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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정인환, '제2의 최진철'로 불릴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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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정인환, '제2의 최진철'로 불릴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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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전성호 기자]축구 좀 본다는 사람들에게 경기를 앞두고 가장 큰 재미는 역시 베스트11 예상이다. A매치가 열릴 때면 저마다 생각을 펼친다. 이동국과 박주영의 공존에 대해 얘기하고, 왼쪽 풀백을 놓고 박주호와 윤석영의 우열을 논한다. 기성용의 중원 파트너도 꼽아본다. 반면 중앙 수비수는 늘 부동이다. 이정수-곽태휘 조합이 갖는 위상이 워낙 공고하기 때문이다.

그 단단함에 균열을 일으킬만한 존재가 등장했다. 인천 유나이티드의 ‘캡틴’ 정인환이다. 일단 제공권부터 눈에 들어온다. 187cm의 장신에 서전트 점프는 1m에 달한다. 체력은 물론 몸싸움과 대인마크도 뛰어나다. K리그 7년 차로 경험 역시 갖췄다. 지도자부터 선수들까지 입을 모아 “요즘 K리그에서 가장 눈에 띄는 수비수”라 칭찬한다.
가장 주목받았던 시기는 데뷔 직후였다. 2006년 전북 현대 입단 당시였다. 팀 동료였던 최진철 강원 코치는 “내 뒤를 이을 재목”이란 찬사를 보냈다. 공개적인 후계자 지목이었다. 실제로 뛰어난 헤딩력과 정신력은 최진철의 젊은 시절을 떠오르게 했다. 홍명보 당시 A 대표팀 코치도 잠재력을 높이 샀다. A 대표팀 예비 명단과 2006 도하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이름을 올린 건 그 증거였다.

밤하늘을 삼킬듯하던 초신성은 이내 사그라졌다. 몇 차례 큰 부상을 겪은 탓도 있었지만, 근본적으론 ‘반쪽짜리 선수’의 한계에 부딪혔다. 현대 축구의 테마는 패스다. 공격수는 물론 골키퍼조차 패스 플레이의 한 줄기를 맡아야 한다. 수비수라고 위험지역에서 공을 멀리 걷어내기만 해선 안 된다. 더불어 센터백은 수비의 컨트롤 타워다. 끊임없이 동료와 소통하며 수비 라인을 가다듬어야 한다. 평소엔 과묵해도 그라운드에선 수다쟁이가 돼야 하는 이유다. 정인환은 정확히 그 반대였다.

올 시즌엔 달랐다. 무의미한 걷어내기 대신, 정확하고 효율적인 패스 플레이를 선택하는 법을 깨우쳤다. 말문도 트였다. 경기가 끝나면 목이 다 쉴 정도로 끊임없이 소리치고 얘기했다. 물론 기존 장점은 그대로였다.
자연스레 정상급 수비수로 발돋움했다. 올 시즌 K리그 라운드 베스트11에 6차례나 뽑혔다. 리그 전체에서 두 번째로 많은 횟수다. 데뷔 후 첫 올스타에도 선발됐다. 정인환의 활약 속에 인천 역시 힘을 얻었다. 한때 최하위까지 떨어졌던 부진을 딛고 누구도 생각 못한 연승행진을 내달렸다. 막판 스플릿 경쟁을 달군 주인공이었다.

이윽고 생애 첫 태극마크의 감격이 찾아왔다. 지난달 잠비아와의 평가전. 최강희 대표팀 감독은 곽태휘와 짝을 맞출 주전 센터백으로 정인환을 낙점했다. 곧바로 기대에 부응했다. A매치 데뷔전에서 풀타임을 소화하며 한국의 승리를 이끌었다. 11일 열릴 우즈베키스탄과의 월드컵 최종예선을 앞두고도 최 감독은 23인 대표팀 명단에 주저 없이 정인환의 이름을 써넣었다. 이젠 K리그를 넘어 대표팀에서도 가장 주목할 만한 수비수로 떠오른 셈이었다.

다시금 ‘제 2의 최진철’로 급부상할 남자. 더 유명해지고 바빠지기 전, 그를 만나 오랜 얘기를 나눠보고 싶었다. 대표팀 소집을 이틀 앞둔 한가한 주말, 인천 유나이티드 숙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이 남자, 알고보니 꽤 파란만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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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희 감독님, 센터백 안 필요하세요?”

대표팀 발탁을 축하한다. 요즘 물이 올랐다는 소리 자주 듣지 않나
올 시즌 초엔 너무 막막했다. 겨우내 정말 준비 많이 했었는데, 개막하고 16경기 동안 딱 한 번 이겼고 순위도 꼴찌까지 떨어졌다. 막상 부진하니 여기까지인가 싶기도 했다. 그러다 갑자기 팀이 연승 분위기를 타면서 “어, 어, 왜 이러지”라며 놀랬다.(웃음) 시너지 효과가 있었는지 나도 플레이가 점점 좋아졌다.

