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피플+]하대성·고명진 "호주전 뛰고 울산전 뛰면 안돼요?"

스크랩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쇄 RSS
[피플+]하대성·고명진 "호주전 뛰고 울산전 뛰면 안돼요?"
AD
원본보기 아이콘
[아시아경제 전성호 기자]때 아닌 논란의 발단은 지난 5일 발표된 호주전 대표팀 명단이었다. 하대성과 고명진(이상 FC서울)의 이름이 들어있었다. 문제는 14일 호주전 바로 다음날 FC서울과 울산 현대의 정규리그 경기가 있다는 점.

K리그 선두 서울은 2위 전북에 승점 5점 차로 쫓기는 입장이다. 울산전은 2년만의 정상 탈환에 중요한 고비다. 이런 가운데 핵심 미드필더 두 명이 빠지게 된 셈이었다. 곧바로 서울 쪽에서 넋두리가 나왔고, 이는 최강희 대표팀 감독의 '친정팀 편들기 논란'으로까지 번졌다. 오해는 당사자인 최강희 감독과 최용수 서울 감독이 직접 통화한 뒤에야 풀렸다.
일단락은 됐지만 후유증은 남았다. 가장 큰 피해자는 팀도, 감독도 아니었다. 선수 당사자였다. 기쁨과 영예를 느낄 틈 없이 난감한 상황에 빠졌다. 대표팀 소집을 향한 발걸음이 가벼울리 없게 됐다. 이들의 생각은 호기심을 자아냈다. 조심스럽게 던진 질문엔 찰나의 망설임도 없는 답변이 돌아왔다.

"호주전 끝나고 울산전 뛰면 되지 않나요?"

당연한듯한 대답이 주는 당황스러움은 잠시.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책임감 강한 주장과 열정이 넘치는 유망주의 태도는 서울이 현재 K리그 선두를 달리는 이유를 보여줬다. 나아가 왜 최강희 감독이 이들을 호주전 18인 명단에 써넣었는지도 짐작케했다.
둘은 그저 재능이 빚어낸 선수가 아니다. 인고의 시간을 거친 덕에 겉과 속이 모두 단단해졌다. 둘의 조합은 시너지다. 하대성의 플레이는 강인하고, 고명진의 그것은 부드럽다. 합쳐져 '1+1=2' 이상의 힘을 낸다. 데얀-몰리나 듀오 못잖은 서울의 핵심이다. 그들에겐 대표팀 논란 따위보다 더 들어볼만한 얘기가 풍성하다.

서로가 부러운 짝꿍

어느덧 서울에서 함께 뛴 지도 3년이 다 되어간다. 서로 첫인상 기억나나
하대성(이하 하): 확실히 기억나진 않지만 명진이의 첫 인상은 조금 여성적이었다. 얌전하고 과묵한 스타일이랄까. 크게 눈에 띄는 성격은 아니었다.

고명진(이하 고): 처음 대성이형이 왔을 때, 트레이드돼서 와서 그런지 좀 적응하기 어려워 하더라. 도와주고 싶은 마음은 있었는데 내가 또 나서는 성격은 아니라…. 처음엔 둘이 좀 어색했는데 지금은 정말 친하다.

처음 그라운드에서 발을 맞춰봤을 때 서로에게 어떤 느낌을 받았나
하: 명진이는 K리그 미드필더 중 몇 손가락에 꼽히는 선수다. K리그 모든 선수가 공감하는 얘기일 거다. 2010년 서울에 처음 왔을 때 명진이는 비주전팀에 있었는데도, 연습 경기를 하면 볼을 뺏을 수가 없었다. 정말 잘했다. 불행히도 당시 빙가다 감독님이 명진이에겐 기회를 잘 안 주셨다. 연습 내내 경기장을 휘젓고 다니는데도 말이다. 데얀, 아디도 의아해할 정도였다. 지난해부터 명진이랑 같이 주전으로 뛰었는데, 워낙 잘하는 선수라 오히려 내가 명진이에게 해를 안 끼치려고 노력한다. (웃음)

고: 대성이형은 대구나 전북 있을 때부터 워낙 잘 하지 않았나. 또 형이 2010년에 너무 잘했는데, 당시 전술상 나랑 포지션이 겹쳤다. 그것 때문에 다른 형들이 "'넌 대성이 때문에 뛸 자리가 없으니 보면서 잘 배우기나 해라"라고 농담처럼 얘기하기도 했다. 지금도 대성이형은 공 주면 알아서 한다. 난 맞춰주기만 하면 된다.

