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최근호(4월 7일자)에 따르면 허리둘레 치수가 14인 영국 여성 바지를 조사한 결과 올해 제품이 40년 전 제품보다 무려 4인치가 커졌다. 올해 14치수가 1970년대는 18치수였다는 얘기다.
문제는 이같은 치수 인플레가 자칫 여성들의 체중 조절 의지를 꺾어 건강에 해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영국과 미국 성인들의 절반 이상이 과체중이다.
그릇된 인플레 현상은 여성 의류의 치수 만이 아니다. 이코노미스트는 피자와 커피 사이즈, 호텔과 항공 좌석 등급, 대학 학점, 기업 직급에 이르기까지 사회 곳곳에서 뒤틀린 인플레가 횡행하고 있다며 이를 ‘팬플레이션(panflation·범인플레이션)’으로 지칭했다.
여행산업의 거품도 만만치 않다. 호텔 최고등급은 별 5개로 분류되지만 신생 호텔들은 자체적으로 별 6~7개를 부여하고 있다. 객실 등급도 '디럭스룸'이 최저 등급 '스탠더드룸'을 대신하고 있다.
항공업계에서도 과거 일반석을 가리켰던 '이코노미'라는 말은 자취를 감췄다. 영국 브리티시항공의 경우 '이코노미' 좌석은 '월드 트래블러'로 불리고 있다.
대학들의 학점 인플레이션도 심각하다. 일례로 전체 영국 학생 가운데 A학점을 받고 있는 학생 비율은 27%로 25년 전 9% 학생에 비해 3배 증가했다. 하지만 A학점을 받는 학생들의 학업 수준은 오히려 떨어졌다.
이코노미스트는 "학점 인플레는 똑똑한 학생들을 평범한 학생 수준으로 가치를 깎아내리고 있다"고 꼬집었다.
기업 내 직급 부풀리기 현상도 문제다. 안내원을 '첫인상 관리자'라고 하거나 검표원을 '최고 매출 보호 책임자'라고 부르는 식이다. 문제는 직급 인플레이션이 고용시장을 불투명하게 하고 불합리한 임금인상으로 이어지면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킨다는 점이다.
이코노미스트는 "팬플레이션은 실체의 가치를 깎아내리며 우리 사회를 좀먹고 있다"며 "사회 전반에 횡행하고 있는 인플레이션을 인식하고 이를 차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유진 기자 t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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