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초희 기자]7일 오전 8시, 이른 아침부터 동네 목욕탕은 명절과 연휴 증후군에 시달리는 40~50대 주부들이 하나가득이다. 아들, 며느리 내외와 딸과 사위, 온 집안을 휘젓고 다니는 손자 손녀 등과 지내는 명절과 긴 연휴는 즐겁기도 하지만 스트레스의 연속이다.


명절 때마다 높아진 물가에 장보기 스트레스, 자식과 며느리들과의 부딪힘, 자식들이 주는 용돈에 대한 서운함 등은 매년 되풀이되는 일이다. 이들에게는 사우나에서 수다를 떨면서 기분을 푸는 것이 유일한 낙이다.

오늘도 목욕탕 내 사우나에서 친한 동네 아줌마들은 삼삼오오 모여앉아 수다떨기에 정신이 없다. 이날은 용돈을 벌기 위한 파출부 아르바이트를 얘기가 한창이다.


"어머, 이게 얼마 만이야, 소희 엄마, 요즘 무슨 일 있었어? 왜 이렇게 뜸했어"

"요즘 나 일 다니잖아, 한남동에 파출부 일하는데 일도 쉬엄쉬엄하니 할만해. 크게 부담도 안되고. 9시부터 6시까지 일해서 7만원 받는데 괜찮아."


둘 사이의 대화를 듣던 주호 엄마가 이내 끼어든다."아니 남편 돈 잘 벌고 애들 다 키우고 편히 살면 되지 그 나이에 무슨 파출부를 다녀. 그러다 몸 아프면 약값이 더 들어"


"뭐하러 놀아. 시간당 7000원씩 나이드신 노인들 모시는 파출부일은 할만 해. 숙식하면서 일하는 거면 힘들지만 출퇴근 하는 건 크게 부담도 안되고. 한 푼이라도 벌어야 애들한테 용돈 달라고 손 벌리는 일 없고 좋지. 요즘 이런 자리 없어서 못 구하는 걸"


"에휴, 나도 그냥 쉬느니 어디 용돈이나 벌 일자리 구해야 되는데 마땅한 게 있어야 말이지. 식당일이나 마트계산원일은 너무 고되고 힘들고 말야."


광재 엄마도 한마디 옆에서 거든다 "그러게 말야. 이 나이 먹어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아르바이트를 뛰나 싶다가도 애들한테 돈 달라는 것도 눈치 보이고 그냥 가만히 있으면 이곳 저곳 몸만 아픈 것 같고. 일하는 것이 좋긴 해도 마땅한 데가 없으니까 문제야"


갑자기 대화가 자식들의 용돈으로 말이 이어진다. "그래도 애들한테는 돈 좀 받아야 돼. 용돈 안줘도 된다고 니들 살림에나 보태라고 전에 한 마디 했더니 용돈을 이제 아예 안주더라고. 이번 명절에도 돈 한푼 안주고 그냥 갔다니까. 결국 내가 며느리 붙잡고 한마디 했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명절에는 시부모 용돈 얼마라도 주는 게 맞지 않느냐고."


자식 용돈 얘기에 옆에서 조용히 듣던 나이 지긋한 할머니가 불쑥 목소리를 높인다. "맞아요. 그렇게 하면 안된다니까요. 애들은 용돈 됐다고 하면 진짜 안주고 그냥 가고 그래요. 자꾸 달라고 하고 부모님에게 용돈은 줘야 되는 것이란 인식을 심어놔야지 안 그러면 진짜 안줘도 되는줄 알고 있다니까"


"그나마 남편 없으면 주는 돈도 줄어요. 전에는 남편이랑 나랑 쓰라고 50만원씩 주더니 남편 가고 나니 30만원만 주더라고요. 별수 없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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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대화 중에 친한 사우나멤버 아줌마가 뒤 늦게 들어온다. "다 모였네. 아이고 허리야. 요즘 왜 이렇게 몸이 쑤신지 모르겠네. 나이 드니 별 수 없어. 다들 명절 잘 지내셨어?"


대화가 한창이던 때 평소에도 말 많기로 소문난 현희 엄마가 들어오자 사우나 안은 더욱 시끌벅적해졌다. 거의 매일 사우나로 단련된 이들은 30분씩 앉아있어도 나갈 생각을 않는다. 2~3시간 땀빼기는 필수다. 땀을 빼며 수분을 보충하기 위한 커피와 매실차, 식혜 등 먹다 남은 빈컵들이 하나 가득 쌓여 있다. 이들의 수다는 오늘도 지칠줄 모르고 이어진다.


이초희 기자 cho77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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