하: 이번 호주전 앞두고 함께 대표팀에 뽑혀서 기분이 좋다. 명진이랑 같이 서면 시너지가 있다. 뭔가 더 편하고 자신감이 생긴다. 스타일은 다르지만, 서로 잘 아는 만큼 즐겁게 축구할 수 있다. 서로 신뢰하는 사이다. 이젠 명진이와 따로 서게 되면 굉장히 어색할 것 같다.

형이자 선배로서 그동안 고명진이 가진 능력에 비해 주목받지 못해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겠다
하: 맞다. 특히 2010년은 정말 아깝다. 몸이 가장 좋았을 때였다. 그런데 빙가다 감독님은 고집이 좀 있으셨다. 한번 정한 틀을 잘 안 깨려고 하셔서, 주전 선수가 아무리 컨디션이 별로여도 믿고 뛰게 하는 편이셨다. 명진이가 본의 아니게 피해를 입은 셈이었다.

[피플+]하대성·고명진 "호주전 뛰고 울산전 뛰면 안돼요?" 원본보기 아이콘

고: 당시엔 많이 속상했었다. 난 잘할 수 있는데 왜 기회를 안 줄까 하며….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내 탓보다 남 탓부터 했다. 빙가다 감독님으로선 성적을 내야 했고, 만약 내가 정말 필요한 선수였다면 나를 투입했을 것 아니겠나. 나중엔 '내가 부족한 부분이 있어서 그렇구나'라고 스스로 깨달았다. 그때를 계기로 좀 더 성숙해질 수 있었다.

서울에선 데얀-몰리나 듀오가 가장 주목받는 존재지만, 사실 하대성-고명진의 중원이 갖는 힘도 대단하다. 원동력은 무엇일까
하: 신뢰가 가장 크다. 명진이는 발밑에만 공을 주면 절대 안 뺏긴다. 볼 컨트롤, 드리블, 패스 어느 하나 흠잡을 게 없다. 경험까지 쌓이면서 노련해지고 경기 운영능력도 좋아졌다.

고: 마찬가지다. 대성이형도 공만 주면 수비가 붙어도 알아서 해결한다. 또 내가 득점력이 좀 부족한 편인데, 형은 골대 부근에서 늘 침착하고 결정력이 좋아서 선수로서 좀 부럽다.


그런 가운데 이번 호주전 대표팀에 함께 선발돼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하: 그동안 명진이를 보면서 '대표팀에 가도 분명 경쟁력 있고 잘할 수 있을 텐데…'란 생각을 많이 했었다. 이번에 대표팀에 뽑혀 정말 기분이 좋다. 조금 시기가 애매하긴 하지만(웃음), 명진이에겐 좋은 기회다. 능력을 보여줄 거라 믿는다.

고: 솔직히 대표팀은 기대도 안 했다. 유럽파가 제외된다고 해도 쉽게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니까…. 언제 명단이 발표되는지도 몰랐었다. 당일 대성이형이 보내준 문자보고 뽑힌 걸 알았다.

만약 이번 호주전에서 한 자리를 놓고 경쟁하게 된다면 어떨 것 같나
하: 아니, 난 대표팀에서 같이 뛰고 싶다는 생각만 하고 있는데 왜 그런 말로 초를 치나. (웃음)

"쌍용과의 비교 때문에 힘들었지만…."