대표팀에 처음 뽑혔던 순간 기억나는지
잠비아 평가전 대표팀 명단이 발표되기 하루 전날이었다. 대전 시티즌과의 경기를 앞두고 몸을 풀고 있었는데, 사장님이 흥분하셔서 내게 오시더니 “너 국가대표팀 뽑혔다”라고 알려주셨다. 가슴이 막 두근거리면서 들떴다. 하지만 난 주장이다. 붕 떠 있다가 실수라도 하면 팀 전체가 흔들릴 수 있었다. 집중하겠단 생각만 했는데 그날 골까지 넣어 시즌 첫 라운드 MVP에도 뽑혔다.

처음 태극마크 유니폼 받았을 때 기분도 대단했겠다
사진 찍고 싶었다.(웃음) 경기 끝나고 바꿔 입기도 싫었다. 두 벌 지급받았는데 한 벌은 가보로 물려 줄 거다. 다른 한 벌도 주변에서 자꾸 달라고 하는데, 누구 줬다고 거짓말했다. A매치 첫 경기 유니폼인데 어떻게 주나!

최근 좋은 성적 거둘 땐 내심 대표팀 발탁도 기대하진 않았나
(손사래 치며) 전혀. 올해 초 최강희 감독님이 대표팀 맡으셨을 때 언론 통해 “감독님, 센터백 필요하지 않으세요?”라고 물은 적 있었다. 정말 100% 농담이었다. 내가 생각해도 나를 뽑을 이유가 없었다. 나 말고도 잘하는 선수가 많으니까. 그냥 장난처럼 했던 말이었는데, 정말로 그렇게 됐다.

대표팀에서 다시 만났을 때 최 감독이 뭐라고 하던가
“반갑다” 하시더니 “너 이렇게 클 줄 몰랐다”라고 농담하시더라. 또 인천에서 하던 것만큼만 하라고 하셨다. 경기 전날 수비 훈련하는데 감독님이 포백 선발을 불러주셨다. 처음에 “(곽)태휘”하셔서 속으로 ‘(김)진규형이나 (심)우연이형이 선발이겠구나’라며 고개 숙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인환이”하는데 가슴이 뭉클했다. 난 그 순간부터가 이미 잠비아전이었다. (웃음) 전 국민이 보는데 실수할 순 없었다. 인천에서 잘하던 선수가 바로 저 선수란 소리도 듣고 싶었다.

그날 풀타임은 물론이고 후반 막판엔 수비형 미드필더로까지 뛰었다
나도 놀랬다. (웃음) 정신없이 뛰긴 했는데, 그래도 어떻게 플레이해야 할 줄은 알았다. 튀려는 욕심내지 않고, 수비에서 단단한 모습만 보이자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그날 가장 호평을 받은 선수 중 하나가 됐다
이제 와 털어놓자면, ‘그런데 내가 왜 풀타임을 뛰었지?’란 생각에 경기 후 인터뷰에도 집중 못 했다. 집에 와서 인터넷 댓글 다 봤다. 안 볼 수가 없더라. 궁금하니까. 다행히 잘한다는 얘기가 많았다. ‘나한테 이런 날도 있구나’ 싶었다. 그 뒤 인천 시내를 돌아다니면 다 알아본다. “맞죠?” 하면 “맞아요”한다. 그게 너무 재밌더라. 경기 끝나고 최 감독님은 아무 말씀도 안 하셨지만, 감독님 스타일을 알고 있어서 그게 곧 칭찬인걸 알았다. 스스로도 지금에 만족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자고 다짐했다.

“와 박지성이다!!” 야망을 품게 한 올스타전

모든 일에는 계기가 있기 마련이다. 그동안 평범했던 수비수가 갑자기 두각을 드러낸 데에는 다 이유가 있지 않겠나
사실 올 시즌 초엔 정말 힘들었다. 팀이 꼴찌까지 떨어지고, 허정무 감독님도 팀을 떠나셨다. 내가 주장이어서 더 스트레스를 받았다. 몸살과 장염에 세 번씩이나 걸려 응급실에도 실려 갔었다. 경기 내용은 좋았는데도 괜스레 지거나 비겼다. 특히 전북과의 홈 경기에선 3-1로 이기다 막판에 두 골 내주고 비겼는데, 정말 ‘멘붕’이었다. 성남 원정 때도 경기 종료 직전 골 내주며 1-1로 비겼다. 정말 1승만 하면 소원이 없겠더라. 그러다 계기가 찾아왔다.

어떤 계기인가
난 동기부여가 굉장히 중요한 사람이다. “잘한다”라고 칭찬해주면 더 잘하지만, “못한다”는 소리 들으면 의욕도 자신감도 꺾이는 편이다. 작년만 해도 칭찬받는 일이 거의 없었다. 반면에 올해는 “잘했다”, “최고다”란 말 많이 들었다. 특히 (설)기현이형과 (김)남일이형의 “조만간 국대 가겠는걸?”이란 얘기는 최고였다. 팀 성적도 안 좋을 때였는데 말이다. 그러다 7월 초 K리그 올스타전이 열렸는데, 신태용 올스타팀 감독님이 나를 뽑아주셨다. 처음엔 ‘뽑혔구나…’ 정도였는데 막상 올스타전에 참가하면서 뭔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겐 큰 전환점이었다.

