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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갚는 사람만 바보?···대출자들이 드러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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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최일권 기자] 금융소비자들의 도덕적 해이는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돈에 관한한 '소비자는 약자, 정부와 금융기관은 강자'라는 인식 때문이다. '빌린 돈은 누군가 해결해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도 한 몫하고 있다.

'은행이 대신 갚아야 한다'는 차주(借主)들의 집단대출 소송은 이 같은 견해를 대변하는 대표 사례다. '집값이 떨어져 손해를 입은 것은 예측을 해야 할 금융기관의 오판에 따른 것'이라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자기 책임 하에 투자하고, 이익이 나든 손실이 나든 투자에 대한 책임도 스스로 져야 하는 게 시장경제의 원칙이다. 최근 금융소비자들의 행태엔 이 같은 원칙을 훼손하는 주장이나 행동이 종종 엿보인다.

금융당국 고위관계자는 잇달아 제기되고 있는 집단대출 소송과 관련해 "떨어진 집값을 은행이 보전해달라는 얘긴데, 반대로 집값이 오르면 (소송제기자들이) 이익분 만큼 내놓을 수 있겠냐"며 "시장경제의 근간을 흔드는 주장"이라고 꼬집었다.

소비자가 패소한 건에 대해서도 포기하지 않고 민원을 넣거나 무조건 이자를 감면해달라며 떼를 쓰는 사례도 심심찮게 나타나고 있다. 채권 추심을 고의로 피하기 위해 이를 중단해달라는 민원도 제기되고 있다.
보험료 납부 후 일정 기간이 지나기 전 해지할 경우 전액 환급이 어렵다. 사업비 등으로 보험료 가운데 일부가 비용으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최근의 보험 민원 가운데는 중도해지를 하더라도 보험료를 모두 돌려달라는 민원이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문제는 금융당국도 이같은 모럴 해저드 확산에 일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 정책의 일관성이 없다보니 '떼를 쓰면 통한다'는 소비자들의 인식을 자극한 것이다.

특히 서민대출에서 이 같은 현상이 두드러진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정부에서 돈 준다는데 왜 안주냐'는 식의 민원전화가 걸려와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면서 "일선 금융점포에서도 이 같은 내용의 민원이 들어오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지난달 금융위가 햇살론의 정부보증비율을 85%에서 95%로 상향 조정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금융위는 대출기관의 연체 부담을 줄여 대출을 활성화한다는 취지에서 결정한 것인데, 채무자 뿐 아니라 금융기관의 모럴해저드까지 오히려 부추겼다. 연체발생시 정부가 95%를 보증하는 만큼 금융기관 입장에서는 추심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고 채무자 역시 부담이 덜하니 대출 상환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고 연체율을 낮추기 위해 서민금융 대출심사를 강화하기도 쉽지 않다. 햇살론이 서민을 위한 상품인 만큼 대출 규제를 강화할 경우 당초 취지가 무색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기관의 신뢰 추락 역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양도성예금(CD)금리 조작 의혹, 대출서류 조작, 대출금리 차별 등의 논란이 금융소비자들을 분노케 만들었다. 소위 '약탈적 금리'라는 말이 나온 배경이다.

금융권이 비리 횡령사고도 끊이지 않고 있다.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최근 5년간 금융회사별 사고액은 은행권이 3579억원으로 가장 많고, 비은행 1920억원, 증권 896억원, 보험 264억원 순이다. 이 기간 비리에 연루돼 면직당한 금융권 임직원만 469명이다. 매년 100여명에 가까운 임직원이 퇴출당한 셈이다.

특히 은행 등 금융기관이 수익만 추구하면서 저신용 서민들을 외면한 점이 문제를 악화시켰다. 급전이 필요한 저신용층은 '살인금리'를 무는 사채시장에까지 손을 벌려 금융시장 전체의 리스크를 키웠다는 것이다.

학계에서는 모럴해저드 확산을 막기 위해 제도의 정교함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재정이 필요한 것은 인정하지만 적용대상을 확실히 구분해 '부채 탕감'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을 없애는 게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라는 것이다.

이재연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모럴해저드 발생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면서 "'빚을 갚는 사람만 바보다'라는 인식을 막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일권 기자 ig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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