우문현답이다. 질문을 바꿔보자. 둘은 은근히 공통점이 많다. 특히 인고의 시간을 거쳤다는 점에서 더욱 그런데
고: 2003년에 중학교를 중퇴하고 입단했는데, 한동안 속한데 없이 왔다갔다했다. 유소년팀은 아니고, 그렇다고 2군도 1군도 아니었다. 1군 데뷔만 빨랐다. 그땐 나이가 너무 어려 뭐가 뭔지도 몰랐었다. 또 1년 후배인 (이)청용이와 (기)성용이가 워낙 대단한 선수가 돼버려서…. 기대만큼 질타도 많이 받았다. 지난해 동계 전지훈련이 전환점이었다. 막연하게 '잘해야지' 하는 게 아니라 독한 마음먹고 훈련에 임했었다. 비로소 진지하게 축구에 임할 수 있던 계기였다.
[피플+]하대성·고명진 "호주전 뛰고 울산전 뛰면 안돼요?" 원본보기 아이콘

하: 2004년 처음 대구에 입단해서 첫 해 1군 두 경기를 뛰었다. 2군 경기에도 따라다니고…. 그런 경험이 어린 나이에 신기하고 뿌듯하더라. 그런데 이듬해 곧바로 부상을 당해 1년 가까이 쉬었다. 난 프로 데뷔 이래 부상으로 고생을 좀 했다. 2년 연속 제대로 뛰어본 적이 없다. 그렇다 보니 꾸준함도 부족했다. 그 탓에 부상 노이로제가 좀 심했고, 축구하는데도 어려움이 있었다. 또 가장 힘든 시기는 전북 시절이었다.

의외다. 전북은 프로 데뷔 후 첫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렸던 팀 아닌가. 큰 부상도 없었고
하: 물론 좋은 선수도 많고 강팀이었지만, 전북의 전술과 내 스타일이 좀 안 맞았다. 내가 수비적인 부분이 좀 약한 탓도 있었다. 그런 점 때문에 최강희 감독님과 면담도 많이 했었다. 반면 서울은 나와 모든 면에서 잘 맞는다. 3년 동안 있으면서 축구나 팀 내 생활 모두 즐겁게 했다.

또 한가지 공통점. 조금 전 고명진도 잠시 얘기했지만, 어린 시절 함께 공을 찼던 친구나 동기가 일찌감치 주목받을 당시 본인들은 우울한 시절을 보냈었다. 고명진은 유스 시절을 함께했던 기성용(스완지)-이청용(볼턴)과 늘 비교 대상이었고, 하대성은 이근호(울산)와 초중고 동창에 대구에서도 함께 뛰었었다
고: 처음엔 스트레스 좀 받았다. (웃음) 내가 청용이나 성용이보다 형이고 프로 데뷔도 더 빨랐으니까. 내가 2006~2008년 사이 몇몇 부상으로 총 1년 반을 쉬었는데, 그 사이 둘은 빠르게 성장하더라. 처음엔 초조했는데 이젠 달관했다. 마냥 잘할 수는 없는데다, 나만의 길이 있는 거니까. 편하게 생각하려 한다. 서울에서 같이 뛸 땐 늘 비교를 많이 당해서 속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큰 경험이다. 이젠 정말 유명해진 선수들과 함께 뛰었던 것 아닌가.(웃음)

하: 난 한 번도 근호가 잘 된 것에 시기나 질투를 해본 적이 없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어렸을 때부터 근호는 유명했고, 또 우린 경쟁상대라기보단 서로 이끌어 주는 존재였다. 특히 근호가 대구에서 잘할 때 덕을 많이 봤다. 근호는 골 넣은 경기 인터뷰에서 늘 "대성이가 도와준 덕분에 골을 넣었다"라고 해줬다. 사실 난 도와준 게 하나도 없고 자기 혼자 잘해서 넣은 건데(웃음). 괜히 나까지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더라. 고마운 일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근호가 더 잘됐으면 좋겠고, 나 역시 그만큼 좋은 친구이자 동료가 되고 싶다.

최용수는 못말려

둘을 얘기함에 있어서 최용수 감독을 얘기하지 않을 수 있다. 각자에게 최 감독은 어떤 존재인가
고: 내가 성장하는데 가장 큰 도움 주신 분이다. 늘 감사하다. 프로 선수에겐 감독의 믿음이 가장 중요하다. 그런 신뢰를 내게 처음 준 지도자가 바로 최 감독님이다. 요즘도 내가 축구 내적이나 외적으로 잘못된 행동을 하면 "너 또 옛날로 돌아가려고?"라며 불호령을 내리신다. 나를 제일 잘 아는 선배이자 선생님이다.