선수 소개 때 홍명보 감독과 함께 들어왔던 걸로 기억한다
맞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선생님이다. 내 등번호가 20번인 이유 중 하나다. 정말 영광이었다. A매치가 열리는 서울월드컵경기장이었다. 관중들도 많이 왔고, 장내 아나운서의 “홍명보, 정인환!”이란 멘트와 맞춰 선생님과 같이 입장하는데… 아, 정말 뭔가 찡하고 오싹했다. (잠시 멍한 표정을 지으며 가슴에 손을 올리더니) 지금도 그때 기분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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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올스타전은 시대를 초월한 클래스가 만난 경기였다. 뛰는 맛이 달랐을 텐데
한국 축구 넘버원 형들과 함께 한 자리 아닌가. 누구보다 (박)지성이형이 제일 신기했다. 한 번은 형이 내 앞에서 드리블하며 들어왔다. 공을 봐야 하는데 자꾸 지성이형 얼굴을 보게 되더라. 속으로 ‘와, 박지성, 와, 맨유, 와, 리버풀한테 헤딩골 막 넣는 그 형’ 하면서(웃음)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내가 박지성이랑 같이 뛰다니…”하면서 정말 신기해했다.

또 그날 굉장히 잘 뛰었었다. 동료 선수들도 전부 정인환을 칭찬했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날 진짜 이 악물고 열심히 했다. 이벤트 경기지 않나. 아무도 그렇게 안 했는데 나 혼자 몸 만든다는 생각으로 내내 K리그 경기처럼 있는 힘껏 뛰었다. 최용수 감독님이라도 안 봐드리고 몸싸움 다했다. 그날 MVP를 (이)동국이형이 받았는데, (최)효진이형이 나한테 ‘숨은 MVP’라고 했다. 올림픽 대표팀 애들도 구경 왔었는데, 나중에 문자로 “형, 뭘 그렇게 열심히 뛰어요”라고 타박 주더라.

갑자기 하나 궁금한 게 생겼다. 올스타전 때 라커룸에선 선수들끼리 무슨 대화를 나누나
보통 앞선 K리그 경기 얘기를 한다. 한참 인천이 힘든 시기여서 난 별로 할 말이 없었다. 아, 그전엔 몰랐는데 몇몇 팀에서 우리 팀 비디오를 자주 본다고 했다. 이제 막 ‘김봉길표 압박’이란 호평을 들을 때였는데, 은근히 기분 좋았다. 동국이형도 내게 와서 “너희랑 할 때가 제일 힘들었다”라고 하시더라. 그게 좀 위로해 주는 뉘앙스였는데, 그래도 기 안 죽으려고 했다. 난 인천의 주장이니까! 올스타팀 처음 모이는 날에도 다들 트레이닝복 입고 편하게 왔는데 난 정장 입고 ‘멋지게’ 들어갔다. 그래도 막상 들어가니 좀 창피하더라. (웃음) 뭐, 괜찮았다. 난 인천의 주장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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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올스타전이 선수 정인환에게 큰 동기를 부여한 건 사실인 것 같다
그저 추억거리 하나 얻은 셈 치기 싫었다. 앞으로 계속 그런 자리에서 뛰고 싶었다. 선수로서 더 성장해 다음 올스타전도 나오고, 태극 마크까지 달아보자는 생각이 처음으로 간절하게 생겼다.

상위 스플릿 진출 실패, 후회는 없다

주장이 그런 마음먹은 게 호재였던 걸까. 인천이 올스타전 이후 무섭게 치고 올라왔다. 이전 2승 9무 8패였던 팀이 갑자기 5연승 포함 9승 3무 2패를 거뒀다. 순위도 상위 스플릿 마지노선인 8위까지 치고 올라왔었다
하도 못 이기다 보니 나중엔 1승만 했으면 좋겠다 싶더라. 순위표만 봐도 8위는 꿈도 못 꿨다. 그래도 결과에 비해 내용은 정말 좋았기에 언젠간 잘 될 줄은 알았다. 팀 내에서 기현이형과 남일이형, (안)재곤이형 등 선배들이 큰 힘이 되어 줬다. 솔직히 기현이형과 남일이형은 의외였다. 자기 할 일만 할 줄 알았는데, 정말 팀에 애착이 많았다. 또 두 형은 클래스 자체가 다르지 않나. 우리가 그걸 못 따라가면 굉장히 힘들 거라 생각했다. 처음엔 우리에게 “왜 할 수 있는데 뒤에서 놀고 있냐”라며 호통도 치셨다. 그러면서도 좋은 얘기 많이 해주고, 격려도 해주면서 우리 팀 전체에 자신감과 집중력을 심어줬다. 그래도 5연승 하고 8위권까지 갈 줄은 몰랐다. (웃음)

