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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4대강 법정서 낮잠자던 공정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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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박연미 기자] "매일 적장의 목을 베는 심정으로 오디션을 봤다." 오랜 무명시절을 거친 배우 김수로는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존재 가치를 입증하기 위해 그는 날마다 '목숨'을 걸었고, 결국 1000만 관객이 찾은 강제규 감독의 영화 '쉬리'에 캐스팅됐다.

명품조연의 무명탈출기는 5일 공정거래위원회 심판정의 모습을 반추하게 한다. 이날 전원회의 안건은 '4대강 사업 입찰 담합' 사건이었다. 회의 전부터 20개 건설사가 1000억원대의 과징금 폭탄을 맞을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고, 일부는 형사처벌 대상으로 거론됐다. 국민들의 관심은 뜨거웠다. 22조원의 천문학적인 세금이 들어간데다 정파적 이해관계까지 맞물린 탓이다.
심판정의 분위기는 사건의 휘발성을 보여줬다. 김&장·태평양 같은 대형 로펌 변호사 25명이 피심인석에 앉았고, 참관인석엔 보조의자까지 놔야 했다. 기업들은 공정위 심사보고서의 허점을 파고들어 사활을 건 논리전을 벌였다. 담합 혐의를 인정한 기업은 한 곳도 없었다.

반면 공정위의 자세는 아마추어 수준이었다. '검사'격인 공정위 심사관은 "담합의 구체적인 증거가 없다"는 변호인들의 반박에 "자세히 분석하지 않아도 경쟁이 제한됐다는 점은 충분히 인정된다"는 불충분한 논거를 댔다.

더 큰 문제는 '판사' 역할을 한 공정위 위원들이었다. 일부 상임위원들은 9시간여 진행된 전원회의 중 절반 이상을 졸았다. 대놓고 잠을 잔 한 위원은 심결 막바지 질의 순서에 "입찰 담합이 없었다고 주장하는 회사는 한 곳도 없네요?"라고 물어 장내에 실소가 터졌다. 참관인석에선 "내내 졸다 남의 다리 긁는다"는 비아냥이 들려왔다.
공정위는 이날 심사관 의견보다 450억원 적은 1115억원의 과징금을 물렸고, 6개 회사와 임원에 대한 형사고발 계획은 접었다. 들러리 입찰 혐의는 입증하지 못했다.

대형 건설사들이 짜고 나랏돈을 축냈다면 추상같이 책임을 물어야 맞다. 그러려면 책임을 묻는 공정위의 기강부터 바로 세워야 한다. 5일 심판정에선 공정위의 존재 이유를 되묻고 싶은 순간이 참 많았다.



박연미 기자 ch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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