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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훈의 X-파일]류현진의 비상, 이뤄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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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진(사진=정재훈 기자)

류현진(사진=정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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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4월 4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 8개 구단 간판, 신인 선수 16명이 한 자리에 모였다. 프로야구 미디어 데이. 취재진의 눈이 쏠린 건 10억 원의 계약금을 받고 KIA에 입단한 한기주였다. 데뷔 시즌 목표를 묻는 질문에 그는 “팀 우승, 신인왕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답했다.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이어 마이크를 잡은 선수는 정반대였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는 없었다. 작은 목소리에 각오도 짤막했다.

“팀의 우승을 위해 노력하겠다.”
류현진이었다. 그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해 18승 6패 204탈삼진 평균자책점 2.23을 남기며 한화 이글스를 한국시리즈로 이끌었지만 선수단은 삼성 라이온즈에 1승 1무 4패로 무릎을 꿇었다. 이후 류현진은 한화의 독보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7년 동안 98승 52패 평균자책점 2.80을 기록하며 한화는 물론 프로야구의 에이스로 우뚝 섰다. 이제 눈은 미국을 향한다. 메이저리그 포스팅 시스템(Posting system, 비공개 경쟁입찰)에 이름을 올리며 빅 리그 진출을 고대한다. 간절한 바람은 이뤄질 수 있을까.

포스팅 시스템, 왜 만들어졌나?

1997년까지 한국, 일본, 대만 프로야구에서 뛰던 선수들이 메이저리그로 둥지를 옮기는 방법은 두 가지였다. 소속 구단이 해당선수의 신분을 자유롭게 풀어줘 진행되는 계약과 소속구단과 해당선수의 영입을 원하는 메이저리그 구단이 일대일 협상을 벌여 이적료를 주고받는 방식이다.
아시아 프로리그 출신 메이저리거는 1965~66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서 54경기에 출전해 5승 1패 9세이브 평균자책점 3.43을 기록한 무라카미 마사노리 이후 한동안 맥이 끊겼다. 긴 침묵을 끊은 건 1995년 노모 히데오였다. 그의 성공 이후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아시아 시장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특히 일본프로야구에서 뛰는 슈퍼스타들을 데려오고 싶어 했다. 대다수 일본구단들은 “자유계약선수(FA)가 아닌 이상 구단의 재산인 선수를 절대 (메이저리그로) 팔아넘길 수 없다”며 강경한 자세를 보였다. 그러나 재정상태가 좋지 못했던 몇몇 구단들에게 거액의 이적료를 앞세운 유혹은 사실상 뿌리치기 힘든 제안이었다.

이라부 히데키(왼쪽)와 조지 스타인브레너 뉴욕 양키스 전 구단주[사진=Getty Images/멀티비츠]

이라부 히데키(왼쪽)와 조지 스타인브레너 뉴욕 양키스 전 구단주[사진=Getty Images/멀티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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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1996년 겨울 불거졌다. 지바롯데 마린스 소속이던 이라부 히데키는 오프시즌 구단에 메이저리그 이적을 요구했다. 지바롯데는 샌디에이고 파드레스와 이라부의 보유권을 양도하는데 합의했다. 히로오카 타츠오 당시 단장이 받기로 한 대가는 돈이 아니었다. 샌디에이고 40인 로스터에 있던 투수 쉐인 데니스와 내야수 제이슨 톰슨을 데려오는 조건이었다. 1997년 2월 두 구단 간의 거래는 문제없이 성사되는 듯했다. 하지만 이라부의 갑작스런 요청에 거래는 곧 새 국면을 맞게 됐다.

“야구선수라면 핀 스트라이프 유니폼의 무게감을 알 것이다. 뉴욕 양키스로 가고 싶다.”

이라부의 발언에 양키스 구단은 힘을 실어줬다. 조지 스타인브레너 구단주는 스카우트 팀에 이라부 영입을 지시하는 한편 메이저리그 사무국에 강력하게 항의, 샌디에이고와 지바롯데를 압박했다.

“선수에게 이적은 새로운 직장을 찾는 구직행위다. 선수 본인의 의사가 철저히 배제당한 채 해당구단간의 일방적인 합의로 이뤄진 트레이드는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므로 무효다. 더불어 이라부 정도의 선수가 시장에 나왔는데도 나머지 27개 구단이 사실을 까맣게 모른다는 건 문제가 있다. 메이저리그 28개 구단은 메이저리그로 이적을 희망하는 선수에 대한 정보를 알 권리가 있다.”