사실 축구 기자들 사이에서도 인천의 환골탈태는 불가사의하기까지 했다
내 기준으로 얘기하자면, 상승세를 타기 전 축구가 너무 재미있었다. 훈련도 경기도 빨리 하고 싶을 정도로. 그런 즐거움이 팀 전체에 퍼졌다. 선수들 사이에 신뢰도 생겼다. 나만 해도 예전엔 미드필드에 공을 잘 안 줬다. 믿음이 없단 얘기였다. 불안하니까 자꾸 먼 쪽에 기현이형부터 찾았다. 지금은 다르다. 남일이형부터 막내 신인까지 스스럼없이 소통하면서 팀 분위기가 좋아졌고, 그런 관계가 그라운드로까지 이어졌다. 서로 믿고 볼을 주다 보니 어느새 여유가 생기고, 경기 전체가 눈에 들어오더라. 연승행진도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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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길 감독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감독님이 자율적인 태도를 좋아하신다. 그런데 또 무서울 땐 정말 무섭다. 감독님이 싫어하는 행동을 하면 엄청나게 혼내시지만, 조금이라도 변화하려는 노력을 보면 또 칭찬해주신다. 감독님이 잘 해주시니까 어린 선수들부터 열심히 했다. 눈치 보는 일 없이 솔선수범하며 축구에 집중한다.

하지만 결국 제주와의 전반기 최종전에서 비기는 바람에 9위로 떨어지며 상위 스플릿 진입에도 실패했다. 아쉬움이 클 것 같다
그날 경기 전에 다른 생각 말고 우리 꼭 이겨서 올라가자고, 후회하지 말자고 했다. 실제로 우리와 경쟁했던 대구(10위) 선수들은 서울전 지고 나서 많이 아쉬워했다는데, 우린 그렇지 않았다. 시즌 초를 생각하면 이 정도까지 온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이젠 어떻게 축구를 해야 할 지 알았다는 사실이 만족스러웠다. 물론 이제 아무리 잘해봤자 9위지만, 그것도 하위 스플릿에선 1위 아닌가. 목표 의식은 충분하다. 오히려 내년이 더 기대할 만하다.

올해 초 주장이자 수비의 리더라는 사실에 부담이 많았다고 들었다.
뒤늦은 고백이지만, 스트레스 심했다. 주장을 선수단 투표로 뽑았는데, 기현이형과 남일이형이 후보를 고사하면서 내가 주장이 됐다. 부담 장난 아니었다. 처음엔 거의 형들 보좌관처럼 움직였다. (웃음) 그래도 형들이 옆에서 많이 도와줘서 지금은 편하다. 또 중앙수비수는 말을 많이 해야 한다. 수비 라인과 전체 밸런스를 유지하려면 동료들에 끊임없이 얘기를 주고받아야 한다. 그런데 예전엔 그걸 잘 몰랐다. 감독님이나 선배들이 “말 좀 하라”라고 해도 안 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지가 않으니까. 내가 고집이 좀 센 편이다. 그런데 이기고 싶고, 잘하고 싶은 욕망이 커지면서 자연스레 말문이 트였다. 지금은 경기 끝나면 목이 완전히 쉬어 버릴 정도다. 그게 내 플레이뿐 아니라 팀 수비 전체를 향상시킨 힘 아닐까.

소년, 태권도복 대신 축구화를 들다

어린 시절 얘기 좀 해보자. 축구를 꽤 늦게 시작했다고 들었다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축구부에 들어갔다. 그 전엔 태권도 선수였다. 유치원 때부터 배워 실력이 꽤 좋았다. 부모님도 태권도를 좋아하셨다. 초등학교 4학년 때쯤부터 축구부에 들어가겠다고 졸랐지만 요지부동이셨다. 나중에 들은 얘기인데, 내가 외아들인데다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셔서 날 돌봐줄 사람이 없었다. 태권도장에 보내면 점심도 주고, 밤 9시까지 운동도 시켜주고, 집에도 데려다 줬기에 태권도 시켰다고 하시더라. (웃음) 아마 축구엔 재능이 없다고 여기셨던 것도 같다. 그렇게 5년을 졸랐지만 허사였다. 설상가상 중학교도 축구부가 없는 학교로 진학했다.

부모님 마음은 어떻게 돌렸나
중2 때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가출했다. 한 일주일 정도? 멀리 가진 않았다. 바로 옆에 사는 친구 집에 갔었다. 부모님도 가출한 애가 옆집에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하셨는지 날 못 찾으시더라. (웃음) 그리고 집에 들어갔는데 오, 반응이 달랐다. 축구부에 들어가라고 허락해주셨다. 바로 옆 태성중에 축구부가 있었는데, 문제는 같은 지역 내에선 전학이 안 된다는 거였다. 결국 아버지가 시청에서 무릎 꿇고 빌어 간신히 전학을 갔다.