하: 지난 시즌 초 감독 대행이 되신 뒤로 팀 성적이 쭉 좋았는데, 울산과의 6강 플레이오프 직전 내가 종아리 파열 부상을 당했다. 개인적으로 시즌 내내 부상에 시달리다 복귀했는데, 그렇게 돼서 정말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그보다도 감독님께 너무 죄송했다. 내게도 명진이 못잖게 믿음을 주며 기다려주셨는데…. 그렇게 되니 뵐 면목이 없더라. 결국 나 때문에 경기 이틀 앞두고 팀 전술을 통째로 바꿔야 했고, 울산에도 졌다. 경기 끝나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지난해 감독님께 큰 빚을 졌다. 올 시즌 차곡차곡 갚아나가고 있는데, 우승한다면 조금이나마 차감할 수 있을 것 같다. (웃음)

최 감독은 부임 초부터 '형님 리더십'으로 주목받았다. 선수들이 보는 최 감독은 어떤 지도자일까
하: 우리나라에서 가장 캐릭터가 독특한 감독 아닐까. 다른 지도자와 달리 스타일과 개성이 뚜렷하다.

고: 일단 호불호가 확실하고, 엄청 직설적이다. 선수가 상처받을까 봐 조심스러워하는 분도 있는데, 최 감독님은 바로 앞에서 눈물 쏙 빠지게 호통치신다. 물론 뒤끝은 없다. 자신감도 대단하시다. 처음 뵌 건 2006년 1월 전지훈련이었다. J리그 생활 마치시고 막 돌아오셨을 때였다. 그해 6월에 은퇴하셨으니 솔직히 '말년' 아닌가. 그런데도 훈련이나 경기 때 무조건 공부터 달라고 소리치셨다. 이젠 기량이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웃음) 자신감은 지금도 여전하시다.

하: 감독님의 그런 자신감이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에 더 빛을 발하는 것 같다.
[피플+]하대성·고명진 "호주전 뛰고 울산전 뛰면 안돼요?" 원본보기 아이콘

고: 2006년에 한번은 이런 적도 있었다. (박)주영이형이 한창 K리그에 신드롬 일으킬 때 아니었나. 그런데 감독님이 기자들이 많은 자리에서 정말 진지하게 "내가 박주영보다는 아직 훨씬 낫다"라고 하셨다. 너무 진지해서 처음엔 장난인 줄 알았다 (웃음)

하: 나도 제보 하나 하겠다. 들은 얘기인데, 감독님이 서울 복귀 당시 구단에서 등번호 몇 번 갖겠느냐고 하니까 1초도 망설임 없이 주영이가 달고 있던 '10번'이라고 하셨다더라. 아주 당당하게. 결국 못받았다. 구단에서 못 주겠다고 했단다 (웃음)

이런 농담만 전해 들어도 최 감독과 선수들 간의 관계가 짐작이 된다. 최근 최 감독은 "사실 시즌 전만 해도 목표는 3위였다"라고 솔직하게 털어놨었다. 다른 경쟁팀에 비해 확실히 전력 보강이 부족했으니까. 정작 선수들은 어떤 생각이었나
하: 나도 시즌 전 목표는 AFC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이었다. 지난해 ACL에선 부상 때문에 제대로 뛰어보질 못해서, 개인적으로 더 아쉬움이 있었다. 또 솔직히 말해 시즌 초에 서로 발이 좀 안 맞았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경기를 치르면서 5~6월쯤 되면 상승세를 타겠다는 느낌이 왔었고, 아니나 다를까 그 때부터 쭉 선두를 달리고 있다. 이젠 우승밖에 안 보인다. 거의 다 잡았기에 누군가 뺏어간다면 너무 아쉬울 것 같다.

