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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뮤지션을 담은 영화, 조지 해리슨 VS 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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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조지 해리슨', 케빈 맥도널드 감독 '말리' 잇달아 개봉

영화 '조지 해리슨'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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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말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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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20세기 최고의 뮤지션은 단연 '비틀즈'다. 영국 리버풀의 아이돌 밴드로 시작해 전 세계를 휩쓸었던 비틀즈는 60년대를 관통하는 하나의 현상이자 아이콘이었다. 오죽하면 비틀즈가 미국 팝 시장을 제패한 것에 대한 충격으로 '브리티시 인베이전(British invasion)'이란 말이 생겨났을까. 후대의 뮤지션들은 "대중음악이 할 수 있는 모든 시도는 이미 비틀즈가 해버렸다"고 지금까지 불평할 지경이다. 우리가 익히 들어 아는 'Yesterday'나 'Let it be'는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

그렇다고 그 시대에 '비틀즈'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비틀즈와는 다른 장르와 색깔을 가진 '밥 말리'도 동시대의 인물이다. 1962년 해방의 땅 자메이카에서 레게음악은 자유와 평화를 갈구하는 상징이었다. 밥 말리는 이런 레게의 전설로 불린다. 굴곡이 많았던 개인사는 둘째 치고, 그는 독립 이후 심각한 좌우 대립의 상황에서 자메이카 평화의 중재자로 나선다. 생명의 위협을 받은 것도 여러 번이다. 천연덕스럽게 흥겨우면서도 그의 음악이 메시지를 잃지 않았던 건 이 때문이다. 특정 지역의 민속에 불과했던 레게는 밥 말리를 통해 팝의 한 장르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2012년이 됐다. 비틀즈의 멤버 절반은 이 세상에 없고, 밥 말리가 세상을 떠난 지도 30년이 넘은 지금, 두 편의 다큐영화가 우리 곁을 동시에 찾아왔다. 하나는 비틀즈의 기타리스트 '조지 해리슨'을 다룬 동명의 작품이고, 또 하나는 예상대로 '말리'다. '조지 해리슨'은 우리가 비틀즈에 대해 안다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전혀 몰랐던 기타리스트이자 작곡가 '조지 해리슨'에 대한 장장 3시간30분에 걸친 기록이다. '말리'는 뮤지션으로서의 밥 말리 외에도 '인간' 밥 말리를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확인한다.

◆ '조지 해리슨' 물질 세계에서의 삶

"그는 휴머니즘, 위트, 현명함, 숭고함, 그리고 인간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한 거인이었다."(밥 딜런)
"'Something'은 지금가지 쓰여진 역사상 최고의 연가이다. 모든 면에서 아름다움의 극치를 들려준다."(엘튼 존)
음악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세기의 밴드 '비틀즈'의 멤버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당신이 조지 해리슨이라면 자부심을 가질 새도 없이 그보다 더한 열패감에 시달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언론과 대중의 관심은 언제나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에게 쏟아졌다. 실제로 이 둘의 재능은 무수한 신화를 만들어냈다. 묵묵히 뒤에서 기타를 치고, 화음을 넣던 조지 해리슨은 어느 순간부터 직접 곡을 만들기 시작한다. 그러나 레논-매카트니의 틈바구니에서 자신의 곡 하나 앨범에 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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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조지 해리슨'이 비틀즈로 활동하던 10년간 그가 느꼈던 중압감, 갈등, 분노, 그리고 끊이지 않고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고자 했던 노력들을 빼곡히 담아낸다. 중간자적 입장에서 어른스럽게 밴드의 중심 추 역할을 했지만, 격동의 시기 60년대를 살아가는 여타 젊은이들처럼 마약과 섹스에 탐닉했던 극단적인 면모도 담담하게 풀어낸다.

그러나 '조지 해리슨'의 진짜 시작은 비틀즈 이후부터다. 솔로로 홀로서기를 하면서 그동안 빛을 보지 못했던 작곡 실력도 이때 드러난다. 3장의 앨범으로 구성된 'All things must pass'가 그 증거다. 인도 전통악기 시타르 연주자 라비 샹카를 만나 인도 음악과 철학에도 빠져드는 등 내적으로는 영혼의 자유를 끊임없이 추구했다.

'조지 해리슨'의 빛나는 순간들을 영상으로 담은 감독은 바로 '마틴 스콜세지'다. 이전에도 그는 '비틀즈가 세상을 바꿨다'며 비틀즈에 대한 애정을 공공연히 드러냈다. 마틴 스콜세지가 멤버 중에서도 특히 조지 해리슨을 선택한 까닭은 그의 정신적 가치관에 깊이 공감해서다. 그의 인기에 대한 고뇌, 예술에 대한 진실성, 마약에 중독됐다가 이를 극복하며 영적인 성찰을 해나간 모든 과정들이 이 노장의 감독뿐만 아니라 관객들에게도 잔잔한 울림을 준다.

◆ '말리' "나의 음악은 울음으로 시작되었다"

"아버지는 한결같은 분이었다. 고향인 트렌치타운에 가는 걸 좋아했다. 사람을 못 믿는 행동이라며, 차 문도 잠그지 않았다."(지기 말리, 뮤지션이자 '밥 말리'의 아들)

1945년 자메이카 출신인 밥 말리는 고작 36세의 나이에 요절했다. 이 짧은 인생에 생명의 위협을 받은 것 만해도 여러 번이다. '불꽃같은 삶'이라는 수식어가 과장이 아니다. 1976년 자메이카 총선을 앞두고 인민국가당을 지지하는 콘서트를 준비하던 중 총기 테러를 당한 게 그 첫 번째이다. 이때 그를 비롯해 아내와 매니저도 크게 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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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2년간 영국 망명생활을 마치고 다시 자메이카로 돌아와 평화콘서트를 열었다. 극한의 내전 상황에서 자메이카 수상과 반민 지도자를 무대로 불러내 손을 맞잡게 한 것은 그가 아니면 하기 힘든 일이었다. 1980년 짐바브웨 독립 기념 공연에서는 누군가 던진 최루탄때문에 다른 뮤지션과 관객들이 자리를 떠난 와중에도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노래를 불렀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의 음악이 곧 자메이카"였으며 "그는 영웅이었다"고 회상한다.

그러나 케빈 맥도널드 감독은 밥 말리를 전설의 인물로만 그리지는 않는다. 그의 가족과 친구 등 주변인물 60명의 인터뷰를 통해 재구성된 말리는 인간적이고 소탈하며, 그의 아내에게는 '골칫거리 남편'이었다. 밥 말리가 7명의 여자 사이에서 11명의 자녀를 둘 정도로 화려한 여성편력을 자랑했다는 사실은 영화가 아니고서는 알기 힘든 내용이다. 세계적인 뮤지션이 되기 전 빈민가 청년들과 그룹 '웨일러스'를 결성했던 이야기도 새롭다. '웨일러스'의 뜻은 '울부짖는 사람들'로, 이들의 노래에는 사회에 대한 분노와 저항의 메시지가 가득하다.

영화는 그의 대표곡 'No woman, No cry'를 생생하게 라이브로 들려줄 뿐만 아니라 그가 남긴 무수한 메시지도 되새김질하게 한다. "내 삶의 의미는 타인과 함께 하는 데 있어요. 사랑과 화합이 중요하죠. 부자인가요? 많은 걸 소유했나요? 많이 가지면 부자인가요? 나는 그런 부를 원하지 않아요. 나의 부는 인생이죠."



조민서 기자 sum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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