그런데 원래 축구 선수도 아니지 않았나. 전학 간다고 축구부에서 다 받아주진 않았을 텐데
감독님이 한 달 시간 줄 테니, 이쪽 골대에서 반대편 골대까지 트래핑으로 볼 안 떨어뜨리고 다녀오면 받아주겠다고 했다. 축구부 애들도 잘 못하는 건데. 근데 또 어떻게 성공했다. 신체조건은 좋았다. 중2 때 이미 178cm였으니까. 그렇게 해서 마침내 축구부에 들어갔다. 그런데 너무 힘들더라. 체력이나 기술도 문제였지만, 그때만 해도 구타가 꽤 심했다. 일주일 만에 축구 못하겠다고 어머니께 말했다. 울면서 도저히 못하겠다고 징징댔다. (웃음)

뭔가 어이없는 반전이다. 그렇게 힘들게 시작한 축구 아니었나. 의지가 센 편은 아닌 건가
그런가 보다. (웃음) 아무튼 어머니가 “네가 선택한 길이니까 알아서 해라. 넌 내놓은 자식이다”라고 강하게 말씀하셨는데, 그래도 못하겠다고 했다. 공부하면 진짜 잘할 것 같다고. 축구가 그렇게 어려운 줄 몰랐다. 죽었다 깨나도 못하겠더라.

결국 축구는 계속한 건가
소집이 9시인데 8시 30분까지 집에 있었다. 못하겠다고. 결국 아버지께 한 대 맞고 그냥 갔다. (폭소) 하지만 진짜 무서웠다. 자는 것도 무서웠다. 내일 아침 축구해야 하니까. 그러니 실력이 늘 리가 있었겠나. 늘 후보로만 지냈다. 개인운동만 미친 듯이 했다. 그러다 중3 때 처음 게임에 뛰었는데, 꽤 멋진 중거리 슈팅으로 골을 넣었다. 사실 공격수 주려고 찬 건데 발목 조절이 안돼서 강하게 찼고, 그게 또 공격수에 가린 덕에 골키퍼 시야를 벗어나 골문 안으로 들어갔다. 완벽한 운이었는데, 밖에서 보던 감독님과 체육 선생님은 “쟤 중거리슛 좋네”, “잘한다”라고 해주셨다. 처음 받은 칭찬에 자신감까지 생겼다.(웃음) 그렇지만 여전히 두각을 드러내는 선수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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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무 감독과의 인연

좀 이상하다. 졸업 후 용인축구센터 산하 백암고로 진학하지 않았나. 당시 최고의 유소년 선수들만 모이던 곳이었다. 경기도 제대로 못 뛰던 선수가 어떻게 용인축구센터에 갔나
중3 여름에 태성고 진학이 결정됐었다. 문제는 잘하는 친구들에 딸려가는 케이스였다는 점이었다. 내가 의지는 약했을지 몰라도 자존심은 엄청 셌다. 나도 잘할 수 있는데 그렇게 되니까 열 받더라. 때마침 허정무 감독님이 ‘한국의 클레르퐁텐’이라며 용인축구센터를 여셨다. 25명 뽑는데 몇천 명이 몰린다고 들었다. 밑져야 본전이란 생각에 몰래 입단 테스트 원서를 낸 뒤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테스트 보지 말라고 하시더라. 그냥 태성고 가서 대학이나 어떻게 졸업해 체육 교사하라고 하셨다. 태권도할 땐 늘 “오~”하면서 칭찬해주셨는데… 그만큼 축구 선수로서 내 실력을 믿지 않으셨던 거다.

흥미진진해진다. 테스트는 어떻게 치렀나
시험이 3차까지 있었다. 1차는 신체조건 덕분에 붙었다. 2차 땐 게임을 뛰었는데, 죽어라고 헤딩만 따냈다. 내가 태권도를 해서 점프력이 좋다. 어렸을 땐 이단 점프한다는 얘기도 들었고 농구할 땐 덩크도 했으니까. 결국 3차 테스트까지 갔는데, 경기 뛰기 전 갑자기 옆에서 지켜보시던 허정무 감독님이 날 부르셨다. “키가 얼마니”라고 물으셨다. 그때 내가 182cm로 제일 컸다. 경기 들어가서 또 죽어라 헤딩만 했다. 결과를 기다리는데 일주일이 일 년 같았다. 다른 선수에 딸려가긴 죽기보다 싫었다.

결과는?
합격했다는 연락이 왔다. 다만 장학생은 아니어서 회비가 비싸다고 했다. 태성고보다 5배 정도 됐다. 그래서인지 어머니도 자꾸 태성고로 가라고 날 유인하셨다. 붙고도 못 가는 상황이 되자 우울해하고 있는데, 박광현 백암고 감독님에게서 날 부르셨다. 장학금을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이제 됐다 싶은데 그래도 부모님은 반대하셨다. 결국 허정무 감독님까지 직접 부모님을 만나셨는데, 그제야 마음을 돌리시더라. 스타를 만나니 뭉클하셨나 보다. (웃음) 곧바로 “알겠다. 감독님만 믿고 맡기겠다. 때려도 좋다”라며 허락해 주셨다. 문제는 내가 태성고로 안 간다고 하자, 중학교 감독님이 불같이 화를 내셨다. 결국 축구부에서 쫓겨나 반년 가량을 일반 학생으로 지내며 혼자 운동했다.