고: 나도 처음엔 우승까진 생각 못했다. 3위 안에 드는 게 목표였다. 이유가 있었다. 올 시즌 우리가 4-3-3 포메이션을 쓰는데, 내가 서울에 10년 있으면서 원톱을 쓴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항상 투톱이었다. 데얀조차 처음엔 낯설어했고, 몰리나도 측면보다는 중앙 성향이 강한 공격수 아닌가. 그래서 좀 불안했다. 그런데 요즘 느끼는 건, 공격이나 미드필드에서 두세 명만 확실히 잘해주면 팀 전체가 큰 힘을 받는다는 점이다. 시즌 초 데얀이 부진할 때 대성이형이랑 몰리나가 좋았고, 그러다 보니 데얀도 컨디션이 올라왔다. 또 여름에 에스쿠데로라는 전혀 새로운 장점의 선수가 가세했다. 그런 퍼즐이 맞다 보니 팀 전체가 강해졌다.

서울이 데몰리션 듀오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하: 난 오히려 그게 좋다. 공격 포인트면에서 데몰리션은 주목받을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 스포트라이트가 몰리면 그만큼 견제도 둘에 집중된다. 그러다 보면 나나 명진이에게도 기회가 더 자주 오지 않겠나.

고: 흠. 나도 골을 많이 넣고 싶은데 생각대로 안 된다. 내가 쉬운 기회를 좀 잘 놓치는 편이다. (웃음) 그래서인지 습관적으로 결정적 순간 슈팅보다 패스를 먼저 생각하게 되더라.

하: 하하. 이런 것도 있다. 명진이가 슈팅력은 참 좋은데, 감독님은 2선에서 중거리 슈팅 남발하는 걸 싫어하신다. 만약 그러면 팔짝팔짝 뛰신다. (웃음) 명진아. 그래도 내가 볼 땐 때리는 게 맞는 것 같아. 가끔은 그냥 슈팅하고 벤치 반대쪽 보고 가버려. 때려야 들어가지.

고: 에이, 형도 중거리 슈팅 잘 안 하잖아요. 나 혼자 감독님한테 혼나라고요?

하: 난 슈팅을 못해서 안 하는 거고.

하대성이 '감독님 디스'와 '후배 죽이기'를 한 번에 해결하려나 보다. 이번엔 주장직에 대해 물어보자. 시즌 전 최 감독이 하대성에게 주장 완장을 내밀었을 때 어땠나
하: 깜짝 놀랬다. 서울에서 주장을 하리라곤 생각조차 못했으니까. 안 그래도 빚진 게 많은데 왜 또 내게 이런 부담을 주시나 했다. (웃음) 스스로 주장감도 아니라 생각했고.

고: 다들 처음엔 좀 어리둥절해했다. 대성이형이 좀 진지한 스타일이다. 가만있으면 무슨 생각하나 싶다. (웃음) 혼자 할 일만 딱 챙기고 조용한 편이다. 그래도 난 되게 좋았다. 형이 책임감이 강해서 잘할 것 같았다. 역시나 첫 훈련부터 사람이 확 바뀌더라. 러닝할 때 아무도 안 시켰는데 맨 앞에 가서 뛰었다. 경기할 때도 예전엔 묵묵하게 뛰기만 했는데, 요즘엔 대화도 정말 많이 한다.

그럼 하 주장이 보기에 고명진은 캡틴의 자질이 좀 보이나
하: 내년에 명진이가 주장할 거다.

고: (손사래를 치며)아아, 전 절대 안 할 거예요.

"수원, 반드시 설욕한다"

[피플+]하대성·고명진 "호주전 뛰고 울산전 뛰면 안돼요?" 원본보기 아이콘

조금 불편한 소재지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또 수원전 얘기다. 벌써부터 표정들이 굳는데, 7연패 터널 정말 길고 길었다. 고명진은 지난 8월 수원 원정 때 굉장히 화가 많이 난 표정으로 경기장을 빠져나가던 모습이 기억난다
고: 화가 났었다기보다는, 부끄러웠다. 서울 유니폼을 입고 이렇게 수원에 져 본 적이 없었다. 팀으로도 그렇고 선수로서도 너무 창피했었다. 서포터즈 보기에도 미안하고…. 그날 경기 끝나고 수원 선수들과 유일하게 악수도 안 했다. 아니 못했다. 자존심이 상해서.

