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대공황 당시 세계 경제를 구한 것은 국가다. 대공황으로 위기를 맞은 세계 경제는 전쟁과 각국의 경기부양책에 의해 구원 받을 수 있었다. 당시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1883~1946)는 불황에 빠진 각국 정부가 적극 개입해 경제 수요를 만들어내는 것이 해법이라고 주장했다. 그로부터 80년 뒤인 지금 세계는 대공황에 비견되는 또 다른 위기를 맞고 있다.
위기의 시발점은 미국이었다. 2000년대 초반 미국은 닷컴 버블로 불리는 정보통신(IT) 산업의 붕괴 후 정부가 경기부양 차원에서 금리를 인하했다. 라구람 라잔 시카고 대학 교수는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기업들이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줄 것을 기대했지만 금리 인하에 적극적으로 반응한 쪽은 일반 소비자였다"며 "소비자들이 저리로 돈을 빌려 주택 구매에 나서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주택 가격이 상승하고 주택 구매자들은 가격이 오른만큼 추가로 대출 받아 흥청망청 써댔다.
미 소비자에게 돈을 댄 자금줄은 중국ㆍ사우디아라비아ㆍ독일 등이다. 대미 무역에서 막대한 흑자를 거둔 나라들이었다. 미 금융기관은 이들 국가로부터 자금을 끌어모아 이를 다시 미 소비자들에게 공급했다.
신용도가 낮은 저소득층까지 마구 대출해준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는 대출금을 받은 일반 시민은 물론 미 금융시장에도 큰 충격으로 다가갔다. 급기야 대표적인 미 투자은행 리먼 브라더스가 2008년 9월 15일 파산하면서 위기는 세계로 확대됐다. 각국은 경기침체를 막는답시고 허겁지겁 경기부양에 나섰다. 금리를 유례 없는 수준으로 낮추고 채권을 매입하는 등 시장에 자금을 공급했다. 재정 집행을 앞당기고 추가 예산을 편성했으며 적자 재정으로 유효 수요를 창출하려 했다. 미국의 경우 2007년 GDP 대비 2.7%였던 재정적자는 2011년 7.5% 로 확대됐다.
부채에 의지하는 성장 방식은 미국만의 일이 아니다. 이는 유럽도 마찬가지다. 다만 미국이 민간 부문 대출로, 유럽은 정부 지출 증대로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유지하려 들었다는 데 차이가 있다. 이들 나라는 일단 경제가 성장하면 나중에 부채를 갚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부채에 의존한 경제성장 정책을 택했다.
그러나 경제는 생산적으로 발전하기보다 부동산 같은 자산가치 가격 인상만 부채질했다. 게다가 서브프라임 사태와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을 계기로 세계 무역ㆍ금융의 중심지인 미국이 무너지면서 부채에 의존해온 다른 경제구성체들 역시 '진실의 순간'에 직면하게 됐다. 그 동안의 경제성장과 번영이 부채 위에 쌓여져 있었음이 드러난 것이다.
나주석 기자 gongg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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