무슨 ‘슬램덩크’의 강백호를 보는 것 같다. 중 3 때까지 제대로 뛴 경기도 거의 없었다는 얘기 아닌가. 나중에 청소년 대표에도 뽑힌 걸로 아는데
아직 안 끝났다. 고등학교 들어가자마자 또 고비가 왔다. 용인축구센터 신입생 25명이 중국으로 한 달짜리 전지훈련을 갔다. 첫날 다렌 스더 유소년 팀과 경기를 했는데 나 때문에 7골을 먹었다. 다른 애들은 전부 전국에서 난다 긴다 하는 선수들이었고, 난 순전히 신체조건 때문에 뛰었다. 그런데 7골을 먹었으니…. 또 ‘멘붕’이 왔다. 경기 끝나고 모인 자리에서 허 감독님이 내게 화를 내셨다. “넌 축구에 소질 없다. 책임감도 없고 동료들에 피해만 준다.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다른 길 찾아봐라. 한국으로 돌아가라”라고. 아예 싹을 자르는 말투로 엄청나게 무섭게 말씀하셨다. 아직 첫날도 안 지났는데 돌아가라니. 들으면서 정말 많이 울었다.

그래서 결국 돌아왔나
아니다. 비행기 티켓이 없어서 결국 한 달 내내 남았다. (웃음) 전지훈련 내내 울었다. 처음엔 자존심도 완전히 무너져서 축구 안 할 생각이었다. (Q: 또?) 그런데 어머니가 이미 회비도 냈으니 1년만 해보라고 했다. 허 감독님은 날 없는 선수 취급하셨다. 전지훈련 내내, 그 이후로도 1년가량 그랬다. 결국 개인 운동만 열심히 했다. 남들 안 하는 새벽 운동이랑 저녁 운동도 다 했다.

뭔가 반전이 기대된다
하루는 새벽에 줄넘기를 하는데, 허 감독님이 지나가다 그 모습을 발견하셨다. 내게 “인환이구나. 열심히 하네. 계속 해라”라고만 말씀하셨다. 그리고 얼마 뒤 연습 경기에서 후반 10분 남겨놓고 처음 교체 투입됐는데, 꽤 잘했다. 이번에도 허 감독님이 선수들 다 모아놓은 상태에서 내게 “너 쥐약 먹었냐”라고 하셨다. 처음엔 ‘또 죽었구나’ 싶었는데, 감독님 특유의 칭찬이었다. 그 뒤로 계속 기회가 주어졌다. 대회 몇 경기에 뛰면서 어느덧 주전이 됐다.

와, 정말 감격스러웠겠다
얼마 뒤 더 큰일이 있었다. 하루는 허 감독님이 날 부르시더니 “너 17세 대표됐다. 내 추천으로 뽑힌 거니 가서 똑바로 하고 와라”라고 해주셨다. 1년 만에 인정받은 셈이었다. 지나고 생각해보니 감독님은 내가 더 열심히 하길 원해서 나름의 충격 요법을 주셨던 것 같다. 기쁜 마음에 어머니께 말씀드렸더니 도리어 “네가 무슨 국가대표냐”라고 안 믿으시더라. 결국 파주NFC도 혼자 갔을 정도다. (웃음)

이후로 기량이 급성장한 건가
그렇다. 그 때 17세 이하 대표팀엔 정말 쟁쟁한 선수가 많았지만, 헤딩 하나만큼은 내가 월등했다. 키도 크고 점프도 높으니까. 상대팀에 장신 공격수가 있으면 난 무조건 투입됐다. 감독님은 딴 거 하지 말고 헤딩만 따내라고 했다. 한마디로 제공권용이었다. 당시 대표팀 주전이 이강진이었는데, 그때 이미 수원 삼성에 입단했던 터라 소규모 국제 대회엔 강진이 대신 내가 빠지고 않고 뛰었다. 덕분에 실력이 빨리 늘었다. 결국 20세 이하 청소년 대표팀에도 발탁됐고, 고3 때는 수비수 랭킹 1위로 꼽혔다. 전 구단이 나를 원한다는 얘기도 있었다. 재밌는 건 그때까지도 부모님은 날 인정 안 하셨다는 거다. 경기장에도 거의 안 오셨다. 다른 선수 부모님들이 내가 고아인 줄 알 지경이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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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에서 탄 롤러코스터

이후 연세대로 진학해 1학년만 마치고 전북에 입단했다. 당시 많은 기대를 받았다. A대표팀과 아시안게임 대표팀에도 뽑혔고, 최진철은 직접 후계자로 지목하기도 했다. 호사다마랄까. 그때 부상을 당하며 슬럼프가 찾아왔다
A대표팀 소집을 며칠 앞둔 2군 경기였다. 헤딩 경합 중에 상대 선수 머리에 얼굴을 부딪치며 광대뼈가 함몰됐다. 힘줄이 다 끊어지고 턱이 너덜너덜 거릴 정도로 큰 부상이었다. 지금도 오른쪽 얼굴엔 감각이 없다. 그래서 웃을 때 ‘썩소’가 나오기 쉬워 지금도 자기 전에 침대에 누워 웃는 연습을 한다. (웃음) 그렇게 다치고 나니까 무서워서 축구를 못하겠더라. (Q: 또?) 진짜 심각했다. 헤딩이 내 장점인데, 그 자체가 겁나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부상 때문에 대표팀 소집도 취소됐다.