하: 나 역시 수원전에 임할 때 더 결연한 태도를 갖고 이기기 위해 뛴다. 이제 와 솔직히 말하건대 수원의 도발에 굉장히 기분이 나빴었다. 선수로서의 자존심까지 짓밟더라. 맞대응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꾹꾹 참았다. 그 대신 경기에서 이긴 뒤 인터뷰에서 멋지게 한 방 먹이고 싶었는데, 오히려 계속 지니까 나중엔 정말 미치겠더라. 아직도 그걸 못 풀고 있다.

고: 슈퍼 매치 앞두고 마치 우린 필사적이고, 수원은 굉장히 여유있게 나서는 것처럼 인터뷰하는데, 솔직히 좀 왜곡됐다. 듣기론 수원이 우리와의 경기 앞두고 미팅은 물론이고 비디오 분석도 엄청나게 한다고 하더라.

하: 최근 무승부도 아쉬웠다. 수적 우세에 시간도 있었는데…. 어쨌든 올 시즌 수원전은 끝났다. 더 이상 생각하지 않고 오직 우승 경쟁에만 집중할 생각이다.

"울산이 ACL 우승하고, 우리가 K리그 우승하면 되잖아요?"

불편한 질문 딱 한 가지만 더 던져보자. 11월 14일 A매치를 치르고, 바로 다음날 울산과 K리그 경기가 있다. 의도치 않게 우승 경쟁의 중요한 고비에서 결장할 가능성이 커졌다. 어쨌든 팀에 미안한 마음도 들것 같은데
하: 규정상으로도 우린 못 뛰는 건가? (Q: 그런 건 아니지만 체력 문제가 있지 않겠나?) 대표팀 경기에서 어떻게 될진 몰라도 난 울산전도 바로 뛸 생각이다.

고: 나도 마찬가지다. 감독님이 뛰게만 해주시면 최선을 다해 뛸 거다. 그리고 울산은 ACL 우승하고, 우린 K리그 우승하면 안될까? (웃음)

너무 당연한 듯 뛰겠다고 하니, 물어본 자체가 민망해질 정도다. 이제 가벼운 주제로 넘어가겠다. 그라운드 밖 평소 생활은 어떤가? 직접 얘기하면 신빙성이 떨어지니까 서로 옆에서 지켜본 모습을 말해보자
고: 내가 먼저 말하겠다. 대성이 형은 되게 활동적이다. 난 그냥 집에 가만히 쉬는걸 좋아하는데, 형은 그렇게 하면 오히려 컨디션이 더 나빠지는 것 같다. 친한 사람 만나고 차도 한 잔 마시면서 좀 돌아다녀야 경기력도 좋아진다. 서울이랑 잘 맞는다. (웃음)

하: 이건 부정 못하겠다. 그런데 바깥 생활을 하는 건 의도치 않은 점도 있다. 내가 인간 관계를 중요시하는 편이다. 축구에 피해가 가지 않는 한도 내에서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 그래서 그렇지 나도 집에서 쉬는 거 좋아한다!

주변 서울 여성팬들에게 물어보면, 가장 인기있는 남자 선수가 다름 아닌 하대성-고명진이다. 인기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나?
고: 에이, 대성이형은 몰라도 나는 아니다. 형은 딱 마초 스타일이다. 외모에서 풍기는 이미지가 벌써 남성적이지 않나. 내 주변 여자들도 대성이형 정말 좋아한다. 가끔 형이 경기 끝나고 유니폼 벗어 관중석에 던지면서 몸매를 드러내는데, 그때마다 여자들이 "하대성 엄청 섹시하다"라며 난리다.

하: 명진이는 여성스러워서 모성애를 불러일으키는 친구다. 피부도 백옥같다. (웃음)

고: 하얀 건 훈련이나 경기 전에 선크림 덕지덕지 발라서 그런 거에요. (웃음)

만약 시간을 되돌릴 기회가 주어진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나
하: 난 고등학교 1학년. 그때 무릎 부상을 당해서 2년을 쉬었다. 그 이전과 이후로 공차는 스타일이 완전히 바뀌었다. 그 부상만 없었다면 어쩌면 지금보다 더 즐겁게 공을 찰 수 있었을 것 같다. 이전까진 내가 원하는 축구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충만했는데, 그 이후엔 좀 위축됐던 게 사실이다. 한때 축구를 그만둘 결심까지 했었을 정도였으니.
[피플+]하대성·고명진 "호주전 뛰고 울산전 뛰면 안돼요?" 원본보기 아이콘

고: 난 딱히 그런 건 없다. 이게 내 길이라고 생각한다. 아, 대학교는 한번 가보고 싶다. 일반 학생의 삶을 살아보고 싶다. 미팅이나 MT 같은 것도 가보고. 열심히 공부해서 장학금도 받아보고.

