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중앙회가 지주회사 체제로 출발하면서 이를 가장 우려한 집단은 아이러니하게도 조합원인 농민들이었다. 지주회사 체제에서 농협 본연의 업무인 유통판매 등이 소홀해지지 않을까 우려해서다. 농민 단체의 한 관계자는 "농민들의 불만 가운데 하나가 농협이 경제사업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이번 사업구조개편도 신용사업에 초점이 맞춰진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있다"고 말했다.
[아시아경제 고형광 기자] 실제 사업구조 개편의 근본 목적인 경제사업을 살리려면 시ㆍ군 단위 이상의 광역유통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이를 통해 이마트, 롯데마트 등 대형마트들과 맞서 시장 교섭력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의 지적도 다르지 않다. 황의식 농촌경제연구원 박사는 "경제사업 활성화를 위해서는 경제지주가 중심이 돼 유통 판로를 구축하고 그 안에 조합들이 참여하는 길을 터줘야 한다"며 "특히 판매유통사업은 거래교섭력과 경쟁력을 모두 갖추려면 시ㆍ군 단위 이상의 광역조직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래야 농민들은 제값을 받고 농산물을 팔 수 있고, 소비자들은 저렴하게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 진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실제 지역농협의 자기자본금은 평균 100억원에도 못미치고, 예금 대비 대출 비율이 50% 이하인 곳도 적지 않는 등 상당수의 지역농협이 영세하다. 중앙회 사업구조 개편 다음 수순으로 경쟁력을 상실한 지역농협에 대한 통폐합과 개혁이 시급한 이유다. 그러나 농협은 아직까지 지역 농협에 대한 개혁 계획을 세우지 않고 있다.
경제지주의 다른 한 축인 농협금융지주는 은행, 보험, 증권 등 자회사 7개를 거느린 금융그룹으로 탄생했다. 자산 규모만 240조원에 달한다. 이 금융그룹이 무엇보다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는 전산망 구축이다. 농협의 금융부문과 경제부문은 아직까지 하나의 전산망을 사용하고 있다. 방화벽은 설치돼 있지만 구조적으로 한 전산망에서 두 사업이 뒤엉켜 있는 셈이다. 지난해 4월 최악의 전산 사고를 비롯해 전산장애가 끊이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행 은행법(은행업감독규정)에 따르면 각기 다른 분야의 사업은 전산망을 공유할 수 없다. 그래서 새 농협법에 전산망 분리 조항(3년 내 분리하되 2년간 연장할 수 있다)이 들어갔다. 그동안 한 몸으로 묶여 있던 전산망을 늦어도 5년 안에 분리해야 한다는 얘기다. 금융권의 전산망은 고객 유치와 직결되기 때문에 늦출 수 없는 과제다. 황의식 박사는 "안정적인 전산시스템은 은행 발전에 필수적인 요소"라며 "이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고객신뢰 회복은 물론 사업구조 개편의 성공을 기대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농협의 낮은 생산성과 수익성도 개선해야 할 문제다. 시중은행과 비교해 덩치는 크지만 직원 1인당 생산성은 최하위 수준이다. 지난해 3분기 농협은행의 직원 1인당 충당금 적립 전 이익 규모는 1억1900만원으로 국민은행(2억2000만원)과 비교해 거의 절반 수준이다.
조직의 안정 또한 금융지주가 발빠르게 대처해야 할 사항이다. 이경원 농협경제연구소 박사는 "과거 농협의 신용사업은 중앙회 회장과 신용대표를 통해 영위됐지만, 지주회사 체제로 개편된 이상 예전대로 중앙회에 휘둘려선 안 된다"며 "금융지주는 중앙회로부터 독립된 전문경영인 체제로 기반을 다져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고형광 기자 kohk0101@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