극복의 계기가 따로 있었나
홍명보 선생님이다. 당시 대표팀 코치셨는데, 나를 정말 많이 아끼고 좋아해 주셨다. ‘코끼리’란 별명을 지어주시기도 했다. 하루는 축구 못하겠다던 내게 전화하셔서 “네 실력이 아깝지 않냐. 곧 아시안게임이다. 너는 몸이 만들어지지 않아도 내가 데려간다. 꼭 축구해야한다”라며 설득하셨다. 가면 쓰고라도 오라고, 그러면 베어벡 감독에게 어필할 거라고 하셨다. 선생님 덕분에 힘을 얻어 100만 원 들여 마스크도 샀는데 엄청 불편하더라. (웃음) 결국 아시안게임 앞두고 열린 한일전에 뛸 수 있었다. 당시 일본에 히라야마란 장신 공격수를 내가 상대했다. 경기를 잘 치른 덕에 아시안게임 대표팀에도 들었다. 아마 올스타전 때 더 뭉클했던 이유도 선생님과 함께 입장해서였던 것 같다. 그날 내게 “야, 코끼리, 너 요즘 골도 넣더라? 네가 골을 넣어? 와~정인환, 와~”라며 놀리셨다. 그게 그렇게 감사하더라. 참 정이 많으신 분이다.

그러다 이듬해 전남으로 트레이드가 됐다
사실 전북에 애착이 많았다. 이 팀에서 은퇴하겠다는 생각마저 했으니까. 최강희 감독님도 부상에서 회복한 날 많이 아끼고 챙겨주셨다. 2007 시즌 마치고 휴가 떠날 준비하는데, 감독님이 부르시더라. 평소에도 자주 부르셔서 이번에도 조언해 주시려나 했다. 그런데 대뜸 “미안하다. 난 너와 함께하고 싶은데, 허정무 감독님이 워낙 강하게 원하셔서 전남으로 트레이드하게 됐다”라고 말씀하셨다. 어느 정도 박탈감이 있었지만, 허 감독님만 보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허 감독이 덜컥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돼버렸다
참 꼬인다 싶었다. 감독님도 미안해하셨지만…고등학교 때 키워주신 거 믿고 이적했는데, 대표팀으로 가시니 좀 힘들더라. 난 이제 어쩌나 싶었다. 그래서 전남 1년 차엔 슬럼프도 왔고, 곧이어 피로골절까지 왔다. 이후 전남에서 좀 자리를 잡아간다 싶던 2010년 여름에 허 감독님이 다시 전화가 오셨다. 인천 감독 부임 직후였다. “너 인천 올 거니까 그런 줄 알아라”라고 하셨다. 처음엔 또 이적해서 잘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이내 기쁜 마음으로 인천에 갔다 된통 혼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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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이 났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인천의 속사정을 잘 몰랐다. 그때 내 트레이드 대상이 (안)재준이형이었다. 인천의 레전드였던 임중용 코치님의 후계자로 꼽히며 인천팬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다. 등번호도 임 코치님 등번호였던 20번을 받았다. (정)혁이가 내게 “너 그 번호 달면 질타 많을 거야”라고 했다. 아무 생각 없이 “관심 좀 받지 뭐”했는데, 워…장난이 아니었다. 나를 보는 인천 팬들 모두 ‘쟤가 왜 20번을 달고 있냐’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적 초에 좀 부진한 탓에 욕도 엄청 많이 먹어 위축됐다. 감독님과 서포터즈 만남 때는 “왜 안재준을 내주고 정인환 따위를 데려왔냐”는 말까지 나왔다더라. 솔직히 자존심 많이 상했다. ‘내가 더 잘할 수 있는데’란 생각에 죽어라 뛰었지만 잘 안됐다. 팬들에게 잘한다는 소리 듣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요즘엔 그런 생각 안 하고 축구가 좋아서 한다. 그러다 보니 이젠 팬들도 저절로 좋아해 주시더라. 얼마 전 인천의 레전드로 남아달라는 얘기 들을 땐 정말 짜릿했다.