결국 이라부는 이듬해 지바롯데-샌디에이고-양키스의 삼각 트레이드를 통해 핀 스트라이프 유니폼을 입었다. 양키스는 그에게 4년간 1280만 달러의 연봉을 지급하기로 했다.

양키스의 이라부 영입에 라이벌 팀인 보스턴 레드삭스는 바로 소매를 걷어붙였다. 메이저리그 진출을 원하는 아시아 프로리그 선수가 있는지 물색하기 시작했다. 레이 포이트빈트 극동담당 스카우트팀장(현 볼티모어 오리올스 국제담당국장)은 우여곡절 끝에 한 명을 찾아냈다. LG 트윈스에서 뛰던 이상훈이었다. 11월 13일 무조건적 해외진출을 선언한 그는 최종준 당시 LG 단장과 의견 충돌 끝에 해외진출을 허락받은 상태였다. 보스턴은 지체하지 않았다. 12월 16일 LG에 이적료 250만 달러를 제안하는 한편 이상훈에게 계약금 포함 연봉 130만 달러를 제시했다.

이상훈[사진=Getty Images/멀티비츠]

이상훈[사진=Getty Images/멀티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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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이적은 불발됐다. 1998년 1월 17일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곧 새로운 이적절차를 발표할 예정”이라는 입장 표명과 함께 이적 승인을 보류했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24일 한국야구위원회(KBO)에 공문을 보냈다.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이상훈을 둘러싼 LG와 보스턴의 트레이드는 무효다. 메이저리그 30개 구단이 공정한 영입경쟁을 벌여야 한다.”

이 때부터 FA 자격을 얻지 못한 선수는 메이저리그 이적을 희망하면 30개 구단이 모두 참여하는 공개입찰을 거치게 됐다. 포스팅 시스템의 탄생 배경이다.

3월 31일 공개된 이상훈의 몸값은 기대 이하였다. 60만 달러. 금액을 적어낸 구단은 다름 아닌 보스턴이었다. LG 구단이 격분한 건 당연했다. 바로 이적불가를 선언, 대화의 문을 닫았다. 이 과정을 침묵으로 일관하며 지켜본 구단이 있었다. 일본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곤즈다. 주니치는 바로 LG와 협상테이블을 가졌다. 그리고 4월 14일 이적료 2억 엔, 계약금 5천만 엔, 연봉 8천만 엔의 조건에 영입을 발표했다. 다양한 논란을 일으킨 5개월간의 줄다리기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포스팅의 두 얼굴

포스팅 시스템이 도입된 지 어느덧 15년이 흘렀다. 그간 포스팅은 일본에서 15차례, 한국에서 5차례 이뤄졌다. 이 가운데 메이저리그 입성에 성공한 건 각각 7차례와 1차례다. 한국의 유일한 주인공은 2008년의 최향남으로 포스팅 금액은 고작 101달러였다.

포스팅은 공개입찰이다. 메이저리그 30개 구단이 모두 참여할 수 있다. 하지만 어느 구단이 얼마를 적어냈는지는 철저하게 비밀에 붙여진다. 비공개입찰이기도 한 셈. 이 같은 모순으로 그간 포스팅은 적잖게 극단적 결과를 양산해왔다. 마쓰자카 다이스케(5111만 달러)와 다르빗슈 유(5170만 달러)로 대변되는 ‘과당경쟁’과 나머지 선수들로 대변되는 ‘담합경쟁’이다. 포스팅을 도입한 목적은 공정한 경쟁을 통해 구단과 선수가 모두 ‘윈-윈’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자본주의의 어두운 단면을 극단적으로 보여주고 말았다.

