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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이야기]“진짜와 구별 안되는 위조주권 유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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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75년 해태제과 주권 위조 사건

[아시아경제 채명석 기자] 거액의 돈이 몰리는 주식시장은 긍정적 효과 못지않게 부정적인 사건도 끊임없이 발생한다.
소위 한방을 노리고 부정을 저지르는 사건이 그런데, 1975년 발생한 해태제과공업주식회사 주권위조사건이 이에 속한다.

그해 4일,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10만원권 해태제과 주식 4000장을 위조?인쇄해준 홍익인쇄소 대표 박동호씨를 유가증권 위조혐의로 구속하고 해태제과 직원을 사칭해 주식 인쇄를 의뢰한 김영태씨를 수배했다고 발표했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박씨는 1974년 12월 10일 김 씨로부터 18만원을 받고 해태제과 10만원권 가짜주식 4000장을 인쇄해 준 혐의였다. 또한 경찰은 4000장의 위조주권중 145장을 1900여만원에 샀다는 박영준 서울증권 사장(당시)의 신고에 따라 박 사장의 위조주권을 판 35세 가량의 남자를 수배했다.

이 사건은 하마터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해태제과의 주권을 주로 인쇄해 주던 인쇄사 대표가 해태제과측이 자신의 회사가 아닌 홍익인쇄소에 물량을 주고 거래를 끊었다는 소식을 접한 뒤 억울하다며 경찰에 항의 전화를 해 알려졌다. 당시 제과 업계 1위였고, 협력사와의 관계를 중요시 해왔던 해태제과가 하루아침에 거래를 끊는다는 점이 경찰로서는 수상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위조주권은 10만원권 4000매로 액면금액으로는 4억원에 달했다. 위조된 해태제과 주식은 진짜에 비해 인쇄가 약간 회미할 뿐 일반인이 육안으로 식별할 수 없을 만큼 정교하게 인쇄됐다. 범인은 이 주권을 갖고 서울증권을 찾아가 1장에 13만7000원씩 3만7000원의 프리미엄까지 붙여주고 판매했다. 서울증권도 구입한 주권을 일반 투자자에게 145매를 판매했다.

구매 당시에는 큰돈을 벌 수 있겠다 싶어 앞뒤 돌아볼 겨를이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서울증권 박 사장도 의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일개 회사 직원이 거액의 주권을 갖고 다닐 수준은 아니라고 본 것이다. 결국 해태제과측에 문의해 본 결과 김 씨 등 범인이 회사 직원이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발행한 주권도 가짜였음이 드러났다.

거래대금을 수표로 지급한 덕분에 추적에 나섰지만 이미 수표는 세탁을 통해 선의의 취득자에게 돌아간 뒤였다. 그나마 소량의 위조주권만 유통돼 피해 범위를 줄일 수 있었다지만 서울증권은 위조주권 매각 대금 1980여만원 전액에 대한 손해부담을 회사가 책임지기로 하고 투자자에게 환불해줬다.

주권위조 사건이 발생할 수 있었던 배경은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해 봐야 한다. 당시 증권 발행회사는 경비절감을 이유로 주권을 저질의 일반 인쇄 형태로 발행하는 경우가 많았고, 주권의 비표를 증권회사에 공시하지 않아 위조주권을 확인할 수 없는 허점이 있던 것이다.

또 1974년 개정된 증권거래법은 투자자 보호를 위해 거래자의 비밀을 보장케하고 있어 거래원이 위탁자의 주민등록증 제시 등의 요구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실제 위탁자의 신원을 확인할 수 없어 위조자를 판별할 수 없었다.

더불어 수도결제 과정에서도 대량 거래의 경우 주권을 하나하나 세어 결제를 현실적으로 하지 못하고 주권별로 분류, 결제하게 됨에 따라 위조주권을 조기 발견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유통과정상에서도 위조주권이 거래원의 창구를 통하지 않고 장외에서 유통될 경우 투자자 보호대책은 속수무책인 실정이었다. 이번 해태제과의 경우는 투자자가 거래원을 통해 주식을 매입함으로써 피해를 면하게 됐다는 교훈을 남겼다.

한편, 증권 당국은 이 사건을 계기로 무질서한 주권 인쇄 업무를 재정비해 광명인쇄공사, 삼화인쇄공사, 삼성인쇄공사 등 3개 전문 인쇄업체를 지정했다.

또한 유가증권의 규격과 도안 등을 통일해 상장법인은 통일규격 유가증권을 의무적으로 사용토록 했다. 종래에 형식에 그쳤던 주권배서제도가 한층 강화됐고 주권의 중요성을 새삼스럽게 인식한 많은 투자자들은 증권회사에 주권을 보관했다. 당시 새로 발족된 대체결제회사에서는 위조주권 감별기까지 설치하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자료: 금융투자협회>



채명석 기자 oric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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