정인환, 제2의 최진철을 꿈꾸다

얘기를 듣다 보니 지도자 운이 좋은 선수였던 것 같다. 허정무, 최강희, 홍명보 등 좋은 감독을 많이 만났다
그 세분이 내게 제일 큰 영향을 주셨던 지도자 분들이시다. 생각해보면 난 항상 그분들 기대에 못 미쳤다. 그 중에서 최 감독님의 기대가 제일 컸다. 최진철 후계자로 키우겠다고 직접 얘기해주셨을 정도였다. 이번에 대표팀 다시 뽑힌 뒤 허 감독님께도 전화 드렸는데, 감독님이 갑자기 “내가 그동안 너한테 무섭게 한 건 너 잘되라고 한 거였다. 너, 더 잘할 수 있는 선수다. 이번에 들어가면 다신 대표팀 나오지 마라”라고 말씀하시는 게 아닌가. 어린 시절부터의 기억이 필름처럼 지나가며 가슴이 뭉클해졌다. (Q: 축구 그만두고 싶었던 만큼 마음도 자주 뭉클해하는 것 아니냐) 하하, 그런가. 생각해보니 감독님은 정말 기대가 없는 선수에겐 아예 무관심하셨으니, 참 감사했다. 그래도 후배들 다 있는데 혼나는 건 좀 싫었던 것 같다. (웃음) 최 감독님은 무표정하시면서, 안 그럴 것처럼 하시면서 경기는 내보내신다. 신뢰를 주시는 타입이다. 홍 감독님은 동기 부여를 잘해주시는 스타일이고.

‘최진철 후계자’란 말이 나와서 묻는 얘기다. 사실 2002 한일월드컵을 본 세대에서 수비수는 세 가지 타입이었다. 수비의 리더이자 리베로 홍명보, 파이팅 넘치는 김태영, 제공권과 꾸준함을 갖춘 최진철 같은 유형으로 크게 나뉘었다. 생각해보니 정인환은 확실히 그 중 최진철을 많이 닮은 것 같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제2의 최진철’이란 기대를 받았을 때 정말 감사했다. 수비수로서 내 롤모델은 홍명보-최진철-곽태휘다. 홍명보 선생님은 모든 것을 닮고 싶다. (곽)태휘형은 중앙대 시절부터 우상이었다. 스타가 된 뒤에도 늘 한결같다. 무뚝뚝해 보이지만 새카만 후배들에게도 따뜻한 조언을 많이 해주신다. 대표팀에서도 꼭 같이 뛰어보고 싶었는데, 잠비아전에서 그 소원을 이뤘다. 진철이형은…

잠깐, 형이라고 하나? 홍 감독이랑 나이 차도 얼마 안 나는데
신인 시절 호칭을 ‘형’이라고 해버렸다. 바꾸기엔 이미 너무 멀리 왔다. 사실 부를 때 ‘진철이여영’하면서 좀 뭉뚱그려 부른다(웃음) 진철이형이 27살에 A매치에 데뷔했는데, 나도 27살이다. 형처럼 오랫동안 국가대표로 뛰고 싶다.

실제로 이젠 이정수-곽태휘의 기존 주전들에 도전하는 입장이 됐다
아까도 말했지만 난 늘 기대에 못 미치던 선수였다. 이젠 다르다. 한 때 헤딩만 잘하면 국가대표가 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수비수도 위치선정과 패싱력이 중요하다. 내가 부족했던 부분인데, 올 시즌 김봉길 감독님의 가르침 덕분에 많이 향상됐다. 욕심을 부리고 싶다.

올스타전 때는 박지성을 보고 설렜는데, 이번 대표팀에선 누가 제일 보고 싶나
음…(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청용(볼턴)이다. 만나면 신기할 것 같다. 지난 잠비아전 때 등번호 17번을 달았다. 남는 번호가 그것뿐이었는데, 이번엔 청용이형에게 돌려줘야 할 것 같다.

청용이형? 이청용은 두 살이나 어리다
축구 잘하고 스타면 다 형이다. (폭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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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 하나 묻자. 요즘도 별명이 콤파니인가?
아악, 그 얘긴 또 왜 꺼내나. 팀에서 전준형이랑 친한데 서로 얼굴 가지고 놀린다. 올해 초에 내가 뭔가 좀 험악한 인상을 찾다가 레스콧이라고 한번 놀렸는데 주변에서 다 웃었다. 더 이상은 없다고 의기양양해하고 있는데, 갑자기 준형이가 “그럼 넌 콤파니”라고 해서 더 빵 터졌다. 완벽한 패배였다. 요즘 별명은 ‘정스타’, ‘국대’다. 남일이형이랑 재곤이형이 그렇게 부른다. 기현이형은 “오, 국가대표. 어깨 좀 내려라”라며 놀린다. 그래서 “올릴 수 있을 때 올릴게요”라고 받아쳤다. (웃음) 형들이 인천 대표해서 나가는 거라고 좋아해 준다. 나도 팀이 잘해서 대표팀에 들어온 거라 생각한다.

한참 얘기 나누다 보니 벌써 두 시간이나 지났다. 이렇게 긴 인터뷰 재밌게 하긴 또 처음이다. 정스타 곧 대표팀 들어가셔야 하는데 시간 너무 뺏어서 미안하다. 마지막 질문은 좀 식상하게 던진다. 축구선수로서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정스타라고 부르지 마라. 민망하다. 인천에서만 스타다. 아직 전국망이 안 터진다.(웃음) 꿈은 크게 가지려고 한다. 일단 2014 브라질월드컵 출전이다. 진철이형도 36살에 2006 독일월드컵도 나가지 않았나. 나도 2018년 월드컵까지 뛸 수 있을 만큼 오래 선수 생활 잘하고 싶다. 축구할 때가 제일 좋은 거다.




전성호 기자 spree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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