류현진(왼쪽)과 박찬호(사진=정재훈 기자)

류현진(왼쪽)과 박찬호(사진=정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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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측면에서 그간 포스팅에 임했던 한국선수들은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과당경쟁을 감수하고서라도 데려오고 싶은 경우와 거리가 멀었다. 헐값에 찔러보고(독점교섭권 획득) 안 되면 그만인 선수로 평가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메이저리그가 생각하는 류현진의 가치

류현진은 그동안 메이저리그에 도전했던 선수들에 비해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매력을 느낄만할 다양한 조건을 갖췄다. 우선 희소성이 있는 왼손투수다. 최고구속도 154km에 이른다. 90마일에 육박하는 직구 평균구속(2012년 143.8km)과 수준급의 서클체인지업을 구사한다. 더구나 나이는 이제 겨우 만 25세. FA 신분이라면 메이저리그 유니폼을 입지 않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포스팅 선수일 경우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연봉 외에 추가로 이적료를 지불해야 한다.

적잖은 국내 언론들은 류현진의 장밋빛 미래를 예견한다. 예상금액으로 1000만~2000만 달러를 거론한다. 이들의 예상대로라면 류현진의 가치는 이와쿠마 히사시(시애틀 매리너스)가 2010년 포스팅(오클랜드 어슬레틱스, 1910만 달러)에 도전해 인정받은 것과 비슷한 수준이다. 그동안 포스팅으로 메이저리그에 도전한 선수들은 이적료와 일 대 일 수준의 연봉을 제시받았다. 이와쿠마는 조금 달랐다. 오클랜드로부터 일 대 일 수준에 조금 미치지 못하는 4년간 1525만 달러의 연봉을 제시받았다.

연봉을 떠나 이와쿠마가 메이저리그 구단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은 건 빼어난 일본프로야구 성적(107승 69패 평균자책점 3.25)과 2009년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의 호투(20이닝 투구 평균자책점 1.35) 덕이었다.

류현진 역시 한국프로야구에서의 성적은 눈부시다. 문제는 메이저리그 구단들의 리그 수준에 대한 평가다. 아직까지 한국프로야구는 일본프로야구보다 낮은 수준의 리그로 인식되고 있다. 이는 리그에서 거둔 성적표에 대한 신뢰도가 일본프로야구보다 낮게 매겨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더스틴 니퍼트(사진=정재훈 기자)

더스틴 니퍼트(사진=정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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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공신력에 대한 엇갈린 평가는 외국인선수들을 살펴봐도 잘 알 수 있다. 일본프로야구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메이저리그 복귀해 성공한 사례는 심심찮게 발견된다. 히로시마 카프에서 뛰었던 콜비 루이스(텍사스 레인저스, 2012시즌 6승 6패 평균자책점 3.43)나 에릭 스털츠(샌디에이고 파드레스, 2012시즌 8승 3패 평균자책점 2.91) 등이 대표적이다. 반대로 최근 5년 동안 한국프로야구를 거쳤던 외국인선수 가운데 메이저리그에서 풀 시즌을 보낸 사례는 한화에서 뛰었던 왼손투수 브래드 토마스가 유일하다. 그는 2010년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에서 6승 2패 평균자책점 3.89를 거뒀다.

최근 국내 구단들은 겉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외국인선수들에게 후한 연봉을 지급하며 메이저리그 경력이 제법 되는 선수들을 데려온다. 이들이 한국에서 뛰는 목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플레잉 타임의 확대와 경제적 안정이다. 메이저리그 복귀라고는 말하긴 어렵다. 지난 2년 동안 특급선발의 위용을 과시한 더스틴 니퍼트(두산 베어스)는 지난겨울 고향으로 돌아가 가진 지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행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메이저리그에서 선발투수로 뛸만한 경쟁력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메이저리거가 되기 위해선 매년 메이저리그에서 중간계투로 뛰다 선발진입을 노리는 선수들, 마이너리그 트리플A에서 선발투수로 좋은 성적을 남긴 선수들과 치열한 경쟁(Hard Competition)을 벌여 승리해야 한다. 이런 경쟁을 벌이는 것에 피로를 느낀 것이 두산의 입단제의를 수락한 이유 가운데 하나다.”

한국프로야구에서 선발투수로 최고구속 162km의 강속구를 뿌려대는 레다메스 리즈(LG)나 올 시즌 구원에서 두각을 보인 스캇 프락터(두산) 등에 대해서도 메이저리그 구단들의 평가는 여전히 차갑다. 이들의 활약을 높게 평가하지 않는 상황에서 류현진의 성적에 대해 유별나게 높은 평가를 내릴 가능성은 결코 높다고 볼 수 없다.