혹시 미리 그려둔 현역 은퇴 이후 삶이 있을까
하: 음…. 난 축구 외에 다른 일을 해보고 싶다. 영어도 좀 배우고. 그런데 이런 얘기 하면 선배들이나 감독님들께선 "우리도 다 그랬지만 결국 송충이는 솔잎을 먹게 돼있다"라고 하시더라. (웃음)

고: 대성이형 잘하는 분야가 있다. 인테리어! 건축이나 집 꾸미는 일에 관심이 많다. 사실 나는 아직 10년 뒤까지 생각 안 해봤다. 이제 슬슬 생각해봐야지.

하: 넌 10년 뒤에도 현역으로 뛰고 있을 것 같은데. (웃음)

지금 뒤에서 최용수 감독님이 훈련 시간 다됐다고 자꾸 눈치 주신다. 이제 마무리를 지어보자. 올 시즌 목표는 당연히 우승일 테고, 그 이후의 목표를 얘기한다면
하: ACL도 욕심은 나지만, 그래도 지금은 우승만 보고 가련다. 아직 우승한 게 아니니까, 벌써 다음 목표를 잡는 건 좀 그렇다. 자신은 있다.

고: 아…. 솔직히 지난 전북 원정이랑 수원 홈경기가 너무 아까웠다. 둘 다 이길 수 있었고, 만약 그랬다면 일찌감치 우승도 확정지을 수 있었는데.

하: 수원전 끝나고 전북-부산전을 TV로 봤는데, 전북이 페널티킥 얻는 장면 보고 바로 껐었다. (웃음)

얘기 안 하니 그럼 콕 집어서 물어보겠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 대한 생각도 머릿속엔 있지 않나?
하: 월드컵은 선수 생활 시작할 때부터 당연한 목표다. 특히 월드컵 출전 여부는 은퇴할 때 천지차이라고 하더라. 경쟁에서 살아남아 브라질까지 꼭 가보고 싶다.

고:마음이야 간절하지만, 가고 싶다고 갈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나. 본선에선 다른 감독님도 오실 테고. 그분이 원하는 축구와 내 스타일이 잘 맞아떨어지고, 나도 열심히 뛴다면 기회는 올 것이라 믿는다.




전성호 기자 spree8@
A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본 뉴스

새로보기

이슈 PICK

  • 6년 만에 솔로 데뷔…(여자)아이들 우기, 앨범 선주문 50만장 "편파방송으로 명예훼손" 어트랙트, SBS '그알' 제작진 고소 강릉 해안도로에 정체모를 빨간색 외제차…"여기서 사진 찍으라고?"

    #국내이슈

  • 美대학 ‘친팔 시위’ 격화…네타냐후 “반유대주의 폭동” "죽음이 아니라 자유 위한 것"…전신마비 변호사 페루서 첫 안락사 "푸바오 잘 지내요" 영상 또 공개…공식 데뷔 빨라지나

    #해외이슈

  • [포토] 정교한 3D 프린팅의 세계 [포토] '그날의 기억' [이미지 다이어리] 그곳에 목련이 필 줄 알았다.

    #포토PICK

  • 제네시스, 中서 '고성능 G80 EV 콘셉트카' 세계 최초 공개 "쓰임새는 고객이 정한다" 현대차가 제시하는 미래 상용차 미리보니 매끈한 뒤태로 600㎞ 달린다…쿠페형 폴스타4 6월 출시

    #CAR라이프

  • [뉴스속 인물]하이브에 반기 든 '뉴진스의 엄마' 민희진 [뉴스속 용어]뉴스페이스 신호탄, '초소형 군집위성' [뉴스속 용어]日 정치인 '야스쿠니신사' 집단 참배…한·중 항의

    #뉴스속OO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많이 본 뉴스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top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