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의 날 첫 민간인 훈장수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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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양낙규 기자]올해 국군의 날에 민간인으로는 첫 훈장 수여자가 나왔다. 주인공은 6·25전쟁 때 초등학교 여교사로 국군 최초 승리에 공헌한 故 김재옥 교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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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사단법인 한배달회 김재옥선생기념회(회장 박정학·예비역 준장)에 따르면 6·25전쟁 때 초등학교 여교사로 국군 최초 승리에 공헌한 故 김재옥 교사의 훈장 추서를 청원한 결과 국무회의에서 보국훈장 삼일장을 수여하기로 결정됐다고 밝혔다.


지난 1950년 충주시 신니면 동락초등학교에 갓 부임한 김 교사는 그해 7월 6일 북한군이 교정에 수많은 무기를 집결시키는 것을 보고 기지를 발휘, "국군이 차를 타고 다 도망갔다"고 안심시키고 나서 학교를 빠져나왔다.

김 교사는 무작정 국군을 찾아 헤매다 가엽산에 매복 중이던 국군 6사단 7연대를 만나 이같은 정세를 제보, 국군의 기습 공격으로 북한군 2천186명을 사살하고 132명을 생포하는 대승을 거두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6·25전쟁 당시 국군이 최초로 승리한 동락 전투는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7연대 전 장병을 일계급 특진시킬 정도였다.


김 교사는 그해 10월 이 부대 소대장이었던 이득주 소위와 결혼했으며 훗날 임권택 감독이 제작한 영화 '전쟁과 여교사'의 실제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김 교사는 1963년 10월 19일 새벽 강원도 인제군 모 부대 관사에서 일가족과 함께 잠을 자던 중 군 복무시절에 앙심을 품은 부대장을 죽이기로 한 고재봉이 잔인하게 휘두른 흉기에 목숨을 잃고 말았다. 고재봉이 원한을 품었던 당시 부대장은 이미 전근을 간 상태였고 새로 부임한 이득주 중령 가족이 어이없게 희생을 당했던 것이다.


김 교사가 훈장을 추서받는 데는 육군대학 시절 김 교사의 공적을 접하고 난 뒤 서훈 추서운동을 벌여온 박 회장의 역할이 컸다.


박 회장은 "임진왜란 때도 이순신 장군 혼자만 싸운 것이 아니라 부녀자들이 강강술래를 하는 등 민간인의 도움이 있었다"면서 "목숨을 걸고 산속을 헤매며 국군을 찾아 나선 김 교사가 6·25전쟁의 호국영웅 중의 영웅이었지만 그동안 정부가 훈장 한 개도 안 줘 추서를 청원하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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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봉 사건' 당시 큰 집에 머물러 유일하게 화를 면했던 아들 이 훈 씨는 훈장 추서 소식을 전해듣고 "중학교 1학년 때 부모를 잃고 세상에 혼자 남는 바람에 훈장을 신청하겠다는 생각조차 할 틈이 없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 씨는 추석 연휴인 관계로 앞당겨져 오는 26일 계룡대에서 열리는 국군의 날(10월 1일) 기념행사에 참석, 어머니의 훈장을 대신 받을 예정이다.


양낙규 기자 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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