천웨인과 류현진

올해 메이저리그에 활약한 선수들 가운데 류현진과 비교할 만한 선수는 누가 있을까? 적잖은 국내 언론들은 그 대상으로 천웨인(볼티모어 오리올스, 12승 11패 평균자책점 4.02)을 손꼽는다.

천웨인은 지난겨울 3년간 1170만 달러를 받는 조건으로 볼티모어 유니폼을 입었다. 그가 포스팅을 통해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면 어땠을까. 포스팅 금액과 일대일에 가까운 비율로 연봉을 책정하는 관례를 감안할 때 천웨인은 1000만~1500만 달러의 포스팅 금액을 제시받을 수 있었다.

천웨인[사진=Getty images/멀티비츠]

천웨인[사진=Getty images/멀티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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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웨인이 그간 남긴 성적은 상당하다. 일본프로야구 주니치에서 7년 동안 36승을 챙기는데 그쳤지만 통산 평균자책점이 2.59나 된다. 이는 류현진이 한국프로야구에서 기록한 평균자책점(2.80)보다 낮은 수치다. 천웨인은 2009년 선발투수로서 1.54의 평균자책점을 남기기도 했다. 일본프로야구에서 7년 동안 평균자책점 1.99를 기록한 다르빗슈 유(텍사스 레인저스)도 이보다 낮은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건 지난 시즌(1.44)이 유일하다. 더구나 지난 시즌는 일본프로야구에 극단적 ‘투구타저’ 현상을 불러일으킨 ‘날지 않는 공’이라 불리는 신공인구가 도입된 첫 시즌이었다.

당신이 메이저리그 구단의 대표나 사장, 단장 등 수뇌부라 가정해보자. 포스팅 대상자로 등록해 메이저리그의 문을 두들기는 류현진에 대한 보고를 듣는다면 당신은 아마 이 같은 질문을 던질 것이다.

“류현진이 천웨인과 동급이거나 혹은 그보다 훌륭한 재능을 가진 투수인가?”

류현진을 면밀히 관찰해온 스카우트를 비롯한 현장책임자들이 “그렇다. 류현진은 천웨인을 뛰어넘는 재능과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라고 답한다면 1000만 달러가 넘는 이적료를 적어내는 데는 큰 망설임이 없을 것이다. 계약기간 3년 이상에 연봉 총액 1000만 달러 이상의 책정도 가능할 수 있다. 반대로 비관적인 답변이 들려온다면? 포스팅 금액으로 1000만 달러를 적어내는 데엔 상당한 용기가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포스팅은 전력보강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포스팅에 최고액을 적어내 단독협상자로 선정되는 건 계약을 무조건 해야 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때로는 라이벌구단의 전력보강을 저지하려는 목적으로 행해지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2년 전 이와쿠마의 포스팅이다.

오클랜드가 1910만 달러를 내밀며 교섭권을 따낸 이유 가운데 하나는 같은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 팀인 시애틀이 이와쿠마를 데려갈 것이란 첩보를 접했기 때문이었다. 이와쿠마와의 협상은 지지부진했다. 연봉 책정에 대한 시각차가 존재했다. 1년 후 일본프로야구에서 FA 자격을 획득할 예정이던 이와쿠마는 요미우리 자이언츠나 한신 타이거즈와 같은 부자구단으로 이적할 경우 연봉 5억 엔, 4년 총액 20억 엔 이상을 기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클랜드가 제시한 4년 1525만 달러의 연봉은 엔화로 환산할 때 4년간 11억 엔 정도였다.

메이저리그의 대표적인 스몰마켓 구단인 오클랜드는 한발도 물러설 수 없었다. 그들은 이와쿠마의 기량을 4선발 수준으로 평가했다. 더구나 연고지 이전문제가 교착상태에 빠져 큰돈을 쓸 여력이 없었다. 실마리를 찾지 못하던 협상이 결렬 쪽으로 가닥이 잡히자 오클랜드는 언론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그 주된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이와쿠마가 연평균 1800만 달러를 받는 배리 지토(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수준의 연봉을 요구해 협상이 결렬됐다.”

