늘리지 못해 장시간 업무에 노출돼 있다는 점도 문제다.
우정사업본부에 올해 책정된 예산은 약 6조5000억원이다. 이중 우편분야에 투입되는 예산은 3조원 수준으로, 이 중 75% 정도가 인건비로 쓰이고 있지만 여전히 인력난이 겹쳐 비정규직을 채용하는 등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무엇보다 급여와 처우 등에서 정규직과 동등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2260여명(약 15%) 비정규직 집배원 문제 개선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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