이와쿠마 히사시[사진=Getty Images/멀티비츠]

이와쿠마 히사시[사진=Getty Images/멀티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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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오클랜드는 시애틀의 전력보강을 저지하는데 성공했다. 한편으론 입단을 거부하던 이와쿠마에게 ‘실력에 비해 엄청난 연봉을 요구하는 탐욕스러운 선수’라는 굴레를 씌워놓았다. 하지만 미국, 일본의 야구관계자들은 이와쿠마의 연봉과 관련한 오클랜드의 언론 플레이를 믿지 않았다. 오히려 “이와쿠마와 계약을 하려는 의지가 없다”며 오클랜드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포스팅에서 단독협상권을 얻은 구단이 입단계약에 강제성이 없다는 맹점을 파고든 빌리 빈 오클랜드 단장의 꼼수를 앞 다퉈 비난했다. 격분을 참지 못한 건 이와쿠마와 그의 소속팀이었던 라쿠텐 골든이글스도 마찬가지.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어떠한 손도 쓸 수 없었다. 구단 대 구단의 비즈니스인 포스팅에 계약의 강제성을 부여하기엔 법률적 근거가 부족한 까닭이다.

그런데 이후 또 하나의 충격적인 반전이 밝혀졌다. 이와쿠마 포스팅에 뛰어든 구단 가운데 오클랜드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금액을 적어낸 구단은 시애틀이 아니었다. 미네소타 트윈스였다. 금액은 더 충격적이었다. 770만 달러였다.

류현진 영입가능성이 있는 메이저리그 구단은?

류현진이 포스팅 시장에 올랐지만 큰 관심을 보이는 구단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류현진에 대한 전반적인 시각이 ‘영입을 시도해 볼만한’ 정도라고 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 영입에 관심을 보일만한 구단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 샌디에이고 파드레스 두 구단 정도다.

클리블랜드는 류현진의 경기를 체크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구단들 가운데 최고위층을 보냈었다. 일반적으로 경기장을 직접 방문하는 건 극동 스카우트 팀장이나 국제 스카우트 총괄팀장이다. 이들이 오면 고위층이 직접 관전했다고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클리블랜드는 유일하게 부단장인 존 미라벨리가 류현진을 체크했다.

피터 오말리(왼쪽)[사진=Getty Images/멀티비츠]

피터 오말리(왼쪽)[사진=Getty Images/멀티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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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행선지로 꼽히는 샌디에이고는 올해 구단주가 바뀌었다. LA 다저스의 전 구단주였던 피터 오말리는 골프선수 필 미켈슨 등과 함께 공동구단주 자격을 갖췄다. 오말리는 다저스 구단주 시절 박찬호의 스카우트를 직접 지시한 것으로 국내에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박찬호가 다저스에서 선발투수로 뛰던 1997~2001년 한국인 마케팅으로 적잖은 재미를 봤다. 박찬호가 홈구장인 다저 스타디움에서 선발 등판할 때면 경기장에는 5000여명의 한인이 운집했다. 박찬호의 전성기만큼은 아니겠지만 류현진을 영입한다면 자동차로 2시간 거리인 LA 등지에서 한인관중들이 팻코 파크를 찾을 것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물론 샌디에이고의 실질적 구단주는 지역유지이자 그룹 ‘파드레스 그룹’의 CEO 론 파울러다. 하지만 류현진을 500만 달러 이하의 낮은 금액으로 교섭권을 따낼 확신이 있다면 오말 리가 이를 파울러에게 건의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한인관객들이 팻코파크에서 지갑을 열고 한국기업들의 스폰서이 달라붙는다면 포스팅 금액은 충분히 회수하고도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의외의 구단이 류현진을 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구단이 됐건 큰 금액을 배팅할 만큼 ‘과당 경쟁’을 펼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의외의 복병-오릭스 버팔로스

류현진의 해외진출에 가장 큰 변수가 될 수 있는 건 소속구단인 한화의 태도다. 한화는 지난 10월 26일 류현진의 해외진출을 허용하며 한 가지 단서를 달았다.

“합당한 가치가 아니면 류현진을 보내지 않겠다.”

한화는 1999년과 2000년 각각 팀의 기둥이던 정민철과 구대성을 일본으로 이적시킨 전력이 있다. 당시 이적료에 대한 제한은 걸지 않았다. 두 번 모두 “대승적인 차원으로 보낸다”라고 밝혔다.

류현진을 원하는 메이저리그 구단들의 포스팅 응찰금액이 한화의 기대에 미치지 못 할 경우 상황은 미묘하게 흘러갈 수 있다. 14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이상훈이 60만 달러의 포스팅 금액을 보스턴 구단으로부터 제시받았을 때 이상훈은 “마이너리그를 전전하더라도 메이저리그 무대에 도전하겠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250만 달러의 이적료를 받는다는 계약서에 사인까지 했던 LG에게 60만 달러는 용납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 결국 LG는 ‘한국프로야구 복귀 절대불가’를 외치는 이상훈의 행선지를 계획에 없던 일본으로 잡았다. 한해 그룹 총매출액이 조 단위인 대기업에게 이적료는 결코 큰돈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의 자존심은 60만 달러에 이상훈을 보낼 수 없었다. 당시 LG가 이상훈의 보스턴 이적을 강행했다면 구단 직원들은 그룹 수뇌부에서 문책을 당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대호[사진=SBS CNBC 제공]

이대호[사진=SBS CNBC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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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충분히 반복될 수 있다. 14년 전 주니치가 조용히 상황을 주시하며 이상훈을 데려갔듯 2012년에는 오릭스 버팔로스가 그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오릭스는 올 시즌 퍼시픽리그 최하위로 추락해 전력 보강에 혈안이 돼있다. 상황은 여의치 않다. 같은 연고지를 사용하는 한신 타이거즈가 올 시즌 센트럴리그 5위에 그친 한을 풀고자 전력보강에 더 적극적으로 달려드는 까닭이다. 더구나 ‘만년 하위 구단’, ‘비인기구단’이란 오릭스의 달갑지 않은 이미지는 특급선수들이 오릭스 유니폼을 입는데 보이지 않게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2000년 겨울 현대 유니콘스는 정민태를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이적시키며 5억 엔의 이적료를 챙겼다. 오릭스는 그 수준을 상회할 정도의 이적료를 지불하면서까지 류현진을 영입할 가능성이 있는 구단이다. 여기에는 전력 보강 외에 두 가지 이유가 더 붙는다. 중계권료 수익 창출과 모기업 오릭스의 이미지 제고다.

오릭스는 지난겨울 이대호를 영입해 홈 72경기의 중계권료 수익을 한국 시장에서 올렸다. 중계권료 수익이 구단의 수익으로 귀속되는 일본프로야구의 수익구조에서 오릭스는 원정 72경기의 중계권마저 팔기 위해 애를 쓸 가능성이 높다. 류현진 영입에 성공할 경우 중계권 수익 증대라는 오릭스의 꿈은 충분히 현실이 될 수 있다.

다른 이유는 오릭스의 한국 내 영업이다. 오릭스는 지난해 두 곳의 저축은행을 인수하며 대부업에 뛰어들었다. 한국 금융시장이 저축은행들의 잇단 영업정지와 퇴출설 속에 얼어붙어있음에도 공략을 멈추지 않고 있다. 지난 10월 31일에는 STX에너지의 지분 43.1%를 3600억 원에 매입하기도 했다.

류현진(사진=정재훈 기자)

류현진(사진=정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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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릭스그룹은 종합금융그룹을 표방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기업이미지는 ‘고리대금업’. ‘사채업’ 등과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결국 오릭스 버팔로스에 한국인 선수를 입단시키는 전략은 그룹이미지 제고와 홍보를 동시에 노린다고 할 수 있다. 수십억 원의 모델료를 주고 유명연예인을 CF 모델로 쓰는 것보다 이를 더 효과적인 방법으로 보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오릭스 그룹에게 류현진의 영입은 모기업의 이미지제고, 홍보 그리고 야구단의 전력보강이란 세 마리 토끼를 안겨줄 ‘신의 한수’가 될 수 있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류현진의 행선지가 어느 곳이 될 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하지만 한국프로야구보다 높은 수준의 리그에서 공을 던질 가능성만큼은 충분해 보인다. 최근 언론을 통해 밝혀지는 류현진의 언행은 다소 앞서간다는 인상을 역력하다. 6년 전 한기주에게만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조용히 칼을 갈며 실력으로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던 초심을 보여 줄 때다.

김성훈 해외야구 통신원



이종길 기자 leem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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